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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May 06. 2024

목욕물

    시골 할머니 집 욕실에는 욕조가 없다. 할머니는 코로나 때문에 목욕탕을 못 가게 되자 플라스틱 반신 욕조기를 샀다. 할머니는 반신욕이 얼마나 좋은 지를 목욕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권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게 시원하다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어린 손자 경도와 손녀 소현에게도 예외 없이 권한다. 

    할머니가 어찌 권하니 경도와 소현이는 자기들도 한번 반신욕을 해보겠단다. 아이들은 그냥 물속에서 첨벙거리는 것이 좋아 그날로부터 욕조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참 귀찮은 일이다. 목욕하라고 들여다 보내면 되던 것을, 이제는 목욕물까지 받아줘야 한다. 목욕을 마치면 욕조기에 낀 때도 씻어야 된다. 

 

    물을 받아주는 고모에게 경도는 어김없이 태클을 건다. 고모가 틀어 놓은 물 온도가 불만인 것이다. 

    “고모한테 따뜻한 물은 나한테 뜨거운 물이야. 고모한테 차가운 물이 나한테 따뜻한 물이야.”

    '그럼 반신욕을 하지 말던가.' 아이들이란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것만으로도 서러운 것이라, 고모가 이 말은 속으로 삼켰다. 

    경도는 차가운 기가 겨우 가신 물에 몸을 담그고는 수영장에라도 온양 파드닥거리며 좀체 나올 생각을 않는다.


    두 아이들의 목욕 시간이 길어지자, 고모의 애들 뒤치다꺼리 시간이 한없이 늘어진다. 애들을 재워야 중드를 보던지 할 수 있는데, 늦게서야 잠잘 준비를 마치고, 누워서도 잠이 오네 안 오네 뒤치닥거리며 옛날이야기를 해달라니 말라니 해서, 애들이 잠들기 전에 고모가 먼저 지쳐 잠들고 만다. 

    고모가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지쳐 잠들고 나면, 그제사 두 아이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조금 더 이리 구르다 저리 구르다, '아, 안 되겠다' 포기하고 잠이 든다. 

    그래, 고모는 가끔은 먼저 잠든 척을 연기한다. 성공하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에휴, 힘들다!

뤼튼 AL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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