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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이 Aug 26. 2024

옛날이야기

6년 전 작은 파티날

일도 많은데 전국 곳곳에서 오는 퀵 배달에 오전 내내 전화에 불난 날. 컴퓨터에 켠 자료는 어제와 그대로인데 시간은 술술 흐른 날 있잖아? 지칠 대로 지쳐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어.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밥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고. 


    - 저는 퀵 배달받아야 돼서 편의점에서 사 먹을게요. 드시고 오세요.


회사 식구들이 밖으로 나가고 사무실 바닥에 드러누웠어.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고. 그렇게 잠깐 잠이 들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벌떡 일어나서 자리에 앉았지. 평소 같으면 이야기하는데 껴서 한 마디씩 거들텐데, 퀵 기사님들과 통화를 너무 많이 해서 말할 기운이 없더라고. 띠리리링♪ 아, 또 퀵이다. 


    - 네…. 나가요. 


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벌컥 열었어. 그랬더니 케이크 초에 불을 붙이고 있는 선배들과 눈이 딱 마주쳤어.

맞다. 나 곧 생일이지? 퀵 배달을 받고, 다 들켜버린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선물 받았지.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박이의 생일 축하 합니다 


분홍색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꽂힌 초-를 후 불고, 박수 세례와 종이 뭉치가 들어있는 폭죽도 터트려주면서 말이야. 하필 이 타이밍에 퀵이 와서 서프라이즈 파티를 못해줬다고 투덜거리더라고. 그 상황이 재밌어서 웃고 있는데 두루마리 휴지처럼 둘둘 말린 트레싱지 더미를 주더라고. 


트레싱지를 풀어보니 생일 선물이더라. 선물 종류도 가지각색. 현장 다니는 선배는 현장에서 쓰는 레이저 줄자. 스타벅스 마니아는 스타벅스 컵. 후배 중 하나는 연예인 박보검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걸 기억해서 박보검 얼굴이 인쇄된 컵. 일 잘하라고 주는 거라며 업무에 사용할 수 있는 마커랑 명함집을 준 일잘러 선배도 있어. 선물이 다 선물 준 사람다워서 웃음이 절로 나더라니까. 명함집 선물은 조금 독특한 것 같다고 말하니 선배가 말하대. 자기도 예전에 윗선배가 명함집을 선물해 주었다면서, 그 마음이 너무 좋아서 후배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대. 근데 자기가 선물 받은 명함집은 크고 못생겨서 꼭 예쁜 걸 선물해주고 싶었다는 그 말이 너무 좋은 거 있지. 그래서 그 뒤로 후배들에게 명함집을 꼭 선물해 줘. 그러고 말하지. 나도 선배에게 명함집을 선물 받아서 주고 싶었다고. 


언젠가 흘러가는 말로 20살 때 붉은 하이힐 신는 게 소원이었다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기억하고 선배 둘이 하얀 구두를 선물해 줬어. 빨간색은 영 안신을 것 같아서 하얀색으로 준다면서 말이야. 선배들은 참, 이걸 기억해 준다니까. 


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아 체인점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노나 먹던 작은 생일 파티. 접시도 없어서 케이크 상자에 옹기종기 모여 분홍색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쪼개가며 노나 먹었어. 케이크는 작고, 입은 많으니까 금방 동이 나더라고. 잠깐의 달콤한 휴식 덕인지, 여러 사람의 축하 덕인지. 그 뒤론 흥이 나서 일이 잘되더라고. 


그날 이후 회사 형편이 좋아지면서 매해 생일 파티 스케일은 점점 커졌어. 다음 해는 유명 베이커리 카페에서 사 온 비싼 케이크, 그다음 해는 사람 몸집만 한 꽃다발과 윤기 좔좔 흐르는 리본 묶인 선물, 그다음 해는 포장 뜯기도 아까운 디자이너 브랜드 패션 잡화. 그런데 나는 유독 이날이 기억나더라고. 좁고, 작았던 그 생일 파티.


이 생일 파티는 사진 한 장 없이 내 기억 속에만 있어. 단체 카톡방에 사진 몇 장이 올라왔었는데 내가 다운로드하지 않았어. 그냥. 영원히 이런 파티해 줄 줄 알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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