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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떼루아: 자연과 인간

by doklip coffee


#1.커피의 향미를 결정하는 것들


에티오피아 커피의 향미에는 고유한 특별함이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커피와는 확연히 다른, 강렬하고 복합적인 꽃 향과 과일 향 그리고 상큼한 산미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에티오피아 커피의 특성은 이 커피를 즐기거나 멀리하는 이유가 됩니다.


사람들은 에티오피아 커피의 고유한 특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궁금해하며 질문합니다. 커피생육에 최적화된 자연생태, 유전적으로 건강하며 다양한 커피품종, 농부들의 유기농 관행, 기후에 최적화된 가공방식처럼 다양한 매개변수들이 질문의 답으로 설명되며 이러한 에티오티아의 매개변수를 그곳의 떼루아(terroir)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용어(terminology) 떼루아에는 큰 문제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현재 떼루아는 커피에 대한 자연주의적 입장, 곧 “커피는 자연이 보낸 선물”이라는 결정론을 대신할 때가 많습니다. 자연주의는 세계의 모든 현상과 그 변화의 근본원리가 자연에 있다고 보는 방식입니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고유함은 자연이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본질이며 운명이다라는 것입니다. 옳은 말처럼 느껴지지만 문제와 한계를 지닌 담론입니다. 물론 이러한 자연주의적 결정론에 문제제기는 쉽지 않습니다. 절대 자연의 숭고함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경외, 공포가 인간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주의적 맥락에서 에티오피아 커피의 고유함이란 자연과 그 자연의 일부로 간주되는 농부들, 곧 자연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주의적 결정론은 커피의 지속가능성, 곧 커피를 위한 생태환경, 농부들이 처한 경제적 상황과, 사회적 조건을 간과하게 합니다. 또한 한잔커피를 위한 기술, 과학, 철학적 측면들을 무시하게 합니다.


떼루아는 와인의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온 오래된 용어입니다. 떼루아는 원산지에 따른 와인향미의 다양함과 차별성을 설명하기 위한 (마케팅) 용어입니다. 프랑스어 땅(Terre)에서 파생된 떼루아는 “좋은 와인의 향미는 좋은 땅의 선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와인생태계에서 떼루아에 대한 입장은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 번째, 자연주의적 결정론, 와인향미는 특정한 토양, 기후, 지형이 결정한다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 인문적 관점입니다. 와인향미란 자연환경은 물론 농사짓는 방식, 양조와 발효의 과학, 저장을 위한 환경과 함께 와인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철학 등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점입니다.


첫 번째 주장은 주로 유럽의 와인생산자들의 입장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떼루아는 유럽의 토양, 기후, 지형이 좋은 와인향미를 만든다는 자연주의적 결정론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유럽의 완벽한 떼루아는 대체불가하기 때문에 “유럽, 특히 프랑스 와인은 자연이 준 대체불가의 선물이다”라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 주장은 미국, 칠레 등 신생 와인생산국의 입장을 반영한 것입니다. 자연과 함께 인간의 헌신과 노력,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좋은 와인향미를 발현시키는 결정적 매개변수라는 주장입니다. 사실 “떼루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은 복잡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논쟁입니다. 자연주의와 인문주의의 순수한 충돌이 아닙니다.


2010년, (1924년 설립) 국제와인협회(IOV)는 “떼루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처음으로 정리합니다. “떼루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와인생태계의 논쟁은 오래된 것입니다. 협회는 이러한 논쟁을 오랫동안 방치했습니다. 그들 자체가 결정론적 자연주의자들인 동시에 그들이 글로벌 와인생태계를 지배하던 유럽중심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협회에 의해 정의된 떼루아의 내용입니다.


(1)토양: 토양 종류, 구성, 구조, 수분 함량 등

(2)기후: 기온, 강수량, 일조량, 풍속 등

(3)지형: 고도, 경사, 방위 등

(4)생물 다양성: 포도나무, 미생물, 동식물 등

(5)인간활동: 포도재배 방식, 와인양조 방식 등


“떼루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협회의 답은 대단히 보수적이며 방어적입니다. 자연의 선물이라는 편향된 결정론적 입장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떼루아에 대한 고전적 정의인 토양, 기후, 지형, 생물 다양성에 인간활동을 살짝 더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자연에 겸손한 인간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역중심주의) 정치적인 정의입니다. 결국 와인은 자연이 준 선물이라는 주장입니다.




