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최근 나는 최근 이런저런 저질러 놓은 일들이 많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뭐 결과적으로 내가 저지른 일이니, 감내하고는 있지만,
(역시 좀이 쑤셔 도통 방에 붙어있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며칠 전부터 할 말이 있다며, 만나자던 친구가 결국 지난 주말,
참지 못하고 직접 내 방을 찾아왔다.
그런 친구는 내게 작은 종이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나 - "응? 이게 뭐냐?"
친 - "응 회사 근처에 찻집이 하나 있는데, 네 생각나서 하나 사봤다."
나 - "네가 내 생각을 왜 해? 기분 나쁘게 시리..."
친 - "그래서 안 받을 거야?"
나 - "아니, 뭔지 몰라도 고맙다."
그 종이봉투 속에는 바싹 마른 거뭇거뭇한 찻잎을 이 잔뜩 담겨 있었다.
친 - "야, 그래서 이게 무슨 차냐?"
나 - "응? 네가 샀는데 왜 나한테 물어봐? 나야 모르지!"
친 - "네가 차를 자주 마시니까 보면 알 줄 알았지, "
나 - "내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근데 모르긴 몰라도 이거 제법 돈 좀 줬겠는데?"
친 - "응, 비싸다. 그래서 말인데, 나 내일 출장 가는데 내차 정비소에 들어가 있어, 나 차 좀 빌려주라."
나 - "으응?? 차를 주고 차를 받으려 하네, 가져가, 기름 만땅요! 고급유로요!"
친 - "똥차에 고급유 넣는다고 뭐 좋아질 것 같냐?"
나 - "어허!! 이 사람 똥차라니!! 아참, 그 보조석 문 잘 안 열려 쌔게 열어야 돼"
친 - "애효, 진짜 똥차네!, 잘 굴러는 가지?"
나 - "아 전혀 문제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고객님"
이 친구는 티맵 운전 점수 99점에 빛나는 베스트 드라이버다.
내 운전 경력이 길진 않지만 99점은 처음 본 점수이다.
다른 건 몰라도 차는 믿고 내어 줄 수 있는 친구라는 뜻이다.
그렇게 흔쾌히 차키를 내어 주며,
나 - "차 마셔보자, 금방 끓여 줄게"
친 - "됐다, 됐어, 차사면서 시음 엄청 많이 했다, 알지도 못하는 거 자꾸 마셔 보라고 해서 배부르다."
나 - "그려?, 그래 여하튼 잘 마실께"
그렇게 나는 친구와 한참을 떠들다가, 친구가 떠난 뒤 홀로 그 차를 뜯어 맛을 보았다.
정말 생김새로는 나는 도통 무슨 차 인지 알 수가 없었다.
친구가 사 온 차는 숙차였다. 아마 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친구가 사 온 차 치고는 제법
내 취향에 맞게 잘 골랐다고 생각했다. 본의 아니게 올 가을 첫 숙차를 마시게 되었다.
언제 친구의 회사 근처에서 볼 기회가 된다면,
이 찻집을 한번 방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배부를 때까지 시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