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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Dec 16. 2023

봄을 기다리며

내 모든 인생이 봄이었음을

Claude Monet, Spring time,1886


살랑이는 바람에 풀이 가볍게 흔들리고, 꽃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것 같다. 나무줄기에는 연둣빛 여린 잎과 작은 흰 꽃이 가득 매달려 있고, 나무 그늘에 풀밭에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다정하게 이야기라도 나누는 걸까.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따스한 봄 햇살이 점점이 밝은 기운을 퍼뜨린다. 과수원은 이제 봄의 정점에 이르렀다. 나도 저 과수원 어딘가에 앉아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지베르니 정원에 있는 과수원의 봄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속 사람들은 그의 아들 장과 모네 연인의 딸 수잔이다. 모네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바로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라는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루앙 대성당》 《수련》 등 한 장소가 시간과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연작으로 빚어낸 작품들이 유명하다. 모네는 오랫동안 빛이 강렬한 야외에서 작업하느라 나중에는 시력이 나빠지기까지 했다. ‘빛이 곧 색이다’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얼마나 철저히 고수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도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 작품 속 풍경 같은 봄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이 사는 동안 수많은 봄을 지나 보내고, 또다시 봄을 기다린다. 흔히 인생의 어려운 고비에서 희망을 품는 것을 겨울 뒤에 반드시 봄이 온다는 자연의 법칙에 견주어 말하기도 한다. 이 고생이 끝나고 좋은 때가 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말이다.      

예전에는 단 한 번 이 겨울을 보내면 반드시 화려한 봄이 오리라라는 설익은 기대를 하기도 했다. 또 나에게는 항상 겨울뿐이고, 단 한 번도 봄이 오지 않았다고 느끼는 시절도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그 순환을 한 번 더 거치면 봄이 또 왔다. 그러나 매번 봄이 오지만 그 봄은 내가 기다리는 봄이 아니었다.     


내가 강한 햇살을 버티고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나무라면 언젠가 아주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고, 겨우 맺은 꽃이 아름답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처럼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당장 절실할 때, 그때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꼭 필요한 간절한 순간들이 모두 지나가고, 이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느낄 때 비로소 내 손에 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고 또 거치며 어떻게 해야 좋은 꽃을 피우는지 방법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 꽃은 내가 원할 때 열리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된다. 그 말은 이제 내가 그 간절했던 것이 없어도 살아갈 방법을 터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기다리건 말건 봄은 오고 또 지나간다. 셀 수 없는 계절을 겪고, 그 수많은 봄을 놓치고 나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무상無想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진짜 봄이 오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나중에는 내가 살아온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봄이었던 것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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