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그런 날이 있잖아? 신경을 곤두 세우는 키보드 자판 소리에 마우스 스크롤 소리가 공사장 소음보다 크게 들리는 날. 하얗다 못해 파란빛이 나오는 모니터에서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글자들을 보다 보면 두 눈이 질끈 감기더라.
- 박아. 오늘 서점 가고 싶지 않아?
- 오! 너무 좋아요.
그런 날 있잖아. 디지털과 관련된 모든 게 싫어지는 날. 나에게 분에 넘치는 기능을 주는 핸드폰도, 편하게 조잘거릴 수 있는 메신저 어플도, 예쁜 사진이 가득한 SNS도 곁에 두고 싶지 않은 날.
나는 그런 날이면 꼭 서점에 가고 싶어 져. 조용하고 따듯한 분위기에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리고, 고소한 책 냄새 가득한 곳. 책을 읽지 않아도 서점에만 가면 국밥 한 그릇 먹은 듯 속이 든든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
우리 사무실은 종로구에 있어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종각에 있는 서점들에 갈 수 있어. 선배와 나는 오랜만메 이른 가방 정리를 하고, 6시 땡 치자마자 사무실을 나왔어. 우리는 그 30분 거리를 조잘거리며 계속 걸었어. 내용은 별거 없어. 오늘 피곤했다는 둥, 점심에 새로 간 카페 커피가 맛있었다는 둥, 키우는 강아지가 귀여웠다는 둥. 사소하디 사소한 이야기들이지.
그렇게 한참을 걸으면 낙원상가 밑을 지나가. 그러면 꼭 그 이야기를 했어.
- 그거 아세요? 궁중에서 떡 만들던 사람들이 낙원동에 와서 궁중떡을 팔기 시작했대요. 그래서 낙원 떡집이 많은 거래요.
그러면 선배는 항상 처음 듣는 말인 양 웃어주더라고. 이미 3번은 한 이야기인데.
떡집 이야기로 한창 떠들다 보면 인사동까지 오더라고. 그러면 이 근처 프로젝트 이야기를 한참 했어. 프로젝트할 때 있었던 일, 인사동 도마 된장찌개가 맛있는데 한 번도 못 먹어 봤다는 이야기. 인사동 스타벅스는 항상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 이야기가 끊길 때쯤 고개를 들면 종로타워가 보여.
그러면 슬슬 다 와간다면서 서점에서 무엇을 할 건지 물어보는 거야. 서점 안에 있는 공차에서 버블티를 먹을 거란 말을 하기도 하고, 새로 나온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해.
아! 이제 다 왔어. 종각역이야. 인사하고 각자 갈 길을 가는 거야.
나는 영풍문고로. 선배는 교보문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