#2.떼루아의 확장


현재 커피의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유통되는 떼루아는 자연주의적 맥락에서 강조되며 수용되고 있습니다. 용어 떼루아는 “커피향미의 고유함과 특별함이란 자연환경, 공간지리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결정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커피의 원산지가 불투명하며 추적불가능했을 때, 떼루아에 대한 강조는 필요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주의적 결정론은,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매개변수를 간과하게 만듭니다.


떼루아의 영역은 자연을 넘어서 인간, 역사, 과학, 철학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스페셜티의 등장, 1980년대 공정무역, 1990년대 싱글오리진, 2000년대 지속가능 커피와 이에 조응하는 커피경험은 자연주의적 관점으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커피향미, 특히 제3물결과 연동된 커피향미의 가치는 윤리, 철학, 과학, 기술이라는 매개변수가 적용된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윤리, 철학의 커피향미를 즐기며 가치소비라는 선택으로 커피를 경험합니다. 이들에게 한잔커피의 윤리와 철학은 그 커피의 향미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떼루아입니다. 또한 동시대 과학기술과 연동된 가공, 로스팅, 분쇄추출은 최종 커피향미를 결정하는 떼루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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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커피의 떼루아, 매개변수는 와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다층적입니다. 와인은 포도를 발효시켜 완성합니다. 와인은 포도 생산에서 양조라는 비교적 단순한 단계를 거쳐 한잔와인으로 완성됩니다. 커피와는 다르게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커피는 생산, 가공, 로스팅, 분쇄추출의 단계를 거쳐 한잔커피(a cup of coffee)로 최종 완성됩니다.


아래 도표는 와인과 커피 떼루아의 다름에 대한 요약, 비교입니다. 이 도표는 2022년에 발표된 논문 「커피에 떼루아가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평가해야 할까(Does Coffee Have Terroir and How Should It Be Assessed)」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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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떼루아, 곧 커피향미의 매개변수는 #A생육부터 #H한잔커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특히 #C가공, #E로스팅, #F분쇄, #G추출방식과 같은 매개변수의 조합은 현재도 수없이 많고 관련 기술과학이 발전하면서 더 많아질 것입니다. 실제로 섭취할 수 없는 날것, 생두를 활용해서 로스터, 바리스타가 요리할 수 있는 한잔커피의 향미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이 논문에는 감각경험의 최종 대상인 한잔커피(a cup of coffee)에 대해 특별히 강조합니다. 한잔커피의 떼루아를 평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모든 매개변수, 특히 인간에 의한 매개변수들은 세심하게 관리,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동시에 전문가들이 (경험) 평가하는 생두(green coffee)와 소비자들이 경험하는 한잔커피 사이의 거리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 논문에 따라 비유하자면 전문가들은 생두, 곧 날것을 평가합니다. 반면 소비자들은 로스터와 바리스타에 의해 요리되어 익은 것, 곧 최종커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와인향미 평가를 위해 준비된 최종 한잔와인(a glass of wine)은 한 알의 포도에서 출발해서 양조사의 정성과 실험까지 모든 떼루아가 반영된 것입니다. 한잔와인에 대한 전문가의 경험과 평가는 똑같은 한잔와인을 마시는 소비자의 경험과 일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와인전문가의 경험, 평가, 평론은 소비자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유효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잔와인에 대한 공감이 광범위하게 공유될 수 있습니다.


논문은 스페셜티커피협회(SCA)의 커핑 시스템과 그 목적에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현재 커핑에는 동시대 테루아의 개념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커핑을 통한 커피 경험과 평가는 비즈니스생태계를 대표하지만 소비자들이 즐기는 커피문화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한 알의 생두와 한잔커피 사이의 거리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마치 날것과 익은 것의 차이처럼 크게 존재합니다.


동시대 한잔커피의 향미를 결정하는 매개변수는 시대변화에 따라 크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장을 염두에 둔 일부 전문가들은 커피의 네 번째 물결을 말하기도 합니다. 현재 용어 떼루아는 자연주의라는 테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만일 떼루아라는 용어의 그릇이 이렇게 확장되는 시대변화를 담을 수 없는 작고 낡은 것이라면, 용어 사용을 중지해도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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