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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황청심환과 마스크

by 윤서린

생애 처음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날 무렵 나는 알바를 하나 더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월, 수, 금 하루 다섯 시간씩 일하면서 기름값 제외하고 월 고정 수입이 70만 원 정도 생겼는데 취미 미술 수업료와 연금보험 납입, 휴대폰 요금, 굿네이버스 아동후원비, 기타 보험료 조금 내고 나면 빠듯했다.

생활비는 남편한테 받지만 몇 년 사이 금리가 부쩍 올라 남편도 집 지을 때 얻은 은행대출 이자를 갚느라 여유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차 마시는 것조차 눈치 아닌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이왕 시작한 일이니 좀 더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자 싶었다.

그래야 내가 사고 싶은 책과 물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 나를 위한 작은 행복거리를 찾는 일에 죄책 감 없이 지갑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평일 오전 시간을 조금 비워둬야 도서관, 지인과의 약속, 시부모님 병원 모시고 다니는 일, 가끔 필요한 행정업무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알바도 당근 어플을 통해 동네 근처에서 찾은 거라 이번에도 당근 알바를 검색했다. 오전 알바 시간을 피한 다른 시간대일 것, 가까울 것, 평일에 가능한 곳.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일은 역시나 허드렛일 밖에 없다.

8개월간 설거지로 단련된 나이기에 아무래도 그게 가장 적합한 것 같아 근처 식당 알바를 검색하고 평일 저녁 세 번 출근하는 식당에 지원서를 넣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간 곳은 특수부위 고깃집이었다.

음식점에 들어서니 마스크를 벗은 건장하고 인상 좋아 보이는 젊은 사장님이 나를 홀 테이블로 안내한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가 8개월간 다른 곳에서 근무한 이력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첫 알바 지원 시 맨땅에 헤딩했던 것보다 면접이 수월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장님이 내게 매장 홀 직원도 구하는데 혹시 해보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첫 알바 지원 시에도 홀에서 일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받았지만 나는 바로 거절했었다.

아무래도 첫 알바이니 모르는 것도 많아 떨리고 무엇보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자신 없었다.

나 같은 소심쟁이는 손님의 표정이나 말투 하나에도 쉽게 상처받을 터라 손님을 응대한다는 건 여간 겁이 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사장님께 생각해 보겠노라고 말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힘이 빠져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 돌아오며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겁내는 걸까? 나는 아직 사회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기 어려운 걸까? 남 앞에 서는 게 아직은 두려운가? ’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어느새 홀 알바를 못하는 이유로 어떤 핑계가 가장 적합한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홀은 아직 무리라고 솔직하게 말할까? 아님 주말 동안 다른 데를 구했다고 할까?’ 첫 번째 이유는 소심함을 들키는 것 같아서 싫고 두 번째 이유는 거짓말이라 싫었다.

주말 내내 어떤 변명을 할지, 문자로 얘기해야 할지, 전화를 해야 할지로 혼자 긴 시름을 했다.

그러다 문득 첫 알바에 도전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래,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거야.‘

‘너도 못하면서 애들한테 사회생활 겁내지 말고 부딪혀보라고 말할 수 있겠어? 나도 못하면서 애들한테 그걸 말하는 건 모순 아닐까?‘


나는 유튜브에서 “음식점 포스기 사용법”에 대한 영상을 검색해 봤다.

제일 겁나는 건 손님이었지만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는 포스기 (주문, 결제 시스템) 사용은 더 겁이 났다.

내가 일할지도 모르는 그 음식점은 테이블에 키오스크가 없어서 손님 주문을 일일이 받아야 한다.

요즘은 각자 계산하는 경우도 많아서 분할결제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음식메뉴와 술 종류도 외워야 한단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설거지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데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어 머리가 더 지끈거린다.


주말 내내 못하는 핑계를 고민하고 사장님께 보낼 문자내용을 머릿속에서 시물레이션 하다가 못 간다고 무르기에는 그만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당장 내일인데 지금 못 간다고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에잇.. 나도 모르겠다. 하루 해보고 영 못하겠으면 그때 얘기하면 되지 뭐. 뭘 이렇게 고민하고 있어… 바보같이..’


그래서 그다음 날 그 바보는 약국으로 향했다.

