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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Jan 22. 2024

바쁜 척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퇴직을 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말이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늘 그랬듯이 집안 청소를 하고, 반려견들을 목욕시키고, 아내와 함께 극장을 찾아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고,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보았다. 


그렇게 반복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지난주와 달라진 것은 이제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몸에 배어있는 습관 때문인지 이른 아침부터 눈이 자연스럽게 떠졌다.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리다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TV 리모컨으로 이 채널 저 채널을 돌려보고, 책장 깊숙이 묵혀 두었던 책을 꺼내 읽다가 저녁 식사를 했다. 그렇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무미건조한 일주일이 지나갔다.


또다시 찾아온 주말, 지난 생활을 곰곰이 돌이켜 보았다.


'일을 하지 않아서 편하기는 한데 이렇게 계속 지내다가는 폐인이 될 것만 같다.'


내겐 변화가 필요했다. 시간을 헛되게 쓰지 않기 위한 나만의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다시 찾아온 월요일, 난 직장인들처럼 이른 시간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인터넷 신문을 둘러보며 이메일을 확인했다. 공공기관, 연구기관이 발표하는 각종 경제 관련 리포트들을 찾아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훑어보기 시작했고, 정오가 되면 점심밥을 먹었으며 한 잔의 커피를 마신 후 양치질을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가 되면 보고서를 작성하듯 뉴스나 경제 지표들 중에서 중요해 보이는 내용들을 간추려 노트북에 정리를 했다. 형광펜으로 핵심 내용에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고는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되면 하루 일과를 마무리지었다. 이렇게 며칠을 지내다 보니 회사에서 일할 때처럼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봐주는 이 없고 관심도 없는 그런 날들이지만 스스로 바쁜 척, 일하는 척하며 하루를 살아가기 시작했다.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퇴물이 되지 않으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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