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해 Jun 30. 2024

남자아이가 머리를 기를 때

    오늘은 큰고모와 작은 고모가 함께 경도 병문안을 왔다. 사실 경도가 입원한 병동은 간호간병 안심병동이라 원칙적으로는 병문안이 금지되어 있다. 이런 식의 입원 병실은 코로나 시절을 겪으면서 생겨난 시스템이다. 

    실제로는 방문객이 올 수는 있다. 다만 방명록에 이름과 시간을 쓰고 들어가야 하고, 한 환자당 한 명의 방문객만 들어갈 수 있다는 귀찮은 규칙이 있다. 방문객이 둘이면 교대로 들어가서 환자를 만나거나, 환자가 병동 밖으로 나와서 만나야 한다. 

    그래, 오늘은 경도가 복도로 나와 두 고모를 만난다. 큰고모는 경도 머리를 보더니, 머리 좀 깎으라고 또 잔소리를 했다. 경도 머리를 두고 큰고모는 볼 때마다 잊지 않고 잔소리하는 편이다. 경도가 한 번은 머리밑이 간지러웠던지 얼마나 긁어서는 머리밑에 피딱지가 다 생기도록 해놨더랬는데, 그걸 큰고모한테 발각당했다. 그런 후로 큰고모는 잔소리에 더 힘을 실었다. 

    경도는 어제 병문안 왔던 시골 할머니로부터도 '경도야 머리 좀 깎지?' 하는 소리를 들었다.


    경도 머리는 누가 봐도 잔소리를 안 할 수 없도록 특별히 지저분하게 길다. 발가락을 다친 날로부터 지금까지, 이 여름에 지금껏 샤워도 못하고 있는 것도 힘겨울 텐데, 머리카락마저 눈이 덮이도록 덥수룩하니 보는 사람이 경도를 대신해서 가려울 지경이다. 그러니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건넨다. 

    "이 여름에 덥지 않니?" 

    "머리 꼴이 그게 뭐니?"

    "머리는 감고 다니니?" 


    그런데, 경도는 나름 의지를 가지고 일부러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 '한번 사는 인생, 머리도 한 번쯤 길러봐야지'가 경도의 주장이다. 머리카락이 눈앞으로 흘러내리고 머리밑이 가려워도 한 번쯤 길러보겠단다. 경도는 초등학생이지만, 자기주장이 제법 세다. 고모는 이런 개성 있는 애가 좋다.

    "경도, 그런데 사람들은 네 맘을 몰라. 그래서 네 머리를 보면 '이 집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이야? 애 머리를 왜 이 지경으로 놔두고 있어?' 하고 엄마 욕을 하게 되어있어. 그러니까, <나, 머리 기르고 있음, 신경 쓰지 마시오!>하고 딱 써 붙여! 사람들이 오해 안 하게." 고모가 나름 해결책을 제시한다.

    "에휴." 사실, 경도가 이렇게 한숨을 내쉬지는 않았다. 머리를 자기 사타구니 속으로 처박아 넣고 '뭔 소리를 하는 거야?'를 표현했을 뿐이다. 아마 그 모습을 소리로 만든다면, '에휴'의 한숨 소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모는 '네가 기르고 싶으면 길러!'하고 경도 편들어 준다고 하는 소린데, 경도는 조금도 그렇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쩝!


이전 21화 하와이안 컵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