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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Apr 19. 2024

피그말리온을 위하여

에드워드 번 존스, 신의 불길, 1868




오른쪽에 있는 여인이 받침대 위에서 내려오려다 몸을 휘청거린다. 왼쪽에 있던 남자는 여인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팔을 잡고 부축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이 첫 숨을 내쉬는 순간, 남자는 자신의 사랑과 염원을 모두 이룬 기쁨에 감정이 북받친다. 아래에는 사람이 만나는 순간을 축복이라도 하는 새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옥처럼 여인의 신체와 남자가 입은 어두운 옷이 강한 대비를 이루어 장면의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킨다. 




이 작품을 그린 에드워드 번 존스(Edward BurneJones, 1833 ~1898)는 영국 출신이며, 라파엘 전파에 참여한 화가다. 라파엘 전파 작가들은 15세기 이탈리아 미술의 세밀함, 강렬한 색채, 복잡한 구성으로 회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번 존스의 작업 역시 주로 신화, 전설, 종교적 내용을 주제로 삼았으며, 꿈과 환상의 세계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회화뿐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삽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 활동했다. 

그는 19세기 후반 영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그의 예술은 추후의 상징주의에 영향을 줬다. 오늘날까지도 독창적인 스타일과 주제로 높은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기원전 8세기 경 로마시대의 작가 오비디우스(Ovidius)가 쓴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키프로스의 왕이자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세상 여성들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해 결혼을 포기하고, 자신의 이상형을 반영한 조각상을 만들기로 한다. 그는 그 조각상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었다고 생각해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축제날,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비너스는 그의 기도와 랑에 감동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드디어 조각상은 갈라테아라는 이름의 여성이 되어 피그말리온과 결혼한다.


번 존스는 이 이야기를 4개의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작품은 '가슴속 깊은 소망(The Heart Desires)'으로  피그말리온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이미지를 창조하려는 욕구를 느끼는 순간을 그렸다. 두 번째 '손길이 멈추다(The Hand Refrains)'는 예술가가 자신의 이상에 미치지 못할까 봐 조각상을 만지는 것을 주저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 '신의 불길(The Godhead Fires)'은 피그말리온의 기도가 응답받아 조각상이 생명을 얻기 시작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마지막 작품 '영혼이 깨어남(The Soul Attains)'은 갈라테아가 완전히 살아나고 예술가의 꿈과 사랑이 실현되는 순간을 묘사했다. 


이 작품은 신이 개입하여 피그말리온의 조각이 비로소 생명을 얻는 극적인 순간을 포착한 세 번째 작품 '신의 불길'이다. 부드럽고 신비로운 색상과 세밀한 묘사가 압권이며,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조각상이 실제 사람으로 변하는 극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기대가 실제 행동과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피그말리온 효과의 심리적 메커니즘은 자기-실현 예언으로, 타인이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태도와 행동에 작용해 실제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또 이 이야기는 예술가나 창작자들에게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예술가나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열망은 그 결과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술이 단순히 형태와 색의 조합의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현대 기술, 특히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문제와 연결해 볼 수도 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실제로 '생명'을 갖게 될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과정에서 인간성이 어떤 영향을 받을까? 


최근 AI를 이용한 작업에 관심을 갖고 다양하게 테스트하는 중이다. 막연한 개념이던 AI를 실제 사용해 보니 정말 시대의 조류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기술과 지식은 'open'되어 예전에 비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남다른 기술이나 지식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어질 듯하다. 반면 뛰어난 아이디어나 독창적인 생각이 있으나 기술을 갖추지 못해 결과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에게는 큰 기회가 것 같다. 작업에 변별력을 갖추려면 이제 '어떻게'보다는 '무엇을'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창작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동안 과학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인문과 철학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외치고, 인간성의 상실을 걱정했다. 그런데 AI의 발달로 다시 독창적인 시각과 메시지, 작업과 창작의 본질과 의미가 중요하게 되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기술이 대중화되자 다시 의미과 창의력이 변별력의 기준이 된다. 


이번 글에서 세 번째 그림을 택한 이유는 AI를 상용하기 시작하는 현재 시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세상은 앞으로 기술이 완전히 생명을 얻고 인간과 공생하는 네 번째 단계로 갈 수 있을까? 세상을 향한 인간의 사랑과 열정이 신이 감동할 정도로 뜨겁고 강렬할까? 그런 세상이 온다면, 인간의 존재 이유와 역할은 어떻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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