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해 Jul 08. 2024

예의 없음

    소현이 엄마아빠는 맞벌이다. 그래서, 애들을 꼬꼬마 시절부터 저녁밥 먹을 시간에나 집에 들어오도록 학원으로 내돌렸다. 그리고 엄마아빠는 애들은 학원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안심하고 돈 벌러 다녔다. 

    누나 소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지금껏 학원을 돌린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집에서 엄마아빠의 단도리를 받아본 적 없는 소현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학원에 보낸 과목은 겨우 50점을 넘었고, 그렇지 않은 과목은 줄줄이 30점대다. 이건 한 번호로 찍어서도 나올 성적이 아닌가 말이지. 도덕 같은 과목조차도 그렇다. 도덕은 문장 해석 능력만 있으면 반쯤은 맞출 수 있는 거 아니던가?

    소현이 아빠는 답답해서 고모들만 보면 하소연한다. 

    "우예야 되겠노?"


    무위도식하는 고모가 소현이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소현이 아빠가 불쌍해서 소현이 공부를 좀 봐주기로 한다. 고모에게 소현이는 3촌이지만, 소현이 아빠는 2촌이다. 그러니 더 애달픈 것은 고모에게는 동생인, 소현이 아빠다. 


    밤 9시 30에 카톡의 페이스톡 통화로 만나 공부하기로 한다. 소현이는 늘 '느려터졌다'는 욕을 얻어먹고 사는데, 그 욕을 얻어먹고 사는 것이 억울하지 않지 않은 것이, 진짜로 느리다. 자기 딴에는 애를 쓰지만 늘 십여분 늦게 전화를 한다. 오늘도 40분이 넘어서야 전화를 했다. 시간을 지키는 태도가 중요하느니 마느니, 고모가 잔소리를 좀 날린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뭘 포장해서 오고 어쩌고 하느라고' 하며 핑계가 이어진다. 

    공부를 하는 중에, 소현이가 뭘 먹는다.

    "뭐 먹어?" 고모가 묻는다.

    "피자."

    "아직 저녁 안 먹었어?"

    "저녁 먹고, 이거 포장해서 왔어."

    "고르곤졸라?"

    "어캐 알았어?"

    "고모도 고르곤졸라 좋아해."

    "다 식어서 치즈가 딱딱해." 

    "전자렌즈에 살짝 데워서 치즈를 녹여먹어."

    공부할 시간이 다 돼서, 전자렌즈에 놓고 돌릴 시간이 없었단다.

    "딴에는 시간 지키려고 애썼네?" 고모는 아까 잔소리한 것이 맘에 걸렸던지라 이렇게 도닥여준다.

    "응."


    "그건 치즈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시간이 아무리 없어도 치즈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지." 



이전 27화 구석기 체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