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졸다가 가위에 눌리기도 했던 아지터
우리가 성장하면서 방은 작고 눕기가 불편하게 되자, 동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구들장을 놓아주시던 손재주가 많으신 아버지는 부엌 위에 있는 작은 다락방을 보수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다락방은 방에서 올라가도록 작은 계단을 만들어서 편리하였다. 천장이 그리 높지 않아서 들어가면 앉거나 누워서만 놀아야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희한하게 그런 곳을 좋아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부모님이 일하러 가고 안 계신 시간 동안 놀고 자고 먹고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때로는 의사가 되어 진료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디자이너가 되어 옷을 만들어서 종이 인형에게 입히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가 되어 벽에다가 그림을 그렸다. 신문지로 덕지덕지 붙어진 벽에 호랑이도 그리고 산도 그려서 꾸몄다. 또 어떤 날은 칠판이 되었다. 지방 사투리의 차이와 사물들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적어서 붙여놓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잠이 들면 곤하여 가위에 눌리기도 하였다. 벽 한쪽 구석에서 형체가 없는 검은 것이 다가오는 그런 꿈을 꾸면 숨이 막히는 듯이 답답하여 울음을 터트려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공간이 다락방이었다. 자다가 몸부림치다가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문짝이 떨어져 주무시던 엄마가 깜짝 놀라서 깨셨다. 큰일 날뻔했지만 문밑에 아무도 없는 것에 감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계단은 얕았고 마지막에는 넓게 해 두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품은 낡은 다락방은 많은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어느 해인가 피부가 뒤집혀서 얼굴에 좁쌀 같은 뭔가가 울긋불긋 잔뜩 나서 학교를 못 가게 되었다. 학교에서 태권도 동아리를 들었었는데 선배가 걱정이 되어서 병문안을 온 적이 있었다. 나는 다락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작은 창을 열어 인사만 하였다. 가뜩이나 낯도 많이 가리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많이 당황했더랬다.
때로는 친척들이 오면 몰래 숨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인사 안 하고 뭐 하노”벼락같은 소리로 불러 내리셨다. 나는 낯을 가려서 숨은 것인데 엄마는 기어이 인사를 시키신다.
“사람은 인사를 잘해야지 어른을 보고 피하면 안 된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평소에 제일 많이 받는 가정교육이었다. 엄마는 외향적이라 내성적인 나를 이해 못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사람 앞에 나를 들이미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엄마 앞에서는 사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곤 또 말씀하셨다.
“어른에게 꼬박꼬박 말대꾸하면 안 된대이”
그래서 그런가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어른에게 한 번도 대든 적이 없었고, 억울해도 말 한번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원래 타고난 성향이 한몫을 하기도 했다.
다락방에서 쌓은 추억들이 너무나 많은데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다. 비록 작고 볼품은 없었지만 그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선머슴 같던 여동생은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는 걸 기어이 해서 혼나게 되면 다락방으로 후다닥 도망가는 은신처 역할도 하였다.
그러면 엄마는 “마한 거 안 내려오나”하고 말로만 엄포를 놓으시고 싸리빗자루를 바닥에 치면서 공포감을 잠깐 조성하실 뿐 올라가지 않고 내버려 두셨다.
부엌에서 불을 때면 가끔 연기가 새어 올라오기도 하는 엉성한 다락방은 뭔가 크게 보물상자를 가진 것처럼 마음을 풍성하게 하였고 그 안에서 많은 꿈을 꾸었다. 덕지덕지 붙은 낡은 신문과 계단을 올라서면 보이던 내가 그려놓은 수호신 같던 작은 호랑이 그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시는 오지 못할 그 시절 그 다락방에서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냈던 그 어린아이는 지금 자라서 엄마가 되었다. 애들이 자라면서 연필로 뭔가를 자꾸만 벽에 쓰고 싶어서 눈치를 보는 걸 알게 되었다. 낙서를 좋아했던 나는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좋았던 다락방의 기억으로 난 아이들에게 펜을 들려주고 색연필로 낙서를 하게 했다. 벽마다 그림이 그려지고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려두면 나는 그 옆에 새를 그리고 나무를 그리면서 아이들과 벽마다 낙서로 채웠다.
다락방은 아니었지만 방마다 거실벽 곳곳이 내가 다락방에서 그러했듯이 아이들의 꿈으로 채워지길 바랐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어수선하고 지저분할 수도 있는 집을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선사했더랬다. 그 안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림으로 때로는 알 수 없는 기이한 형체로 남아 있다. 남길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식탁 밑. 천장(문갑을 타고 올라가 기어이 팔을 뻗어서 한 거 같다). 장롱문틈. 베개 등등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도 낙서가 되어 있어 찾는 재미도 쏠쏠하였더랬다.
작고 볼품없었던 화장실 없는 그 작은 집이, 그 다락방이 내게는 다시는 보지 못할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어린 시절의 보물을 숨겨두었던 그곳이 이사를 하면서 없어진 게 가장 아쉬웠다.
그 다락방이 그리운 건 아마도 활기찬 엄마와 우리의 추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몰랐겠지만 그 시간이 우리에게는 호사스러운 낭만이었고, 나만의 블루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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