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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May 04. 2024

청포도

    경도네 아빠 엄마는 먹는 것에 큰돈 쓰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는다. 과일은 늘 바나나와 오렌지이고 간식은 늘 과자 나부랭이다. 

    시골 할머니 집에 왔더니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아낌없이 사주시는 것이다. 겨우 한송이에 수천 원씩이나 하는 청포도도 척척 사주시고, 한 주먹에 만원씩이나 하는 체리도 막막 사주신다. 


    제 엄마 아빠는 좀체 사주지 않는 청포도를 맛봤더니 제법 맛이 있었던가 보다. 경도는 5일장이 서던 어느 날, 장터 구경을 갔다 오더니 청포도를 사달란다. (할머니와 고모가 사는 시골마을은 5일장이 열린다.) 그날은 마침 할머니가 출타 중이시다. 고모를 조른다. 

    고모도 제 아빠 못지않게 짠 네가 난다. 채소가게에서 그날 가장 싼 채소만 사서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창조 요리를 하고, 가장 싸게 파는 제철 과일만 사 먹는다. 그런 고모에게 대따 낭비스러운 청포도를 사달라니 될 말이 아니다. 

    그래도 가격이 지난 장날처럼 비싸지만 않으면 사줄 생각이었다. 

    “고모 지금 점심 준비하잖아. 이따가 같이 가보자.”


    점심을 먹으러 돌아온 경도가 검은 봉지를 쑥 내밀며 청포도를 샀단다. 

    “네가 청포도를 샀다고? 무슨 돈으로?”

    “엄마가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 준걸로 샀어.”

    “그래? 얼마나 하던데?”

    “만원.”

    “뭐~어~? 신선하지도 않구먼! 이걸 만원이나 주고 샀어?”

    어째, 이 고모는  애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줄 모른다.


    경도는 엄마가 준 용돈으로 청포도를 신나게 살 때까지는 좋았는데, 고모의 잔소리를 듣고 나니, 어째 돈이 조금 아까운지 고모보고 만원을 달란다. 

    그리고 제 아빠가 오자 쪼르르 달려가 불만을 털어낸다. 

    “아빠, 할머니가 살 때는 오천 원이었고, 내가 가니까 만원 했어. 애가 만만한가 봐.”


    집에서 고모나 이겨먹을 줄 알지, 몰랑몰랑한 네가 어캐 장사치를 이기냐? 할머니도 가끔 장사치들한테 속아 이상한 걸 사 와서는 고모한테 잔소리를 듣는구만.

뤼튼 AI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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