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헉, 이게 뭐야?
머리가 복잡했다. 머리가 복잡하니 마음도 답답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잘 풀리지 않는 일과 싸움만 하다가 하루를 보냈다. 아직은 시간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왔다. 답답하던 찰나에 친구에게 하소연 좀 해보려고 서둘러 가게 문을 닫고 인근 돼지고깃집을 찾았다. 등심도 좋아하고 껍데기도 좋아했다. 나는 술을 친구에게 따라 주면서 본격적으로 말을 하려던 찰나에 친구의 넋두리를 듣기 시작했다. 가족과의 불화, 안 풀리는 사업 등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 뭐.” 나는 친구의 눈치를 살피며 내 얘기를 언제 하나 하려고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눈물을 보였다. “힘들었겠구나, 그래.” 나는 울면서도 잘 먹는 친구에게 고기를 맛있게 구워서 앞접시에 놔주고 잔이 비울 때쯤이면 바로바로 가득 따라 주었다.
“그래, 힘내! 파이팅! 잘할 수 있어!”
나는 택시를 타고 떠나는 친구에게 오른손을 꽉 쥐어 보이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서울역으로 갔다. 가장 빠른 부산역을 끊고 기다렸다가 KTX에 몸을 실었다. 눈을 감고 있다가 멍하니 바깥을 보며 다시 눈을 감았다를 반복하다, 깜빡 잠들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역에서 곧장 해운대로 갔다.
폐장한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철퍼덕 앉았다. 푸른 하늘, 파란 파도, 좌우로 펼쳐진 넓은 백사장. 나는 눈을 감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 그때였다.
“떡 좀 사.”
“예? 저요?”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내게 계속 떡 봉지를 내밀었다.
“죄송한데, 제가 떡을 안 좋아해서요.”
“그래도 사.”
“제가 가방도 없고 들고 다닐 때가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떡을 싫어하는 놈이 다 있어.”
할머니는 투덜대며 내 뒤쪽으로 돌아서 가셨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한참을 자연에 몸을 맡길 찰나.
“밤 좀 사.”
“예?”
“떡 싫어한다고 해서 밤 갖고 왔어.”
“예, 주세요.”
“두 개 사. 하나면 정 없지.”
“하나만 살게요.”
“사내자식이 떡 싫다고 해서 밤 갖고 왔더니, 하나만 에이.”
나는 투덜대며 떠나는 할머니를 보며 다시 자세를 잡고 앉았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나온 세월 속에 내가 놓친 부분들을 생각했다. 일과 인간관계, 그러다 사는 게 뭔지까지 생각할 때쯤이었다.
“서울에서 왔어요? 저기요?”
“예? 저요?”
나는 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웬 중년 여성분이 앞에 서 있었다.
“나랑 술 한잔, 할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나는 그래도 별말 없이 떠나는 여성분이 고마웠다. 그렇게 다시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지나가는 여성 두 분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계속 앉아 있네. 궁상떨긴, 영화 찍냐?”
“생긴 거 봐라, 영화 찍게 생겼는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산역으로 향했다. 모래사장에 푹푹, 빠지는 신발과 비릿한 냄새나는 바닷가, 계속 파도쳐오는 심란함을 안고.
부산역을 보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주하세요.”
“예? 저요? 저 천주교 신자라.”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마음이지요.”
나는 시주를 하고 기차에 올랐다.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생각이고 뭐고 따스한 햇볕에 잠이 들었다.
나는 사무실이고 뭐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 대충 씻다, 부산역에서 스님께서 주셨던 종이를 펼쳐 들었다. 무슨 그림 같기도 했는데 접어서 빠르게 주머니에 넣었었다.
‘달마도?’
나는 그냥 이불 뒤집어쓰고 누웠다. ‘인생 뭐, 별거 있나.’ 하며.
-끝-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Image by IgorShubin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