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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29. 2024

어머니의 보따리에 질투와 사랑의 원천이 실려왔다.

10화 어린 장녀가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법


「나는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유치원에 다닐 때와는 또 다른 격변의 시기였다. 그 당시 어머니는 임신 중이었지만, 이런 나를 위해 학교에서 여러 임무를 맡으며 봉사했다. 학부모 위원회, 녹색어머니회, 교실 미화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중, 녹색어머니회의 임무는 등하굣길에 건널목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학생들의 교통안전을 지키는 것이었다.」


1999년 6월, 어머니가 등굣길 녹색 어머니 활동을 마치고, 교실로 찾아왔다. 담임 선생님은 내게 어머니와 인사하라고 했다. 평소와 다른 상황에 어리둥절했지만, 그녀의 볼록한 배를 쓰다듬으며 인사했다. 그날, 하교 후 집으로 갔을 때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이른 저녁이면 아버지는 집에 돌아왔으나 어머니는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혼자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버지가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며칠 뒤, 봄날의 향기가 물씬 퍼진 사이로 맑은 기분을 느끼며 하교했다. 집 안에는 어머니가 작은 이불 보따리를 들고 앉아 있었다. 나는 눈빛을 반짝였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를 눈길이 가는 대로 둘러보았다. 어머니는 상기된 얼굴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가까이 오라는 그녀의 손짓에 나는 한 발짝 다가섰다. 그녀는 보따리를 방바닥에 내려놓고 풀었다. 정사각형으로 펼쳐진 솜이불 위에 새 생명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정말 작은 아기였다. 몇 년 전, 갓 태어난 남동생도 보았지만, 내 몸이 그때보다 커졌기 때문인지 이 아기가 훨씬 더 작아 보였다. 창문 사이로 햇살이 유난히 밝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손에 닿으면 휘감길 듯 강렬한 한 줄기 빛이, 미약하게 숨 쉬며 고요히 눈 감은 아기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나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아기의 볼을 쓰다듬었다. 손끝에 전율이 흐르며, 가슴에 온기가 번졌다.


『엄마, 혹시 여동생이야?』  나는 달뜬 얼굴로 물었다.

 『응』  그녀도 만면에 그득한 미소를 지었다.

여동생 소희와 처음 만난 순간은 온몸에 희열이 번질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나,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자애는 고공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소희를 사랑하면 할수록, 내가 받을 관심은 줄어들었다. 허공을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애정과 관심이 필요했지만, 그것을 표현할 재간이 없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내게 그 불편한 면 스타킹을 다시 신겼다. 우리는 승강기가 없는 주택 3층에 살고 있었다. 나는 하교 후, 스타킹을 잡아당기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단을 올랐다. 문 앞에 다다르기 서너 계단 전이었다. 평소와 같이 평범하게 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 양다리를 벌리고 서서 그대로 소변을 누었다. 실제로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고민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기저귀가 필요한 아기처럼, 배변 조절에 서툰 아이처럼 소변을 뚝뚝 흘렸다.

나 자신도 당황해서 어머니를 크게 불렀다. 어머니가 나오자 급하게 날조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퉁바리라도 맞을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예상외로 살갑게 맞아주었다. 심지어 미소까지 지었다.

『쉬가 아주 마려웠구나, 괜찮아, 옷 갈아입자.』

그 말은 단순히 허물을 보듬는 것을 넘어, 실수에 놀라 부끄러웠던 나의 부정적 감정을 심해로 잠식시키는 신비의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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