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이 엄마아빠는 맞벌이다. 그래서, 애들을 꼬꼬마 시절부터 저녁밥 먹을 시간에나 집에 들어오도록 학원으로 내돌렸다. 그리고 엄마아빠는 애들은 학원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안심하고 돈 벌러 다녔다.
누나 소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지금껏 학원을 돌린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집에서 엄마아빠의 단도리를 받아본 적 없는 소현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학원에 보낸 과목은 겨우 50점을 넘었고, 그렇지 않은 과목은 줄줄이 30점대다. 이건 한 번호로 찍어서도 나올 성적이 아닌가 말이지. 도덕 같은 과목조차도 그렇다. 도덕은 문장 해석 능력만 있으면 반쯤은 맞출 수 있는 거 아니던가?
소현이 아빠는 답답해서 고모들만 보면 하소연한다.
"우예야 되겠노?"
무위도식하는 고모가 소현이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소현이 아빠가 불쌍해서 소현이 공부를 좀 봐주기로 한다. 고모에게 소현이는 3촌이지만, 소현이 아빠는 2촌이다. 그러니 더 애달픈 것은 고모에게는 동생인, 소현이 아빠다.
밤 9시 30에 카톡의 페이스톡 통화로 만나 공부하기로 한다. 소현이는 늘 '느려터졌다'는 욕을 얻어먹고 사는데, 그 욕을 얻어먹고 사는 것이 억울하지 않지 않은 것이, 진짜로 느리다. 자기 딴에는 애를 쓰지만 늘 십여분 늦게 전화를 한다. 오늘도 40분이 넘어서야 전화를 했다. 시간을 지키는 태도가 중요하느니 마느니, 고모가 잔소리를 좀 날린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뭘 포장해서 오고 어쩌고 하느라고' 하며 핑계가 이어진다.
공부를 하는 중에, 소현이가 뭘 먹는다.
"뭐 먹어?" 고모가 묻는다.
"피자."
"아직 저녁 안 먹었어?"
"저녁 먹고, 이거 포장해서 왔어."
"고르곤졸라?"
"어캐 알았어?"
"고모도 고르곤졸라 좋아해."
"다 식어서 치즈가 딱딱해."
"전자렌즈에 살짝 데워서 치즈를 녹여먹어."
공부할 시간이 다 돼서, 전자렌즈에 놓고 돌릴 시간이 없었단다.
"딴에는 시간 지키려고 애썼네?" 고모는 아까 잔소리한 것이 맘에 걸렸던지라 이렇게 도닥여준다.
"응."
"그건 치즈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시간이 아무리 없어도 치즈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