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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고달픈 삶

▶ 세상이 온통 암흑이었다

by 방현일

“제가 말, 씀, 드렸잖아요. 이렇게 해 놓으면 뒤처리는 누가 합니까? 나이 먹었으면 곱게 집에서 밥이나, 에휴~, 됐다, 됐어. 이런 델 나와서 왜 다른 사람한테 까지 피해를 주는지, 아~ 짜증.”

“이봐, 김 반장. 어르신한테 말 너무 함부로 하는 것 아냐.”

“장 씨, 월급 제때 받아 가려면 끼지 마. 어! 누가 누구를 걱정해.”


김 반장은 휘파람을 불며 제2작업실로 갔다.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삼촌이 사장이라고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겁대가리 없이. 내가 언젠가 날 한번 잡아서 김 반장 저 새끼 족치고 만다.”


오래된 시멘트 천장 위엔 날 파리들이 윙윙거리며 새카맣게 흐릿한 형광등으로 몰려 있다. 1960년에 세워진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이곳은 쓰레기처리장과 흡사했다. 2층엔 사무실과 김 반장이 자취하는 방과 거실, 화장실 등이 있고, 1층에는 3개의 작업실로 나뉘어 있다. 제3작업실 한쪽에 자리한 간이 세면실 벽 쪽에 낡은 쇠 파이프 위로 쥐새끼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중앙에 있는 작은 창문으론 달빛이 희미하게 새어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질펀한 공기가 빛을 타고 내려왔다. 오후 8시, 작업 종료 사이렌이 울리고 노동자들은 피곤한 기색이 만연한 채, 정문을 향해 무겁게 한 걸음씩 발을 뗐다. 정 여인은 처진 어깨를 움츠리며 정문을 빠져나와, 시장 어귀에서 콩나물과 가는 멸치를 사 들고 어두운 계단을, 벽을 잡고 올라갔다.

삐거덕대는 초록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민준이 들어왔니?”

“네, 다녀오셨어요? 오늘은 제가 특별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짜잔.”

“이게 다 뭐야? 오늘 무슨 날이니?”

“어머니 생신이에요. 이리로 앉으세요. 여보 들어와.”

“고생이 많구나. 무거운 몸을 끌고 이렇게 많이.”


눈물을 흘리는 정 여인의 뒤엔 남편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그 옆엔 한때는 단란했던 가족들과의 사진이 걸려 있다. 첫째 아들 민식이가 중동으로 떠난 지 5년이 되었고 막내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뱃사람에게 정분이나 바닷가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내외와 살고 있다. 둘째 아들 민준은 공장에서 재봉사로 일하고 있다.


“어머니 저희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요. 서울에 가서 수선집 하며 살다가 돈 벌면 세탁소를 함께 운영할 계획입니다. 잘 모실게요.”

“그렇게 하세요. 어머님.”


며느리는 없는 집에 와서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려 나가는 재간꾼으로 정 여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보세요? 예! 예? 예.”


정 여인은 전화를 받고 쓰러졌다.


“어머니!”


민식의 장례식은 비가 오는 가운데 치러졌고 정 여인은 타국에서 돌아온 차가운 주검 앞에 오열하며 쓰러졌다.


“그렇게 돌아오라고 일렀건만, 나는 어떡하냐~ 나는 몬산다. 이 어민 이제 어떡~하냐. 네 얼굴 네 웃음 이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데. 아이고오 이 어미도 죽으련다, 아이고~ 이렇겐 못 보낸다. 나도 데려가라~ 내가, 내가 죽일 년이다. 제대로 입히지도 멕이지도 몬하고 핵교도 못 보내고~ 나도 죽으련다, 민식아~.”


보상금 1억, 정 여인과 둘째 아들 민준, 막내딸 재령은 보상금을 놓고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엄마, 너무 수척해지셨어요. 일단 저희 집으로 가서 푹 쉬다 올라오셔서 차근차근 생각해 보세요.”


바닷바람은 사람 냄새를 더욱 그리워지게 한다.


“엄마, 알지?”

“올라가마, 나중에 통화하자.”


정 여인은 딸이 싸 준 해산물과 밑반찬을 들고 썰렁해진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집사람과 서울에 가서 자리 잡으면 꼭 모시러 오겠습니다.’


둘째 아들은 편지만 남긴 채, 사라졌다.


“세상에 기가 막혀, 엄마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어? 인간의 탈을 쓰고 그 돈 몽땅 가져갔다고.”

“마라, 그 자식 잽히면 내 손에 아작날끼라. 장모님요 설마 재령에게 안 내어줄라고 짜고 이러는 것 아입니까? 어째 냄새가 나네요.”

“자기 왜 이래~ 엄마한테…. 혹, 엄마, 오빠 연락할 수 있지? 오빠 어딨어! 그 인간 어딨어~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걸 다 먹어. 큰오빠가 날 얼마나 귀여워했는데 아무튼 5천은 내 꺼야!”


민준에게 소식이 끊긴 지는 여섯 달이 지났고 박 서방이 서울에서 봤다는? 말도 몇 번 들었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재령이니, 엄마야 엄마, 왜 집에 한 번도 안 오니? 민준이는 어디에 산다니, 너 모르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요즘 저희도 살기 어려워요.”

“엄만, 니네들과 민준 내외가 잘 지냈으….”

“연락도 안 되는데. 됐어요! 엄마 귀먹었어요? 왜 같은 말만 되풀이해요! 끊어요!”


정 여인은 심하게 몸살을 앓았고 수 시간이 흐르고 깨어났을 땐 물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내가 왜 이러지.’

“여보세요? 재령이니, 나, 눈이 아프고 잘 안 보인다. 지금 와 줄 수 있니?”

“거기가 어딘데 지금 가요~ 안약 넣고 누워 있어 봐요.”


안약 때문인지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정 여인은 콩나물과 가는 멸치를 부엌에 내려놓고 전구를 켰다. 밥통에서 밥을 꺼내 상위에 고추장과 물 한 대접을 놓고 가는 멸치 한 움큼을 손에 쥔 채,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 숟갈 떠 넣었다. 그녀의 뒤엔 남편의 초상화와 가족과의 단란했던 사진이 걸려 있다.


불이 꺼진 건지 어두웠다.


- 끝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Image by SerenityArt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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