약사님께 우황청심환을 받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알바하는 곳으로 터털터털 걸었다. 발에 자석이 붙은 것처럼 땅에서 좀처럼 잘 떼어지지가 않는다.

약효가 나오려면 최소 30분은 필요할 터여서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음식점으로 갔다.

출근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테이블 번호와 음식메뉴를 숙지하고 응대 매뉴얼과 주의사항도 읽는다.

분명 우황청심환을 먹었는데도 심장이 주책없이 두근거린다.

‘제발 손님이랑 눈 안 마주쳤으면 좋겠다.‘ 이런 허튼 소망을 품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평소에 맞춰놓고 쓰지도 않던 다초점 안경을 꺼내 썼다.

작년부터 부쩍 나빠진 시력으로 인해 모니터 화면의 글씨와 주문서의 글씨가 잘 안보일까 봐 준비한 안경이었지만 속내는 손님들과의 시선을 피할 블라인드 역할을 기대해서였다.

안경을 코 끝에 걸치고 생눈으로 주문표를 보니 역시나 글씨가 작아 테이블번호가 안보였다. 안경을 챙겨 온 건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휴대폰을 꺼내 포스키 화면의 테이블 위치와 메뉴, 주류 화면을 찍었고 주류 냉장고도 사진을 찍어 술 이름과 음료수 위치를 외울 생각이다.


사장님이 주신 앞치마와 검정 니트릴 장갑을 끼니 뭔가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순간 비장해진다.

부디 이 앞치마와 장갑이 나를 손님들의 거친 말투와 냉담한 표정에서 보호해 주길 바라면서 앞치마 왼쪽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을 총알처럼 장전했다.

포스기 앞에 붙어있는 작은 거울을 통해 나는 나를 바라봤다.

검은색 모자를 눌러쓰고 투명 뿔테 안경에 검정 마스크를 착용한 내 모습은 오전 알바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 다행이다. 역시 마스크 쓰는 건 신의 한 수였어 ‘


내가 이곳 홀 알바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사장님이 쓰고 있던 검정 마스크 때문이었다.

이 음식점은 코로나가 지나간 지 한참이 지났어도 사장님이 마스크를 쓰고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다.

초상권이 보장되는 홀 알바라니…. 이 얼마나 소심쟁이에게 확 끌리는 직장인가?


나는 귀가 땅겨서 아플까 봐 마스크 줄을 힘껏 당겨 길이를 조금 늘려 다시 고쳐 썼다.

얼마 후 삼삼오오 문을 열고 손님들이 들어와 앉을자리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본다.

그 순간 우황청심환을 먹은 내 심장은 안단테로 뛰고 있었지만 마스크로 가려진 내 성대는 한껏 들떠있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편한 자리로 앉으시면 돼요~”

솔과 파 사이의 음으로 만들어진 경쾌한 서비스톤 목소리가 원래 내 목소리인 양 천연덕스럽게 나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낯선 나를 연기했다.

얼굴에 수십 장의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경극 배우처럼 나는 나 스스로에게 알바 인생의 전환점인 제2막의 생활력 강한 주인공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싫든 좋든 무대 위에 올라섰으니 중도에 작가나 감독의 마음에 안 들어 하차하는 주인공이 되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무대에는 사장님 내외와 알바생인 나와 주방 알바생 이렇게가 출연진의 전부다.

앞으로 어떤 관객이 들어와 나와 연기 호흡을 맞추게 될까?

감동 서사 드라마나 시트콤 같은 일상을 연기하게 될까? 아님 나의 처절한 생초보 알바생의 고군분투 모노드라마가 될까?

부디 인생 역경 드라마와 난투극이 난무하는 액션 영화는 찍고 싶지 않다.


띵동~~ 테이블 번호의 숫자가 화면에 뜬다.

“네~~ 주문 도와드릴까요?“ 마스크 속 나는 미소를 뺀채 목소리만으로 웃으며 손님에게 다가간다.

나는 그동안 인생의 조연으로 살아왔지만 나름 연기파 배우라 웃지 않으면서도 웃는듯한 상냥함을 연기할 수 있는 베테랑이다.


‘늘그래야, 오늘부로 생활력 강하고 상냥한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된 걸 환영한다. 준비 됐지?‘


‘자~~~ 레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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