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커피기구(ICO)에 따르면 2023년 세계커피생산량은 1억7천8백만 자루(60kg/자루), 약 1,000만 톤입니다. 이 중57.4%는 아라비카, 나머지 42.6%는 로부스타였습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수확이 좋은 커피, 반면 향미가 부족한 커피, 인스턴트 커피의 원료, 싸구려 커피, 카페인이 많은 독한 커피로 평가되는 로부스타가 세계커피생산량의 50%에 달하고 있습니다.
2023년, 국제보전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 CI)의 발표에 따르면 2050년 예측되는 세계커피소비량은 최대 2,000만 톤으로 2023년 소비량의 두 배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폭등하는 수요에 대한 공급은 첫 번째, (생태) 기후위기로 인한 커피경작지의 축소, 두 번째, (경제) 생산가에도 못 미치는 커피수매가격, 세 번째, (사회) 커피생산지역의 사회정치적 불안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커피값이 금값만큼 폭등하거나 인공적으로 만든 대체커피가 연구되지 않는 한 지속가능 커피는 없습니다. 현재 인류는 매일 30억 잔의 커피를 소비하지만 2050년 인류에게는 매일 60억 잔의 커피가 필요한 것입니다. 국제보전협회에서 발표한 다음 두 개의 그래프를 참고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그래프는 2000년부터 2050년까지의 커피소비량의 변화입니다. 그래프에서 2050년까지 아시아, 아프리카의 커피소비량은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두 번째 그래프 A는 2010년 아라비카(블루)와 로부스타(오렌지)에 최적화된 경작지 크기입니다. 그래프에서 2010년 브라질의 커피경작지는 약 120만 km²입니다. 그러나 2050년,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브라질에서 커피생산이 가능한 면적은 50만km²로 감소하게 됩니다. 로부스타 산지인 중앙아프리카의 경우 2010년 약 120만 km²에서 2050년 15만 km²로 감소합니다.
국제보존협회의 연구, 주장에 따르면 2050년, 커피경작이 가능한 땅은 전 세계적으로 50% 이상 줄어듭니다. 그런데 2050년 커피소비는 2023년 대비 100% 증가합니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현재 작동하는 커피문화에 대한 반추 없이 지속가능 커피는 불가능합니다.
동시대 커피문화는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라는 종(species) 중심의 문화입니다. 아라비카라는 단일 종에 대한 인류의 충성심은 다른 작물(crops)의 사례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아라비카(60%)와 로부스타(40%)지만 로부스타는 아라비카의 대체품일 뿐입니다. 사실상 아라비카 100%라는 커피 종의 문화입니다.
아라비카 중심의 커피문화는 향미 때문입니다. 아라비카의 항미는 절대적으로 좋고 로부스타의 향미는 상대적으로 나쁘다는 이유입니다. 종(species)에 대한 생물학적 편견일 수 있는 이러한 담론들은 커피 생태계의 지배적인 것이며 이러한 (편애) 담론들을 지원하기 위해 과학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1900년대 초반, 커피농부들에게 처음 소개된 로부스타는 아라비카의 대체식물이었습니다. 아라비카를 경작할 수 없었던 농부들은 유전적으로 약한 아라비카 대신 건강한 로부스타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잘 자라는 로부스타는 생태경제적 대안이었습니다. 잘 자라고 수확이 유리하기 때문에 생산원가는 줄어들었습니다. 시장에서도 로부스타의 가격경쟁력은 환영 받았습니다. 커피기업, 로스터들은 값싼 로부스타를 사들여 공장커피(commodity coffee)를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대책이자 경제적인 대안이었습니다. 어차피 공장커피의 생산 메커니즘에서는 커피의 종(species)과 품종(variety), 원산지(origin) 따위는 노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로부스타는 경제적이든 생태적이든 대안의 종(species)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로부스타의 정체와 정체성은 열등하며 맛없고 값싼 공장커피의 원자재로 고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부스타의 생산량은 1900년대부터 30년 동안 무려 300%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로부스타의 가격 또한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후 변화 영향으로 세계 곳곳에서 가뭄과 폭우가 극심해지자 커피 원두, 코코아 등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18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런던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로부스타 커피 원두 선물가격은 전날 t당 4,662달러로 마감했다. 1년 전(2,409달러)과 비교하면 93.5% 급등했다. 로부스타 원두는 인스턴트 등 저가 커피에 주로 사용된다. 올초부터 오르기 시작하더니 지난달 26일 t당 5,535달러를 찍었다. <'커피플레이션' 본격화하나…로부스타 원두값 1년새 두배> 한국경제(2024.10.28)
로부스타 생산량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40%를 넘어섰습니다. 이러한 추세라면 로부스타의 생산량은 곧 아라비카의 생산량을 추월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등장했습니다. 기후위기에 따른 아라비카의 멸종위기? 커피향미의 다양성? 지속가능 커피? 생태의 경제학? 파인 로부스타의 등장? 매년 늘어나는 로부스타의 생산량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일 수 있습니다.
