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감상
나에게 있어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조금 각별한 도시이다.
아직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지만, 예술과 낭만의 도시로 잘 알려진 피렌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축구팀 'AFC 피오렌티나'의 연고지이기도 하며,
내가 여전히 왜 좋아하는지 아리송한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무대이기도 하다.
나는 오래전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실망을 하고 또 혹평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제법 오래도록, 또 여전히, 특히 요즘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지만, 과연 나는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들을 종종 읽고 보았고,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는 없다'라는 말을 제법 신뢰한다.
당연히 원작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었고, 영화 역시 보았다.
영화를 보기 이전, 원작 소설은 조금 독특한 구성을 띄고 있다.
바로 <블루 편>과 <로쏘 편> 이렇게 두 편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영화 역시 두 편으로 나뉘어 개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원작의 전체적인 내용을 종합하자면,
이별하고, 엇갈리고, 엇갈리고, 엇갈린 끝에 재회하는 이야기이며,
조금은 진부 할 수도 있고,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원작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이 두 편으로 나뉘어
각기 남/녀의 시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부분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단편의 영화였다.
물론 자연스럽게 각기 다른 넘/녀 주인공의 시각을 보여주긴 했으나,
예상과 다른 영화에 조금 실망 아닌 실망을 했고, 그렇게 혹평을 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지 벌써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원작 소설의 문단이나 문장보다는,
배우들의 대사들과 영화 속 음악과 영화 속 아름다운 피렌체의 풍경이었고,
어느새 작품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원작을 읽으며 그려냈던
내 머릿속의 캐릭터가 아닌, 영화배우들의 모습들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라도 몇몇 장면들 혹은 OST를 마주할 때면,
여전히 가슴 먹먹함과 벅참을 느낀다.
아마도 영화는 구성이나 스토리가 아닌 작품의 감성이라는 부분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영상물만이 가질 수 있는 절대적인 힘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비쥬얼과 사운드 적인 부분은 영상매체가 가질 수 있는 절대적인 강점이기에...
이유는 모르겠다. 그 시절 나는 무엇에 그토록 실망했던 것일까?
이 작품은 분명 원작을 배제하고도 좋은 영화다.
나 따위에게 혹평을 받을 만한 작품은 절대 아니다.
그 시절 나는 뭐가 그리 까탈스럽고 예민하고 못마땅했던 걸까?
분명 나는 이 영화를 실망이라는 포장지로 감싸면서 까지 왜 혹평하려 했을까?
그러면서 어째서 나는 언제부터 이 영화를 이토록 흠모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나 확실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 시절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의 나는 알 길이 없다.
분명 나는 이 영화를 좋아했고, 좋아한다. 앞으로도 좋아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좋아하게 된 이유는 굳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
조만간 시간이 생긴다면 이 영화를 또 원작을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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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지."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정상.
혹시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