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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백가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난 가족여행

좋은 추억 속에 트라우마가 숨겨져 있다

by 그리여

찌는 듯이 덥던 그해 여름! 가마솥단지를 트럭에 싣고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더위를 피하러 달려간다. 처음 가족이 같이 가는 여행이라 어린 마음에도 설레고 기대했었다. 물론 온전히 우리 가족만 간 건 아니고 상인들과 같이 친목도모 겸 나선 거였다.


우리 동네에서 최고의 휴양지였던 곳은 마을에서 차로 30여 분만 달리면 닿을 수 있는 부리백가였다. 부리백가는 낙동경변을 그 지역에서 부르는 명칭이었다.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붐비는 부리백가는 바다의 해변처럼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어서 놀기에 딱 좋았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뜨거운 모래밭을 밟으며 한참을 걸어가야 물가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래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발이 닿기도 전에 폴짝폴짝 뛰며 내달렸던 기억이 난다.


햇볕을 받아 뜨거웠던 몸을 식히려 우리는 겁 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동네에서 놀던 개울물이랑은 차원이 다른 것인데 어린애들이 어찌 알 수가 있었을까


물살이 보기보다 세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던 순간에 “엄마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물에 들어가자마자 물살에 중심을 잃은 동생은 두 팔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 “엄마야 어째꼬 구슬아 내가 꺼내줄게” 하고 어기적어기적 다가갔다. 그걸 보던 아저씨가 “괴안타 안 깊다”하고 동생의 머리를 밀어 넣었다 건졌다 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고, 나는 무서워서 떨고 있는 동생을 데리고 장난치면서 웃고 있는 아저씨가 밉살스러웠다.


사실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어린아이였던지라 발이 바닥에 자리잡지 못하고 모래 속으로 자꾸만 빠져 들어가니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낙동강변은 모래가 많아 일 년에 한두 번꼴로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었다. 물놀이 갔다가, 다슬기를 잡다가, 여하튼 이런저런 구실로 빠져 죽는 사람이 있었고, 그냥 홀려서 빠져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모래사장이 거의 바다 해변처럼 길어서 엄마를 부르기에는 너무 멀었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까마득했다. 겨우 동생을 잡고 나오려는데 지쳐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제야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동생의 팔을 잡고 끌어올렸다. 너무나 쉽게 올리는 걸 보고 뭔지 모를 억울함이 들었지만 무사히 물에서 빠져나오게 된 상황이 좋아서 안심이 되었다.


힘이 쭉 빠져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어른들이 있는 곳을 오니 엄마가 우리 꼴을 보고 걱정스레 묻는다


“뭔 일 있었나 어예 이렇게 힘이 없노”

“엄마 구슬이가 물에 빠져서 죽다 살아났어”

“뭐라꼬 우예 나왔노”

“아저씨가 꺼내줬어”

“아이고마 큰일날 뻔 했대이”


그제야 옆에 있던 아저씨가 말했다.


“아지메요 별로 안 깊어서 괴아났니더”

“아이고 아재요 어린앤데 얼른 꺼내주지 얼라들이 퍼렇게 질렸고만”


그러고 나서 가마솥 앞에 쪼그리고 있는 우리 자매를 아저씨가 사진으로 찍어주었다.


“고생했대이 웃어봐라 이기 다 추억이대이”


‘뭐라카노 저 아재가’가 속으로 투덜거리고 살짝 흘겨보았다. 눈을 옆으로 살짝 흘기고 입을 삐죽거리며 동생과 둘이 나란히 쪼그리고 앉은 그 모습이 그대로 사진으로 박제되었다. 그 사진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 추억이 어디로 간 걸까 그나마 몇 장 없는 사진이었는데 아쉬웠다.

그날 이후로 물만 봐도 무서웠다. 그렇게 물가에서 많이 놀았는데도 수영을 배우지 못한 건 그날의 기억이 선명해서다. 발이 닿지 않고 모래가 내려앉으며 발이 푸욱 가라 않던 그 기억이 세월이 흘러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물이 얕았지만 모래가 바닥에 있었다는 건 깊이를 알 수가 없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걸 알기에 그 아재의 짓궂은 웃음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고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웃으며 그날의 일을 전설처럼 얘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엄청난 공포였기에 여동생은 아직까지도 물에 들어가서 노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 발이 바닥에 닿지 않던 그날의 공포스러운 느낌에 사로잡힌 어린아이였던 내가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그것의 크기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나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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