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표지 사진 출처: 이라크 소녀의 눈물, 전쟁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 Tears of Iraqi little girl @ AFP, May 7, 2004
이 소설 <<꾸리 앗 딘>>은 사실 픽션(fiction)이라기보다는 팩션(faction)에 더 가깝다. 이 소설 속에는 나의 이라크 전쟁 체험기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나는 2003년 오뉴월 국제적십자요원으로서 이라크 전재민 구호를 위한 긴급의료지원단의 일원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 파견됐었다.(이때의 경험을 다룬 나의 첫 출판작이 바로 <<일랄 리까, 바그다드>>, 일조각, 2015(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7024160&start=slayer)이다. 이라크 전쟁과 국제구호활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한번 찾아 읽어봐 주길 바란다. 참고로 이 소설의 제목인 '꾸리 앗 딘(Coree ad-Din: 선하고 정의로운 한국인)'은 주변의 이라크인들이 우리 적십자 긴급의료지원단의 한국인 단원들에게 붙여 준 별칭이었다.)
나는 그때 전쟁이라는 실제 상황을 영화나 언론 보도가 아닌 현실로 몸소 경험했다. 전쟁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참하고 끔찍했다. 실제로 나는 바그다드에서 임무 수행 중에 두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견디기 힘든 공포가 몰려와 저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이 소설 속에 묘사된 바그다드에서의 에피소드는 90%가 내가 직접 경험한 사건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한밤중에 그린존 외곽에서 벌어진 전투, 쉐라톤 호텔 앞에서 만난 온두라스 출신의 미군 병사와의 대화, 거리에서 구걸하던 아이들, 전화(戰禍)로 철저히 파괴돼 폐허가 돼버린 바그다드의 거리 모습(이 소설 속에 기술된 바그다드의 거리 명칭이나 장소, 그리고 이동 경로는 실제로 내가 임무 수행을 위해 차를 타고 수시로 돌아본 곳들이다.), 그리고 전율이 느껴질 만큼 충격적이었던 그린존 암살자의 문 앞에서 벌어진 총격전 등은 모두 실제 내가 경험했던 사실이다.
특히, 그린존 암살자의 문 앞에서 벌어졌던 총격전은 소설 속에 묘사된 것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나는 그때 정말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 나는 승합차 속에 앉아서 1~1.5미터 전방에서 이라크 반군 한 명이 미군 M-2 브래들리 장갑차가 쏘아대는 25mm 기관포에 맞아 두 다리만 남기고 몸통이 풍선처럼 퍽 터져 버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자다가도 벌쩍 일어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바그다드에서의 에피소드 중에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허구는 그린존 내부의 주이라크 한국 대사관에 대한 기술과 자와라 파크 속의 난민촌에 관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도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첫째, 한국 대사관에 대한 부분은 전쟁 기간 중 주이라크 한국 대사를 지낸 김현명 대사의 회고록 <<이라크, 전쟁 30년 재건 30년: 신의 선물 바그다드에서 보내온 현장보고서>>(2013)와 2005년 해병특수수색대의 일원으로 한국 대사관 경비를 담당했던 김○○ 해병대 예비역 병장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술한 것이다.
김○○ 예비역 병장은 내게 대사관 경비에 관해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들려주었다. 원래 대사관 경비 임무는 육군 특전사 대원들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특전사 대원 두 명이 사소한 시비 끝에 주먹다짐이 오고 가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 사건 이후 경비 임무가 특전사에서 해병대로 이관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김○○ 예비역 병장은 오른손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해병대는 국군 어느 부대보다 부대원들 간의 단합력이 뛰어난 최강의 정예 부대'라고 해병대를 칭송했었다.
둘째, 자와라 파크 내부의 난민촌에 대한 부분은 사실 바그다드가 아니라 마무디야(Mahmudiyah)에서 내가 목격한 난민촌의 처참한 모습을 전용한 것이다. 마무디야는 한국으로 치면 수원쯤에 해당하는 바그다드 남쪽에 위치한 도시로 2003년 3월 말 바그다드로 진격하는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이라크군이 잔여 병력을 총 동원해 최후의 방어전을 벌였던 곳이다.
