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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콩대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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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예랑 Feb 23. 2024

쓰레기 산

04. 영상 2도. 눈이 많이 왔다.

  천천히 걷는다. 몸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이제는 몸이 주는 고통이 두려움이 되어 들불처럼 번져 나간다.

 

  며칠째 비가 온다. 창 너머, 수면에 미끄러지는 물새처럼 빗물을 가르는 자동차의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오토바이가 맹호의 울음을 내지르며 달려간다. 배수관 안의 빗물은 소용돌이치는 급류와 같이 거세게 흐른다. 맨홀 뚜껑 아래 격렬하게 몰려가는 빗물의 소리, 그것을 밟고 지나간다. 새들은 모두 어디로 숨었을까.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별안간 어느 Landfill을 생각했다.

  수많은 쓰레기가 쌓여 땅을 가득 메우고, 산을 이룬 땅. 끝이 보이지 않는 쓰레기의 땅, 황폐하고 척박한 땅. 곳곳에 메탄가스가 피어오른다.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쓸쓸한 풍경이었다. 쓰레기를 가득 실은 수거차가 적막하게 다가와 모든 것을 비워 내고 홀연히 사라지면 사람들은 그 자리에 모여들고 아이들은 저 먼 쓰레기 산 위를 뛰어올랐다. 모든 것이 텅 비었다. 나는 더 이상 무엇인지 모를 만큼 납작해진 어느 캔 위에 서서 끝없는 땅의 끝을 내다보았다. 머리 위, 떼를 이룬 검은 새들이 요란하게 운다. 황량함과 허망함, 나 자신만이 그 길에 있었다. 나는 멀리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너무 멀리 왔을까. 나는 다시 길을 돌렸다. 사나운 슬픔이 밀려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정표와 같은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새의 노래와 같은 목소리가 캄캄한 집으로부터 새어 나온다. 나는 결국, 그 목소리를 따라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내가 제자리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한 아이가 느닷없이 까만 집으로부터 뛰어나왔다. 아이가 분홍색 풍선을 들고 웃음이 만연한 얼굴로 날렵하게 도망을 친다. 곧이어 파란색 풍선을 든 아이가 뛰어나와 그 뒤를 부지런히 쫓는다. 두 아이가 뛴다. 쓰레기 산 위, 분홍색 풍선과 파란색 풍선이 흔들린다. 납작한 쓰레기 땅 위를 한참을 뛰던 아이들은 금세 캄캄한 집 안으로 쏙 들어갔다. 비틀어진 지붕 아래로 각자 뛰어 들어갔다. 오정午正에도 짙은 어둠이 잠식한 그 집 안으로 쑥 사라졌다.  



  비가 오고, 눈이 온다.

  나는 우중雨中에서 생각했다. 그 아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의 곡은 Matteo Myderwyk의 Home입니다.

하루는 어떤 어린이가 제게 그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세상 모든 곳에는 어린이가 있어요." 오늘 유독 그 말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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