로부스타는 아라비카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야생에서 자라던 식물입니다. 로부스타의 상업적 경작은 100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로부스타는 오래 전부터 아프리카 콩고지역에서 경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부스타가 대안의 커피식물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 인도네시아에서였습니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는 같은 종(species)의 커피가 아닙니다. 사자와 호랑이처럼 다른 종입니다. 이 두 종의 커피를 요약,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로부스타는 다른 종의 커피에 비해 생태적으로 건강합니다. 특히 커피의 구제역이라고 불리는 커피녹병에 강합니다. 커피녹병(coffee leaf rust)은 헤밀레이아 바스타트릭스(Hemileia vastatrix)라는 곰팡이가 일으키는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1800년대 후반, 아시아 실론에서 처음 발생한 커피녹병은 커피의 종말을 언급할 때 기후변화와 함께 등장하는 치명적인 전염병입니다. 주지하듯이 아라비카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밀림입니다. 아프리카 밀림에는 커피녹병을 일으키는 곰팡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곰팡이는 커피나무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수 백만 년 공생하는 곰팡이와 커피나무의 안정화된 관계 때문입니다.
1500년대 중반, 커피는 아프리카 숲을 떠나 예멘에서 순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실론과는 다르게 예멘에서 커피녹병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곰팡이에게는 불리한 그곳 고산지대의 건조한 기후 때문입니다. 예멘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커피경작지역입니다. 또한 예멘의 고산지대에 만든 커피경작지 테라스(terrace)는 자연친화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식민제국이 구축한 커피 플랜테이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밀림을 파괴하고 자연생태의 평형을 깨는 플랜테이션은 아프리카 밀림, 또는 예멘의 테라스와는 다른 생태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태적 평형이 깨지자 커피녹병의 원인인 헤밀레이아 바스타트릭스가 깨어난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커피녹병은 1869년 처음 영국 식민지 실론의 플랜테이션에서 시작됩니다. 현재의 스리랑카인 실론은 1500년대 후반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순서로 착취당한 비운의 섬입니다. 1800년대 초반부터 1972년 스리랑카로 독립할 때까지 실론은 영국에 의해 지배당했습니다. 실론을 지배하기 시작한 영국은 처음부터 플랜테이션을 기획하기 시작합니다.
1800년대 초반 세계커피시장은 진공상태였습니다. 1700년대 후반, 세계커피생산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프랑스령 생도맹그의 플랜테이션은 노예혁명의 성공으로 붕괴되었습니다. 프랑스 농장주들은 그곳을 탈출하며, 이들이 터득한 운영 기법은 이웃 자메이카, 쿠바는 물론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전수됩니다.
1834년, 영국 식민지 자메이카에서 노예해방이 선언됩니다. 이곳 노예해방은 자메이카 플랜테이션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영국은 자메이카 플랜테이션 운영 노하우를 그들의 식민지 실론으로 가져옵니다. 당시 실론에는 아프리카 노예는 없었지만 노예와 같은 원주민들과 중국 이주노동자들인 쿨리(Coolie)가 있었습니다. 영국은 플랜테이션을 위해 원시림을 파괴했으며 수백만 그루의 커피나무를 심었습니다. 1860년대부터 영국의 실론과 네덜란드의 자바는 세계커피생산의 반 이상을 책임지게 되며 특히 실론은 연간 50,000톤을 수출해 정점에 도달합니다. 이때 잠들어 있는 헤밀레이아 바스타트릭스가 깨어난 것입니다. 1869년, 이곳은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커피농장을 초토화시키는 커피녹병이 실론에서 처음 발생합니다.