이 전투로 인해 마무디야는 도시 전체가 초토화 됐고, 이 와중에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살아남은 도시 주민들은 모두 집을 잃어버린 난민으로 전락해 버렸다. 나는 2003년 5월 말 마무디야를 직접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본 난민촌의 모습을 바그다드로 옮겨온 것이다.
마무디야에서 벌어졌던 전투는 바그다드 진격의 선봉에 섰던 미 해병 제1사단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HBO의 미니시리즈 <Generation Kill>(2008)에 실감 나게 묘사되어 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아르빌의 자이툰 부대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허구다. 이 소설은 자이툰 부대 제8진(2008년 3월에서 9월까지)을 모델로 삼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라크에 머물렀던 기간에는 자이툰 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자이툰 부대는 2004년 2월 23일에 창설되었다.) 그 당시 한국군은 이라크 북부 아르빌이 아니라 남부 나시리야에 서희부대(공병대)와 제마부대(의무대)라는 명칭으로 1개 대대만이 주둔하고 있었다.
<꾸리 앗 딘 04>에 실린 '노천 송수관 파손과 수도꼭지 설치 일화'는 사실 아르빌이 아니라 나시리야에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부대로 유입되는 노천 송수관의 취수원도 자브 강이 아니라 유프라테스 강이었다. 그 무렵 나시리야에는 한국군뿐만 아니라 폴란드군, 호주군, 미군이 함께 주둔하고 있었는데, 노천 송수관 파손 문제는 한국군 병사가 기발한 발상으로 해결하기 전까지 4개국 부대 모두가 함께 겪고 있던 난제였다.
한국군이 이 문제를 대번에 시원하게 해결해 내자 다른 나라 부대원들은 입을 모아 한국군의 슬기와 재치를 칭송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우리 적십자 긴급의료지원단을 동행 취재했던 <조선일보> 특파원 이○○ 기자에게 전해 들은 것이다.
비록 아르빌의 자이툰 부대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창작이기는 하나 그것도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자이툰 부대에 대해 방대한 사전 자료조사 작업을 거쳤다. 자이툰 부대에 대한 신문 기사(본문에 삽입된 사진들은 대부분 각종 신문에 실린 것을 차용했다.)를 자세히 검색했고, 자이툰 부대를 다룬 유튜브 영상과 자이툰 부대 참전용사들과의 인터뷰를 첨가해 에피소드들을 재구성해 냈다.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아랍계 소년의 죽음과 주인공의 민간인 사살' 부분만은 순수한 나의 창작이다. 자료조사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지만 그만큼 생동감 있는 글을 쓸 수 있어서 보람 있었다.
이라크 전쟁은 21세기 벽두에 벌어진 추악한 전쟁이었다. 미국은 석유에 대한 탐욕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해 놓고 이라크에서 독재 정권과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해 세계 평화와 자유 확산에 기여하겠다는 치졸한 핑계를 댔다. 소설 속에서 기술했듯이 미국의 거짓말이 들통나는 데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 내부에서 조차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비판받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성 어린 시각을 살펴보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맷 데이먼 주연의 할리우드 무비 <Green Zone>(2010)을 일견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비록 이라크의 평화·재건(자이툰 부대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이다.)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런 추악한 전쟁에 대한민국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다. 파병 당시에 국내에서 거센 파병 반대 여론과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이라크 파병이 한미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국익 차원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오히려 평소 자신의 신념과는 배치되는 선택이었지만 국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린 故노무현 대통령의 고뇌 어린 결단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전쟁의 성격과 실상이 추악하기 그지없었고, 참전의 명분 역시 미약했다고는 하나 그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파병 결정을 내린 국가의 몫이다. 이라크 전쟁에 파병됐던 자이툰 부대 참전용사 개개인은 단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것일 뿐 결코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이역만리 이라크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힘든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낸 자이툰 부대 참전용사들과 지금 이 시간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진력하고 있는 모든 국군 장병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에필로그를 마칠까 한다.
<<꾸리 앗 딘>>을 집필하는 과정은 나에게 이라크에서의 기억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이 에필로그를 끝으로 이라크에서의 기억을 추억 속으로 떠나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