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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Apr 08.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26

제 9 장  마앗 쌀라마, 이라크!

표지 사진 출처: 아르빌에서 철수하기 직전 국기 하기식(下旗式)을 거행하는 자이툰 부대원들 / '육군 홍보대사 최경주 프로의 자이툰부대 귀국보고’, <뉴스데일리>, 2009-01-02





제 9 장  마앗 쌀라마, 이라크!



자이툰 병원 병실에 격리된 지 6일째 되는 날 아침, 인사계 임 상사가 현우의 소지품이 든 더플백을 들고 병실로 찾아왔다. 임 상사는 전출 명령서와 함께 미군 동성 무공훈장이 들어 있는 케이스를 내밀었다.


“이거 챙겨 가라. 마음에 안 들어도 이게 네 무사귀환을 보증해 주는 증표다.”


현우는 말없이 훈장 케이스를 받아 더플백 속에 챙겨 넣었다. 지난 닷새 동안 혼자 지내면서 현우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이미 정해진 수순이고 저항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현우도 이제 지겨웠다. 환멸만 남은 이곳 아르빌을 하루빨리 떠나고 싶었다. 


임 상사는 오늘 오후 쿠웨이트로 출발하는 정기 수송기에 편승해 귀국하게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함께 복무했던 병원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임 상사가 안 된다고 했다.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현우는 묵묵히 임 상사의 지시에 따랐다. 


점심 식사 후 임 상사가 운전하는 지프에 올라 자이툰 부대를 떠나 하울러 공항으로 향했다. 비록 환멸을 안고 떠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지난 5개월 동안 머물렀던 부대이다 보니 미운 정이 들었는지 위병소를 빠져나온 이후에 저도 몰래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었다. 


임 상사가 모는 지프는 20여 분만에 하울러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해 보니 8월의 불타는 태양 아래 이글거리는 활주로 위에 공군 다이만 부대 소속의 C-130 수송기 한 대가 내려앉아 분주히 군수품을 하역 중이었다. 


아르빌 하울러 공항에서 이륙 대기 중인 공군 다이만 부대의 C-130 수송기 / 출처: 이철희, '용감한 자이툰부대 뒤 든든한 다이만부대’, <중앙일보>, 2007-11-26


하역 작업이 끝나고 수송기가 재차 이륙 준비를 마칠 때까지 현우와 임 상사는 혹독한 더위를 피해 공항 청사 로비의 소파에 앉아 대기했다. 하울러 공항의 청사는 작고 초라했지만 그래도 내부에 에어컨이 가동 중이어서 시원했다. 


두어 시간 후 수송기가 이륙 준비를 마치자 탑승하라는 연락이 왔고 현우와 임 상사는 공항 청사를 나서 활주로로 걸어 나왔다. 공항 청사의 유리문을 열고 활주로로 나서자 훅하고 타는 듯한 열기가 밀려들었다. 작열하는 오후의 태양이 내리쬐는 활주로는 말 그대로 불지옥이었다. 


임 상사는 이제 다 끝났으니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잊으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현우의 등을 수송기 쪽으로 떠밀었다. 현우는 임 상사를 뒤로 한 채 더플백을 둘러메고 지열 때문에 아지랑이가 눈이 어지럽도록 피어오르는 활주로를 터벅터벅 걸어 활짝 열려있는 기체 후미의 승강구를 통해 수송기에 탑승했다. 


승무원 중 한 명이 조종실에서 나와 현우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안전벨트를 착용하라고 지시했다. 기내 화물칸은 싣고 온 군수품을 모두 하역한 뒤여서 텅 비어 있었다. 탑승자는 오직 현우 한 명뿐이었다. 이윽고 수송기가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광활한 사막 위를 날고 있는 대한민국 공군 다이만 부대 소속의 C-130 수송기 / 출처: Chat-GPT 생성 이미지


수송기가 급속도로 고도를 올리자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지상의 윤곽이 사라지더니 온통 누런 색 평원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현우는 수송기 기내 자그마한 유리창을 통해 아련히 펼쳐지는 이라크 땅을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이라크 파견을 지원할 당시만 해도 현우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군대 생활이 지겨워 잠시 벗어나 볼까 하는 안일한 생각에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현우가 바그다드에서 체험한 전쟁은 람보류의 영화 속에나 등장하는 스펙터클한 액션 활극이 아니었다. 전쟁의 실상은 너무나도 비참하고 끔찍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악의 축을 제거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세계평화를 수호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 미국을 전쟁으로 이끈 것은 석유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이라크를 돕겠다고 참전한 여러 나라들도 전쟁에 뛰어든 진짜 이유는 헌병대장의 말마따나 자국의 국익 추구였을 뿐이다. 이 추악한 전쟁이 낳은 결과는 죄 없는 이라크 민간인들의 억울한 피와 눈물이었다. 


인사계 임 상사는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잊으라고 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현우는 귀국 후 두어 달 남은 군대 생활과 제대 이후의 삶은 또 어떻게 전개될지 자못 궁금해졌다. 앞으로의 삶에 이라크에서 경험한 일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떠한 결과가 뒤따르든지 간에 분명한 사실은 현우는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문득 라만이 퇴원하기 직전 현우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알려준 아랍어 작별 인사말이 떠올랐다. 아랍어에는 두 가지 인사말이 있다고 했다. ‘마앗 쌀라마(안녕)!’와 ‘일랄 리까(영어의 see you again처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인사말)!’, 라만은 꼭 다시 만나자며 현우에게 ‘일랄 리까’라고 인사하자고 했었다. 


하지만 현우는 아픈 기억과 환멸을 안고 떠나가는 이곳 이라크에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수송기 기내 작은 유리창을 통해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사막을 내려다보며 현우는 속삭이듯 혼잣말로 이라크에 작별을 고했다.


“마앗 쌀라마, 이라크!”


수송기 기내 유리창을 통해 광활한 사막을 내려다 보는 남현우 병장 / 출처: Chat-GPT 생성 이미지





<완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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