커피녹병은 커피 잎에 곰팡이가 감염돼 발생하는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커피녹병 곰팡이는 바람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며 커피 생산량을 무섭게 감소시킵니다. 커피녹병은 1년에 500km정도 속도로 확산됩니다. 감염된 커피나무는 베어 태워 버리는 방법 외에는 특별한 대책이 없는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당시 커피녹병은 실론 커피 플랜테이션 90%를 황폐화시켰습니다. 사실상 멸종에 가까운 위기입니다. 영국은 대체 커피나무를 찾지만 실패합니다. 결국 그곳에서의 커피농사를 포기합니다. 이후 영국은 플랜테이션 인프라를 활용해 차(tea)농사를 시작합니다. 실론티의 유래이며 영국이 차의 나라가 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론에서 커피녹병이 발생한 지 불과 1년 후인 1870년, 커피녹병은 이웃 인도네시아 자바와 수마트라로 확산되며 그곳을 초토화합니다. 자바는 (아라비카) 커피나무가 에티오피아를 떠난 후 세 번째로 정착한 곳입니다. 1699년, 네덜란드는 여러 번 시도 끝에 자바에 플랜테이션을 성공시켰습니다. 이후 네덜란드는 유럽 최초의 커피생산국이 되며 자바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커피녹병이 창궐해 크고 작은 커피농장들을 황폐화시키기 이전, 자바는 모카와 함께 커피 호사가들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커피녹병이 자바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한 것입니다. 사실상 커피녹병에 의해 인도네시아의 (아라비카) 자바커피는 멸종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아시아의 (아라비카) 커피산업이 붕괴된 것입니다. 당시 세계커피생산 4위 국가였던 필리핀은 국가 차원에서 (아라비카) 커피생산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아라비카를 대체하는 커피나무가 필요했습니다. 네덜란드, 영국 등 아시아의 커피재배자들은 아프리카 숲에서 새로운 커피나무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서아프리카에서 리베리카(Coffea liberica)를 찾아냅니다. 1800년대 후반, 리베리카 커피는 아시아의 여러 커피 생산지역에 대안의 커피로 소개됩니다. 희망을 품고 리베리카를 심기 시작했지만 이것 역시 커피녹병을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리베리카는 아라비카의 대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커피녹병은 플랜테이션과 같은 환경, 곧 사방이 공개된 단일경작지에서 발생할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반면 아프리카의 숲과 같은 생태환경과 높은 고도에서는 상대적으로 발생확률이 낮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규모 농장에 심어진 아시아의 리베리카는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남아 있으며 지금도 그곳의 지역커피로 애용되기도 합니다.
오래 전부터 중앙아프리카 콩고 지역에는 코일로(Koillou)라는 커피나무가 재배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코일로 열매는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코일로가 이후 로부스타로 불리게 된 커피나무입니다. 1895년, 프랑스 식물학자 루이 피에르(Louis Pierre)는 콩고지역 야생에서 이 커피 종을 발견하고 로부스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로부스타는 ‘튼튼하다’는 뜻의 로부스트(robust)에서 따온 말입니다. 당시 파리에서는 새로운 세기를 기념하는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이 박람회에서 벨기에는 새로운 품종의 커피씨앗을 전시하기로 합니다. 벨기에는 전시 콘텐츠를 수집하기 위해 당시 그들의 식민지인 콩고에 관련자들을 파견하며 이들은 수천 개의 코일로 씨앗을 수집해 옵니다. 프랑스 식물학자 루이 피에르가 명명한 로부스타와 같은 것들입니다.
로부스타는 대체커피를 찾고 있는 네덜란드에 소개됩니다. 차의 나라 영국은 실론에서의 커피생산을 포기했지만 커피의 나라 네덜란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자바커피 무역을 총괄하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로부스타를 연구, 육종했습니다. 1910년, 로부스타는 인도네시아에서 경작되기 시작합니다. 로부스타는 자바커피 대신 이곳의 커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커피전문가 윌리엄 우커스(William H. Ukers)에 따르면 1935년, 자바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94%는 로부스타였습니다. 나머지 6%는 일부 고지대에 살아남은 아라비카와 작은 농장에서 재배하는 리베리카였습니다.
