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을 때 가져가고 싶은 것은?
출근길 엠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두어 번 귓가를 때린다. 조급하던 운전 속도를 가다듬어 본다.
‘죽지만 않고 살았으면 ...‘ 하는 마음이다.
살아 있는 동안 거의 잊고 생각하지 않는 것 하나가 ‘죽음‘인 것 같다.
다가와서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마음이 인지상정이다.
최근 나는 데이팅 하던 상대에게서 나에게 거리 두기를 감지하고 그 길로 그의 레이다에서 빠져나왔다.
만나다 물론 헤어질 수 있다.
그런데 통계적으로 올해 연도에는 50퍼센트의 확률로 그런 비중이 컸다.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면 말로 표현하지 않고 연락을 슬슬 끊어서 나 스스로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상대에게 매칭이 된 것이다.
이 또한 인지상정이라 받아들일지
글 후미에서 내 생각을 밝혀 보겠다.
‘A round peg in a square hole: 네모난 구멍에
둥근 말뚝‘은 모두가 잘 아는 그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1997년에 내놓은 광고,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자신이 네모인지 동그라미인지를 생각해 보면 자신은 알 것이다, 자기 마음을.
나는 ‘다르게 일하고’ 싶었고 그 관계로 꼬이고 축출당한 이력이 있다. 많이 둥글었나 보다.
사실 마음속 공무에 대한 잔불이 남아 있을 것이다, 잘 찾아보면.
그러나 그 시절 그 열정은 지금의 내겐 없다고 보인다.
그게 그대로 있으면 현상 유지가 어려웠기 때문에
스스로가 찬물을 가져다 붓고 뜨거운 불을 껐다.
생각을 잘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포기‘나 ’중단’이 아닌지, 혹은 ‘탈출‘이고 ’달리는 기차에서라도 뛰어내린 용기‘인지를.
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기준이 있는 편이다.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은가?‘가 그 하나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많이 만나 보려고 노력하는데
사람과 가까워지면
솔직히 내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조직에서 네모이든 동그라미든,
실제 내 얼굴형이 점점 네모가 되어 가는 일만큼 그다지 썩 눈에 띄지도, 의식되지도 않는다.
그보다 진정한 ’네모 틀 속 네모 말뚝‘들을 볼 때
답답하고 실망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소통할 수가 없는 사람들,
자기 할 말만 다 하고 “됐죠?” 하는 사람들,
언제 그런 요령은 배웠는지 다 빠져나간 후 페이퍼로 대체하고 마는 사람들,
자신을 바꾸기는커녕 그저 꿀 보직 찾으면서도 타이틀은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
‘스토리’가 없는 그저 그런 사람들이다.
나의 아버지 또한 공무원이었음을 말한 적이 있다.
‘경제적 해자‘는 워런 버핏에게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경쟁자들을 물리칠 경제적 우위 요소, 대개는 ‘자본’이 아닐까? 아버지는 결국 저 해자를 마련하지 못한 채 퇴직하셨고 현재 주택금융공사가 집을 담보로 제공하는 소정의 금액을 생활 기반으로 살고 계시다.
이야기하자면 긴데, 하여간 그렇게 되었다는 스토리이다.
아버지의 간이 다 분해하지 못해
자고 나면 집안 가득 퍼지던 술 냄새를 맡아서인지
우리 남매들은 나름대로 알코올 해독을 하고 살아간다.
버핏이 나의 아버지보다 연장이긴 하다. 올해 나이 95세로 오래 살아 있는 편이다.. 나의 아버지도 그러실 것 같다.
막상 큰 차이가 있다면, 버핏이 60여 년 간 월스트리트에서 시작한 투자의 성공을 거두었다면, 아버지가 그토록 긴 시간 꾸준히 하신 것은 ’과거 회상’ 뿐이었다. 현직일 때나 퇴직 후에나 바뀌지 않은 사실이다.
파트너십이 특히 강했던 버핏에게서 많은 펀드매니저들이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반면 나의 아버지는 누가 귀담아듣지도 않는 이야기를 무한 반복 중이다. 이제 가족들은 다 외워버린 ‘그때 그 시절’ 회고담 말이다.
