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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이 Aug 12. 2024

같이 퇴근하기

선선하던 6월 어느 날.

유난히 그런 날이 있잖아? 신경을 곤두 세우는 키보드 자판 소리마우스 스크롤 소리가 공사장 소음보다 크게 들리는 날. 하얗다 못해 파란빛이 나오는 모니터에서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글자들을 보다 보면 두 눈질끈 기더라.


    - 박아. 오늘 서점 가고 싶지 않아?

    - 오! 너무 좋아요.


그런 날 있잖아. 디지털과 관련된 모든 게 싫어지는 날. 나에게 분에 넘치는 기능을 주는 핸드폰도, 편하게 조잘거릴 수 있는 메신저 어플도, 예쁜 사진이 가득한 SNS도 곁에 두고 싶지 않은 날.

나는 그런 날이면 꼭 서점에 가고 싶어 져. 조용하고 따듯한 분위기에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리고, 고소한 책 냄새 가득한 곳. 책을 읽지 않아도 서점에만 가면 국밥 한 그릇 먹은 듯 속이 든든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


우리 사무실은 종로구에 있어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종각에 있는 서점들에 갈 수 있어. 선배와 나는 오랜만메 이른 가방 정리를 하고, 6시 땡 치자마자 사무실을 나왔어. 우리는 그 30분 거리를 조잘거리며 계속 걸었어. 내용은 별거 없어. 오늘 피곤했다는 둥, 점심에 새로 간 카페 커피가 맛있었다는 둥, 키우는 강아지가 귀여웠다는 둥. 사소하디 사소한 이야기들이지.

그렇게 한참을 걸으면 낙원상가 밑을 지나가. 그러면 꼭 그 이야기를 했어.


    - 그거 아세요? 궁중에서 떡 만들던 사람들이 낙원동에 와서 궁중떡을 팔기 시작했대요. 그래서 낙원 떡집이 많은 거래요.


그러면 선배는 항상 처음 듣는 말인 양 웃어주더라고. 이미 3번은 한 이야기인데.

떡집 이야기로 한창 떠들다 보면 인사동까지 오더라고. 그러면 이 근처 프로젝트 이야기를 한참 했어. 프로젝트할 때 있었던 일, 인사동 도마 된장찌개가 맛있는데 한 번도 못 먹어 봤다는 이야기. 인사동 스타벅스는 항상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 이야기가 끊길 때쯤 고개를 들면 종로타워가 보여.

그러면 슬슬 다 와간다면서 서점에서 무엇을 할 건지 물어보는 거야. 서점 안에 있는 공차에서 버블티를 먹을 거란 말을 하기도 하고, 새로 나온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해.


아! 이제 다 왔어. 종각역이야. 인사하고 각자 갈 길을 가는 거야.

나는 영풍문고로. 선배는 교보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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