네덜란드의 커피수출은 다시 활기를 되찾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자바, 로부스타는 주로 미국으로 수출되었습니다. 물론 자바가 인도네시아 커피는 맞지만 더이상 아라비카는 아닙니다. 1912년, 뉴욕커피거래소는 로부스타의 거래를 공식적으로 금지했습니다. 당시 미국농무부(USDA)에 의해 규정된 커피의 생물학적 정체는 아라비카(C. arabica), 리베리카(C. liberica) 두 종(species)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법적으로 로부스타는 커피가 아니었습니다.
로부스타는 여기저기서 거부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자바는 넘쳐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로부스타와 아라비카가 혼합되어 판매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거래되는 혼합커피(blended coffee)에 원산지, 품종 따위의 투명성은 불필요했습니다. 커피생두는 공업생산을 위한 원자재(commodity)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짜 자바인 로부스타는 나쁜 커피, 싸구려 커피로 각인되고 있었습니다.
1925년, 뉴욕커피거래소는 로부스타 거래를 허락했습니다. 1929년, 미국농무부는 로부스타를 커피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만들어진 로부스타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로부스타는 아라비카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원시림에서 로부스타는 아라비카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약 100만 년 전, 아라비카는 로부스타, 곧 카네포라(Coffea canephora)와 유제니오이데스(Coffea eugenioides)라는 커피 종(species)의 자연교배로 탄생된 것입니다. 아라비카는 로부스타의 후손입니다. 로부스타는 100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 야생에서 존재해 온 오래된 커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 로부스타를 재배하거나 커피처럼 음료로 사용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로부스타를 경작하기 시작한 세력은 유럽제국입니다. 아시아, 아프리카로 확산되던 로부스타의 역사 뒤에는, 마치 아라비카 확산의 역사처럼 유럽제국이 존재합니다. 1884년, 서구열강들이 베를린에 모여 아프리카를 나누는 회의를 시작합니다. 아프리카 쟁탈(Scramble for Africa)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프리카 쟁탈이란 1881년부터 1차세계대전이 발생한 1914년 사이 유럽제국들이 아프리카를 식민화했던 과정을 말하는 정치용어입니다. 당시 유럽은 자본주의체제 유지와 발전을 위해 값싼 원료 공급지와 판매 시장의 개척이 필요했습니다.
1차세계대전 발발 이전까지 아래 지도처럼 에티오피아와 리베리아를 제외한 모든 아프리카의 땅은 유럽제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식민지 아프리카의 경계는 아프리카의 민족, 문화, 지리적 구분과 무관한 유럽제국의 이해관계를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경계는 대부분 현재까지 고착화되었으며 아프리카에서 지속되는 갈등과 혼란의 근원입니다.
아프리카 쟁탈의 지도는 아프리카 커피역사를 함께 보여 줍니다. 로부스타는 벨기에 식민지 콩고(Belgian Congo)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이후 이 씨앗들은 네덜란드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정착했습니다. 영국은 식민지 케냐에서 플랜테이션을 구축했는데 이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를 ‘왕실의 커피’, ‘신사의 커피’라는 수식으로 포장합니다. 이때 독일은 탄자니아(German East Africa)에서 커피를 경작하기 시작했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지는 영국, 프랑스로 넘겨집니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점령지에서 커피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모든 커피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소비되었으며 커피생산에 동원된 사람들은 노예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이들에게 커피는 끔찍한 작물입니다.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금도 커피를 싫어하는 역사적인 이유입니다.
아프리카 쟁탈이 시작된 1800년대 후반, 유럽제국이 아프리카에서 경작했던 커피는 아라비카입니다. 당시는 로부스타 발견 전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경작된 커피들은 프랑스 식민지 브루봉(Bourbon)으로부터 옮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아라비카 경작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케냐와 탄자니아 고지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아라비카는 커피녹병, 해충 등에 의해 고사했습니다. 사실 아프리카 대륙에 아라비카 생육을 위한 서늘한 고원지대는 많지 않습니다. 케냐와 탄자니아가 걸쳐 있는 킬리만자로 산등성이와 에티오피아 고원지대 정도입니다. 대부분 아프리카 대륙은 로부스타 생육에 보다 적절한 고온다습한 저지대입니다. 1차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은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카 대신 로부스타 재배를 장려하게 됩니다.
