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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의 먹거리는 그리움으로 10

봄이면 입맛 돋우던 절인 무청

by 그리여

엄마는 겨울이면 식구들이 신김치를 싫어하는지라 김장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꼭 하시던 게 있었다

싱싱한 무청에 배추를 조금 넣고 물도 적당히 부은 다음 소금을 넣어서 항아리에 담아서 절여 놓으셨다


꽃피는 봄이 되면 입맛이 떨어지고 먹거리가 줄어든다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도 쉽지 않던 시절이었지

신김치를 좋아하지 않으니 뭔가 상큼하게 입맛을 돋울 것이 필요한 시기였다

봄을 대비하면서 만들어 두신 게 바로 절인무청이었다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봄이 오면 입맛이 없어서 그런가 엄마 음식이 늘 생각났었다

우리가 해봐야 뭘 얼마나 해 먹었겠는가

요즘처럼 마트 가면 다 살 수가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니까 대체로 먹는 게 부실했다

그래도 엄마가 늘 밑반찬을 해서 바리바리 싸다 주신 덕분에 굶지 않고 살았을 뿐이었지

그것조차도 거리가 멀어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고 꽃피는 봄이 된다

엄마 우리 왔어

그래 배고프지 밥비벼줄까

좋지

우리는 기대하는 게 있다


큰 멸치 몇 마리 넣고 파도 잔뜩 넣어주고 대충 으깨서 숙성한 된장을 넣고 짭조름하고 자작하게 된장찌개를 끓인다

겨우내 숙성된 무청을 꺼내서 쫑쫑 썰고 채친 무를 같이 섞어서 맛깔나게 조물조물 무친다


양푼이에 금방 한 밥, 된장찌개의 건더기, 맛나게 무친 무청, 고추장을 넣어서 슥슥 비빈다

마지막에 참기름도 휙 둘러준다

와 맛있겠다

자 모두 덤벼

동생이랑 나는 바로 한 숟가락 한입 가득 넣고 만족스러워한다

무청이 아삭아삭 씹히면서 입맛이 살아난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아삭한 무청과 맛난 된장찌개가 어우러진 맛은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는 맛이다


양푼이에 양껏 비벼주신 밥을 정신없이 먹다 보면 배가 금방 불뚝 솟아오른다

나 그만 먹을 거야

안돼

잘 먹다가도 누가 그만 먹는다고 하면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숟가락을 놓는다

나두 안 먹어

아무 말 안 했으면 다 먹었을 텐데 항상 엔딩은 서로 못 먹겠다고 배를 튕긴다


두어 숟가락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도 서로 먹으라고 밀치면서 숟가락이 야단스럽게 움직인다


배불러 더 못 먹겠다 이러다가 배 짜고 나겠다

나도 더는 못 먹어 눈 돌아가게 배불러

그러면 이거 반씩 나눠서 해결하자

그러곤 나누어서 밀친다

조금만 아 진짜 조금만 하면서 서로 밀어준다


양푼이에 비빈 밥을 먹을 때는 항상 아웅다웅하면서 먹어야 더 맛있는 법이다 희한한 법칙이지


양푼이에 비벼서 밥을 먹으면 조절이 안 되는 단점이 있다

내가 얼마나 먹었는지도 모르게 먹다 보면 필시 과식을 하게 마련이다


손 큰 엄마덕에 우리는 항상 과식을 했다

그걸 다 먹는 우리도 대단하다

맛있었으니까 다 먹을 수밖에 없었지



해마다 봄이 오면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다

그걸 재현하려고 해 봤지만 뭔가 2%가 부족하다

항아리에서 숙성시켜야 하는데 김치냉장고에 넣어서 그런가

숨 쉬는 항아리에서 자연숙성 시킨 그 맛을 재현시킬 수가 없었어


엄마 이걸 먹으려면 시골 가서 살아야 할까

아니지 엄마가 해줘야지


엄마 듣고 있지

비법 좀 알려주고 가시지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거라 뭔가 부족하네

아마도 비법은 엄마의 손맛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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