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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Apr 01.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25

제 8 장  꾸리 앗 딘 04

표지 사진 출처: 아르빌 시내 전경 / 나무위키, <아르빌>





제 8 장 꾸리 앗 딘 04



수감된 지 일주일 후에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헌병대장이 직접 나서 훈장 수여식이 있을 거라며 영창에서 현우를 끌어내 씻기고 군복을 사병 정복으로 갈아입히더니 사단장실로 데리고 갔다. 사단장실에서 사단장이 직접 미군이 수여한 동성 무공훈장을 대리 수여하고 테러리스트의 기습공격으로부터 동맹국 병사들의 생명을 구한 공로를 치하했다. 


현우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사단장이 훈장 수여 후에 악수를 청하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현우는 의아하다는 듯 사단장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떠듬거리며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테러리스트를 사살한 적도 미군을 보호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실수로 죄 없는 쿠르드 민간인을 사살했을 뿐입니다. 카심은 제 전담 통역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제가 실수로 죽였습니다. 저는 이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대답과 함께 현우가 사단장이 달아준 훈장을 군복 상의 왼쪽 가슴팍에서 떼어내려고 하자 배석하고 있던 헌병대장과 연대장이 서둘러 입막음을 하고 현우를 사단장실에서 강제로 끌고 나와 헌병대로 다시 데리고 돌아왔다. 현우는 이번엔 유치장이 아니라 헌병대장 사무실에서 헌병대장과 마주 앉았다. 헌병대장은 딱딱하고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Bronze Star Medal & Certificate / 출처: Wikipedia, <Bronze Star Medal>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무척 궁금할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이건 네게 참 잘된 일이다. 우리 측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미군이 뜻밖에 결정을 내려 부대도 너도 참 편안해졌다. 미군도 일이 복잡해지는 걸 원치 않는 눈치이니 너도 아무 소리하지 말고 그대로 따라라." 


"너는 일주일 전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테러리스트의 기습을 받고 교전 중에 적을 사살한 거다. 그 와중에 적의 공격을 받고 위기에 처한 미군 병사 둘을 네가 구해낸 것이고 그 아랍계 꼬마는 교전 중에 발생한 부수적 피해자였다. 알겠나? 미군이 그 아이를 죽인 게 아니라 테러리스트가 우발적으로 그 아이를 죽인 거다. 너는 그 공로로 미군으로부터 동성 무공훈장을 받게 된 거다. 다시 한번 축하한다. 그리고 너는 곧 한국 자대로 전출된다. 그동안 이곳에서 정말 수고 많았다.”


그제야 현우는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현우는 기가 막혔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까 사단장님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은 적도, 적을 사살한 일도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때 라만, 그 죽은 소년의 이름이 라만입니다. 그 아이를 죽이려는 미군들을 저지하려다 그만 오발 사고를 내 제 담당 통역이었던 카심을 쏘아 죽였습니다. 저는 민간인 살해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야지 훈장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헌병대장은 짜증이 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군법회의? 그러면 너는 어찌 될 것 같나? 군법회의가 열리면 너도 부대도 모두 곤란해진다. 그래서 원래 우리는 너를 전장(戰場) 스트레스(CSR:  Combat Stress Reaction)로 인한 정신이상으로 몰아 의병 제대(依病除隊)시킬 작정이었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려니까 이런 행운이 찾아온 거니 천우신조라고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여라. 나는 평생 군 생활을 해왔지만 미군 동성 무공훈장은 꿈도 못 꿔봤다. 그거 하나면 신청만 하면 미국 시민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 라만은요? 그리고 카심은 또 어떻게 됩니까? 비명횡사한 것만 해도 억울한데 죽은 자는 말을 못 한다고 멀쩡한 민간인을 테러리스트로 몰다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 유가족들은 억울해서 또 어떻게 합니까? 배상은 못해줄망정 무고한 고인에게 그런 더러운 누명을 뒤집어씌우면 억울해서 카심의 영혼은 저승에도 못 가고 구천을 떠돌 겁니다. 세상 일이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됩니다.”


헌병대장은 화가 치미는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뭐가 어쩌고 어째? 네 놈은 우리가 여기에 왜 왔다고 생각하나?”


현우가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이라크의 재건을 돕고 쿠르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요.”


“지랄하네. 우리는 여기에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와 있는 거야, 이 밥통 같은 새끼야! 나는 솔직히 이라크 놈들이나 쿠르드 새끼들이 뒈지든지 말든지 아무 관심 없어. 그것들이 서로 싸우다 한쪽이 다른 쪽을 뜯어먹는다 해도 상관 안 해. 우리가 이곳에 누굴 지키거나 돕기 위해 와 있는 줄 알아? 우리는 여기에 단지 미담이나 쌓으려고 온 거야, 이 정신 나간 새끼야!”


현우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남의 나라를 침략해 석유나 강탈하려는 강대국에 빌붙어 떡고물이나 챙겨 먹으려는 것이 기껏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국익입니까? 참으로 자랑스럽네요.”


“이 새끼가 정말? 야 이 개새끼야, 성질 같아선 너 같은 새끼는 네 말대로 군법회의에 회부해 총살시켜야 마땅해. 그런 새끼를 훈장까지 줘서 한국으로 무사히 돌려보내주겠다는데 감지덕지해야지 뭐가 어쩌고 어째? 작년엔 중위 놈 하나가 이발소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자살을 하더니, 이젠 새까만 병장 새끼가 천지 분간을 못하고 기어올라. 아이고, 혈압 올라, 너 같은 새끼는 미군들의 총에 맞아 그냥 뒈졌어야 해! 꼴도 보기 싫으니까 썩 꺼져. 야, 거기 밖에 누구 없어? 이 새끼 당장 끌어내!”


헌병들에 의해 헌병대장실에서 끌려 나온 현우는 그대로 자대에 인계되었다. 비록 헌병대 영창에서는 풀려났지만 현우는 자유롭게 부대원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자이툰 병원의 빈 병실에 격리 수용돼 전출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쇠창살과 헌병만 없다 뿐이지 영창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때가 되면 식사를 날라다 주는 의무병 외에는 그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 수감 생활 아닌 수감 생활은 5일이나 더 지속되었다.


자이툰 병원 빈 병실에 격리 수용돼 있는 남현우 병장 / 출처: Chat-GPT 생성 이미지





<제 9 장  마앗 쌀라마, 이라크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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