유럽은 아프리카를 떠나 인도네시아에서 자라고 있던 로부스타를 아프리카로 역수입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로부스타의 고향인 콩고에서, 자바에서 길들여진 로부스타의 경작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아프리카 농부들은 더 적극적으로 로부스타를 경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914년, 콩고와 우간다의 로부스타 재배 면적은 200헥타르에 불과했지만, 1934년에는 3,000헥타르로 늘어났습니다. 1962년, 영국에서 독립한 우간다는 아프리카의 새로운 커피강국으로 등장했습니다.
2023년, 우간다는 에티오피아 다음의 세계 6위 커피생산국입니다. 2023년 탄자니아는 세계 17위, 케냐는 19위였습니다. 우간다는 케냐와 탄자니아보다 더 많은 커피를 생산하고 수출하지만 커피생산국으로서의 이미지는 생소합니다. 우간다는 추적불가능한 커피, 정체불명의 커피, 익명의 커피인 로부스타를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카페의 나라이자 세계 최대 (식민지)커피생산국 중 하나였습니다. 1700년대 후반, 식민지 생도맹그에서는 전 세계 커피의 60%를 생산할 정도였습니다. 생도맹그의 노예 반란으로 프랑스는 한때 커피생산을 포기한 적도 있지만 1차세계대전 종전 후, 그들의 새로운 식민지 카메룬에서 로부스타를 재배하기 시작합니다.
카메룬은 패전국 독일의 식민지였는데 이때의 커피 생산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프랑스는 카메룬에서 26,000헥타르 규모의 로부스타 농장을 운영했습니다. 또 다른 프랑스 식민지 코트디부아르의 커피생산은 1925년 50톤에서 1939년 16,000톤으로 증가했는데, 모두 로부스타였습니다. 벨기에 식민지 콩고의 커피 재배 면적은 1925년과 1940년 사이에 8배로 확대되었습니다. 이 역시 모두 로부스타였습니다. 유럽제국들에 의해 아프리카는 로부스타의 대륙이 된 것입니다.
1945년, 2차세계대전이 종전되었습니다.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아시아의 커피농장 대부분은 직접 피해를 입었으며 로부스타 생산은 대부분 중단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로부스타 산업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2차세계대전의 피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아프리카는 로부스타 생산을 일정 기간 독점하게 됩니다. 환금작물 로부스타는 아프리카 농부들의 생명줄이 된 것입니다. 인도, 인도네시아가 다시 로부스타를 생산하고 베트남이 로부스타로 세계2위 커피 생산국이 되기 전까지 아프리카는 로부스타 생산을 거의 독점하게 됩니다.
1차세계대전 직전 아프리카는 세계 커피 생산량의 2% 미만을 차지했지만, 1960년대에는 23%를 차지했습니다. 이 중 75%가 로부스타입니다. 예를 들어 코트디부아르의 로부스타 생산량은 1945년 36,000톤에서 1958년 112,500톤으로 300% 증가했습니다. 앙골라는 1948년 44,000톤에서 1956년 90,000톤으로 200% 증가했습니다. 콩고는 1948년과 1959년 사이에 16,000톤에서 47,000톤으로 300%, 1951년부터 1962년 사이, 우간다 역시 34,000톤에서 120,000만 톤으로 300% 증가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로부스타 대부분은 유럽에서 소비되었습니다. 유럽의 로부스타 사랑은 특별했습니다. 1960년, 프랑스에서 소비된 커피의 75%, 영국에서 소비된 커피의 50%, 이탈리아에서 소비된 커피의 40%,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소비된 커피의 30%가 로부스타였습니다. 실제로 로부스타 없는 유럽의 에스프레소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반면 미국에서의 로부스타 소비량은 전체 커피 소비량의 9%에 불과했습니다.
로부스타를 즐기던 유럽인들에게 아라비카 중심의 미국 커피문화는 싱거운 것이었습니다. 에스프레소에 물 탄 느낌, 그들에게는 미국의 커피문화란 커피 같지 않은 아메리카노와 같은 것입니다. 반면 유럽은 에스프레소 기반의 다양한 커피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1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커피문화와 로부스타는 밀접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도 불구하고 유럽에서조차 로부스타의 인문지리적 정체성과 향미의 정체는 대부분 투명하지 못했고 추적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
#제국주의 #아프리카 분할 #인종주의
How Europe Stole Africa so Quickly, Mapped
*영상제작: Johnny Harris, *2023, *17분, *영어(한국어 자동자막 설정 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LjieOlWXwT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