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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N Feb 13. 2024

B. 완벽주의와 살찌는 빵

Brioche

작은 틀하나에 4천 원 큰 틀 하나에 2만 원이라니 손이 떨려 살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할 때 되도록이면 완벽하게, 모양까지 최대한 똑같이 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 집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고 선물 받은 베이킹 틀들이(마들렌 팬, 다쿠아즈팬, 나무 카스텔라틀, 타르트팬, 파이팬, 스프링팬, 머핀팬 등등) 주방 한 곳에 가득 차게 되었다.

 브리오슈는 식빵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눈사람모양의 브리오슈 아 테트는 머핀틀로 대체하기엔 아쉬워 길을 나섰다. 지난번 베이글을 굽는 날, 어두스름한 아침 출근길에 솔방울을 밟아 발목을 심하게 접질려서 절뚝거리면서도 예쁜 모양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찾는 크기의 틀이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가격을 보니 집에 있던 머핀팬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시피에 버터와 계란이 많이 들어가는데, 요즘 물가가 물가인지라, 나의 어설픈 완벽주의는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어마무시한 양의 버터

책에는 세 가지 버전의 브리오슈가 소개되어 있는데 버터 함량이 따라 리치맨, 미들맨, 풀맨으로으로 버터가 가장 비싼 베이킹 재료이다 보니 그럴 법도 하다. 나는 가운데인 미들맨을 선택했는데, 사실 버터를 먹고 살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름 짓자면 팻맨 미들맨 스키니맨이 조금 더 어울릴 것도 같다. 

버터와 계란이 많이 들어가서 냉장고에 휴지를 시켰다가 성형을 하는데도, 손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특히 땋아서 모양을 냈다가 마음에 안 들어 다시 만들려니 처음만도 못한 모양이 되었다. 책에는 분명 반죽이 달라붙고 찐득해지면 냉장고에 다시 넣어두었다가 다시 성형을 하라고 하는데, 남편이 아이와 놀이터에 간 사이 어서 마무리를 해야 했고, 나에게 그럴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나의 얄팍하던 인내심은 더 깊어지기도 쉽게 바닥을 보이기도 했다. 빵에도 예외는 없었다.



브리오슈 아 테트는 눈 내린 다음날 반쯤 녹은 눈사람 모양이 되었다.

처음에 계획했던 완벽주의는 어디로 간 건지, 오븐에서 잘 구워져 나온 브리오슈를 보자, 틀이 없이도 모양이 그럴듯했다. 머핀틀에 넣을 때 중간중간 자리를 비워뒀다면 더 예쁜 모양이 나왔을 것 도 같다. 

벽돌도 만들고 바람빠진 튜브모양 베이글도 만들었으니 이즘 되면 챌린지를 할 때 모양은 거의 포기해야 하나 싶다.

브리오슈는 뭐니 뭐니 해도 그릴치즈 샌드위치가 딱이라 점심으로도 먹고, 아침으로는 간단하게 딸기잼에 곁들여 먹었더니 나는 이제 완벽하게 팻맨이 되어있었다. 발목을 다쳐 많이 못 움직인 탓이라고, 밀가루와 버터 때문이 아니라고 자기 합기화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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