자식 중 하나인 나는 대놓고 말 허리를 끊어 드린다.
나 홀로 너무 잘났단 분, 그러나 일생 단 한 번도 투자를 하고 수익으로 가져가 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이 가계를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장래 내 자식이 나를 보는 시선은 달라야 한다고,
어떤 식으로든 ‘마인드’만이라도, 혹은 따라 할 수 있는 투자 전략이라도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산 증식‘까지는 이미 늦어 바라기도 어렵지만
자전거를 타는 날은 내게 고심이 깊은 날이기 일쑤다.
‘이제 ‘수저’ 론도 구닥다리가 되어 버리고 ‘사다리‘가 끊어진 판국에 뭘 할 수 있겠나?’하는 생각이 불쑥 들어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누구든지 자기에게 맞는 투자를 찾아서 하면 되지,
어차피 부동산이든 현금 자산이든 출중한 이들은 이미 저 앞에 달려 나갔고 그러므로,
그저 그들도 달렸고 나도 내 페달로 달리면 된다.
정치인 재산 공개가 되고 나니 한바탕 난리가 났다.
‘1.4후퇴 이후 이런 난리가 처음‘이라고들 하며 실소가 퍼져 간다. 돈은 나만 없었지 다들 부자다.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사진을 보면 극명하다.
어디(사진 우)가 일자리이고
어느 쪽(사진 좌)으로 가면 말이 좋아서 자족이지, 베드타운이 나타날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남들이 다 가는 곳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모두들 쳐다보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할까?
이것이 문제다. 남들이 사는 것을, 그중에서도 내가 살 수 있는 제일 좋은 것을 사라는 의견이 많지만, ’ 다수가 가는 데는 큰돈이 없다.’는 말도 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지는 자신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확신하고 매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는 정부가 금융, 세금, 부동산에 대해 급격한 제도
손질을 가하고 있기도 하니 이때를 흘려보내지 말고 사람들의 심리와 추세, 그리고 자신의 니즈를 가려서 크고 작은 투자를 이어가자.
‘인연’이란 누군가 말하길, ‘뿌리고 잇는 것’이라고 했다. 이참에 정치인들에게서 한 수 배워서 우리도 어떤 종목, 어떤 실물자산에 투자하면 그게 인연이 되어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자기 자산에 쏟게 될 것인지 궁리만 들어간다 해도 그것도 대단한 변화 같다.
이번 주에 송희구 작가 원작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방영이 시작된다. 처음 자산과 돈 공부를 시작했을 때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작가는 늘 ‘회사 다닐 때는 회사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해 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직장 일이야말로 가심비 있게, 적정선 내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계가 강한 조직일수록 상부의 눈에 드는 게 중요시되는데, 그래 봐야 대기업 다니며 합산 연봉 삼사억 받는 부부 아니면 돈 안 된다.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 이유이다. 직장 일에 매달리는 것은 투자의 젬병이 되는 길이고 투자하지 않아서 놓치는 기회비용과 이미 회수하기 어려운 매몰 비용이 모두 큰 일이다. 우선 시간 확보부터 해 놓아야 한다.
제목은... 맞다, 생각나시는 그 곡이다.
나는 아버지 세대보다 좀 더 오래 살 것이고
아마도 AI가 가져올 또 다른 변화의 거센 물결이 일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때까지 내가 간직하고 살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란 뜻으로 제시)가
언제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죽을 때까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를 물어서 했다.
나는 돈도 중요하고 거기에 딸린 인간의 심리, 사회 구조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여우 같이 행동할 줄은 모른다.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 사람들은 줄행랑을 치든가
자신은 내게 똑같이 갚아 줄 수 없으니 우왕좌왕했다.
기막히고 슬픈 일이다. ‘돈에 속고 사람에 울고’라는 것이 현실이라니!
그러므로 지치고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반드시 좋은 앞날이 기다린다는 희망을 갖자.
남은 나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으니, 그게 ‘리얼 인지상정‘이고
어떤 사람은 헤어져야 앞길이 열리기도 하는 법.
내 돈, 내 혼을 사수하기 위해
아픔이 있지만 딛고 일어나자. 툭 툭 털자. 부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