기쁘면서도 슬픈 일
요즘 부쩍 엄마 마음이 약해진 것을 느낀다.
평소 본인의 감정에 있어서는 냉정하리만치 꾹꾹 누르던 엄마가
옛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울음을 삼키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엄마의 파란만장하였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 중 대략 절반은 함께 겪고 또 봐 온 나이기에
엄마의 감정 변화나 기쁨 슬픔 등을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굳게 다짐하였다. 엄마의 이야기를 글로 쓰겠노라고.
엄마의 상처 그리고 스스로 그 상처를 보듬어 낸 결실들을 내가 글로 써 내려간다면 누군가 공감하는 사람들로 인해 엄마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조금은 위로가 될 거라고.
엄마가 설거지를 하다 갑자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참 좋은 일이야.’
이 짧은 문장을 이야기하면서도 감정이 울컥울컥 올라오는 것이 분명한 표정이었다.
살포시 물을 끄고 몸을 돌려 이어진 말에는
나이를 먹으며 어릴 적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기에 그 점은 참 좋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외가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엄한 할아버지, 엄하면서도 모성애가 부족한 할머니, 제각각 가족애가 부족한 남매들.
그 사이에서 늘 외롭게 상처받아도 어리광 한 번 부리지 못하고 자란 엄마는
점점 나이를 먹으며 가족들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그렇게 엄하게만 대했는지.
왜 어릴 적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는지.
자신은 자식들을 키우며 사랑을 주고 또 줘도 부족한데 왜 자신의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해가 가지 않고 마음이 아리다고 하였다.
가족들과 보지 않고 지낸 시간이 내 나이만큼 지났고,
엄마는 또다시 본인의 감정을 갈무리하고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하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니라고.
10대, 20대 때에는 막연히 가족들과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나이를 먹으니 가족들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도 생기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니 자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기 싫은 사람들을 나의 의지로 끊어낼 수 있고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물이 차오르는 엄마.
아무리 자의든 타의든 선택을 하여 인연을 맺고 끊는다고 하여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가족의 형태를 벗어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나도 나이를 먹으며 고민과 걱정들이 줄어들어 편안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엄마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
물리적으로는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마음은 아직 묶여있는 엄마의 시간들이 너무 아프다.
엄마는 그런 슬픔 속에서도 자식들을 먼저 걱정한다.
엄마의 삶은 이렇게 흘러갔지만
우리들의 삶은 가족들끼리 더욱 단단히 뭉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엄마의 남겨진 숙제는 나와 동생들이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좋은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늘 언제나 그 안에서 평온한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그 울타리를 잘 가꿔주고 엄마의 품으로 감싸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인 것 같다고 하였다.
엄마는 뭘까?
매번 엄마의 힘들고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속상해하다가도
자신의 아픔은 뒤로 하고
결국 자식을 향해 무한한 애정을 쏟는 엄마를 보면
만약 나였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순수한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엄마를 보며 나이를 잘 먹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슬픔을 삭이기만 하는 엄마를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또 그 슬픔을 넘어서 감사함을 느끼는 엄마를 보며 존경하게 된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지만
엄마의 소망대로 가족 안에서 나의 역할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 역시도 흘러간 시간이 아깝고 슬프지 않게
나이를 먹는 것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