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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한낮의 대학 친구 모임

오랜만에 만나도 늘 만났던 것 같이 변함이 없네요(D-156)

오랜만에 대학 동창 셋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졸업, 취업, 결혼 등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꾸준히 만남을 이어온 소중한 절친들입니다.


우리가 함께 공부했던 기계공학과는 공대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학과이다 보니, A, B, C 이렇게 세 개의 반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우연히도 성씨가 모든 "ㅇ"으로 시작하는 셋이 한 반에 모인 것이 인연이 되었던 것이지요.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학 4년 동안 늘 함께하며 쌓은 추억은 지금도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점심은 종로에 있는 '온도(ONDO)'라는 식당에서...

오늘의 만남 장소는 종로입니다.

군포와 구리에 각각 살다 보니, 종로가 중간지점이라 자연스럽게 선택한 장소입니다.

저 역시 종로를 가본 지가 오래된 터라, 겸사겸사 구경도 하고 싶었고요.


약속 시간이 11시 30분인데, 30분 일찍 약속 장소인 '온도(ONDO)'라는 조그마한 식당에 도착을 했습니다. 잠시 창문 너머로 살펴보니 아직 아무도 도착을 하지 않았네요. 원래 돌아다니 걸 좋아하기도 하고, 모처럼 온 종로라 한번 인근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사위 회사가 종로 인근에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나, 큰길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맞은편 건물이더군요. 횡단보도를 건너는 길에 다리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알고 보니 바로 '청계천'이더군요. TV로만 보던 곳이라 막연한 이미지였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맑은 물이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시원스럽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다만, 날씨가 워낙 더워서인지 청계천을 거니는 사람은 거의 없네요.

청계천 한화빌딩.jpg

청계천을 건너자마자 바로 앞의 건물이 사위가 다니는 회사입니다. 디자인은 제가 다니는 회사와 비슷하게 각진 형태인데, 훨씬 세련되고 예쁘더군요. 특히 창문이 독특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태양광 패널을 부착한 친환경 건물'이고, 『2021년 어반 이노베이션 콘퍼런스』에서 리노베이션 부문 대상도 받았다고 합니다. 저희 회사 사옥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 보니, 그냥 '쌍둥이 빌딩'이라는 표현 외에는 특별한 설명이 없더군요. 참고로 여의도 LG 빌딩은 아닙니다.


청계천을 따라 잠시 걷다 보니, 약속 시간이 되어 다시 식당 '온도(ONDO)'로 향했습니다. 도착하니 한 친구는 벌써 와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올 초에 만나고 두 번째 모임인데, 여전히 저를 보자마자 "어디 아프냐?", "몸은 괜찮냐?"하고 걱정부터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제 체형이 중년치고는 셋 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긴 합니다. 키 173㎝에 몸무게 61㎏이니까요. 최근에 살이 좀 붙어서 그렇지 얼마 전까지는 58㎏이었습니다.


자그마한 식당인 '온도'는 종로에서 제법 유명한 덮밥집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사장님이 불편(?)해하시지 않게 '큐브 스테이크'로 통일하여 주문했습니다. 음식이 준비가 되었다고 저희보고 가져가라고 하네요.

좀 희한하게 생긴 쟁반 위에 덮밥, 된장국, 단무지, 김치, 샐러드, 그리고 감태 몇 장이 예쁘고 정갈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일단 한 입 먹어보니, 소문대로 맛도 훌륭하고 양도 넉넉합니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자주 언급되는 불맛도 상당하네요.

온도 종로.png [큐브 스테이크, 온도 외부 모습과 위치]


'응답하라 1988'에 나온 '반쥴(BANJUL)'에서 커피 한 잔

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 오늘 모임을 주도한 친구가 커피 한 잔 하자고 하네요. 예전 같았으면 맥주 한 잔이 자연스러웠을 텐데, 이제는 커피로 대신하다니 조금은 서운한 생각도 드네요.


종로 거리에 온통 커피숍이 즐비한데, 친구는 굳이 골목으로 저희를 이끌더군요. 도착한 곳은 이름도 독특한 '반쥴(Banjul)'이라는 카페인데, 무려 3층에 자리 잡고 있더군요. 입구부터 남다른 분위기가 느껴졌고, 안에 들어서니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선반에는 수많은 종류의 수동 커피 그라인더들이 일렬로 진열되어 인상 깊었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오래되고 먼지 덮인 그라인더도 보이네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곳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응답하라 1988』에 등장했던 바로 그 카페였습니다. 친구가 제법 괜찮은 장소로 저희를 안내한 셈이네요.

반쥴 커피.jpg [종로 카페 '반쥴']

두 친구 모두 작년에 정년퇴직을 했지만, 곧바로 새로운 직장을 구한 대단한 능력자들입니다. 퇴직 전부터 여러 개의 자격증을 취득하여, 한 친구는 이전 직장과 연계된 시공 감리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또 한 친구는 건물 내 특급 전기 관리자로 근무 중입니다.


시공 감리 일을 하는 친구는 대부분의 업무가 지방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집에 올라온다고 하네요. 제가 "중년의 로망 중 하나는 혼자 외지 살이 아니냐"라고 농담처럼 말했더니, "이전부터 계속 외지 살이를 해서 지금은 집에 있고 싶다"라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전국의 수력댐과 수도시설을 몇 년마다 순환 근무했으니, 집 밖의 생활에 신물이 났을 것 같습니다.


건물 전기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반대로, 집 인근에서만 생활하다가 이번에 서울 쪽으로 올라와 외지 생활을 시작한 경우입니다. 역시 혼자 외지 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36년 동안 사무직으로 근무하다가 육체적인 일을 하게 되니, 온몸이 성한 곳이 없다고 합니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높은 곳에 오르다 보니 허리, 손목, 무릎, 발바닥까지 여기저기 통증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더 버텨보되, 몸 상태가 더 나빠지면 일을 그만둘 계획이라고 하네요.


시작은 현재로, 마무리는 과거로

다 큰 어른 셋이 두 시간 넘게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하고, 예전부터 근무하던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겪고 있다면서 속내를 털어놓더군요. 60세를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욕심은 있어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은 큽니다. 하지만 은근한 갑질과 불합리한 대우를 받다 보니, 일에 대한 열정도 식고 불쾌한 기분만 든다고 하네요.


얼마 전 만났던 선배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시작을 먼저 했다고, 경력이 더 있다고, 본인을 무시하고 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많이 힘들었다고요. 그래도 꾹 참고 지내다 보니 지금은 사람들과 가까워졌지만, 처음에는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고 합니다.


한참 동안 현실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부모의 최대 관심사인 아이들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셋 모두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자녀들도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상태입니다. 다행히 모두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큰 불편함 없이 편안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자녀들의 결혼이 새로운 화두가 될 시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만 딸아이를 결혼시켰고 손주도 봤네요.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어느새 아련한 과거의 추억 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군대 시절의 에피소드부터 대학 때 웃지 못할 이야기들까지, 나이를 잊게 만드는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정신은 여전히 그 시절 그대로인데, 몸만 늙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함께 웃고 공감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우정과 기억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 한낮에 만나 점심을 함께하고, 커피 한 잔 나누며 셋이서 짧지만 즐거운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생각에 젖어 봅니다.


앞으로 이런 만남이 얼마나 더 이어질 수 있을까.

다음에는 또 어떤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터널을 무심히 바라봅니다.

몸은 조금씩 늙어가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시절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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