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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의 먹거리는 그리움으로 9

밥 위에 쪄주던 밀가루빵

by 그리여 Dec 31. 2024

밥이 부르르 끓어오르면 엄마는 가마솥을 여시고

젖은 면포를 펼쳐서 깔아놓으시지

그 위에 살짝 부풀어 오른 반죽을 올려놓으셨어 그리고는 솥뚜껑을 닫으시지


밥이 익어가는 냄새가 나면서 구수한 냄새도 같이 났어

흔히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어

밥물이 스며들면서 반죽은 부풀어 오르고 뭔가 달큰하고 익숙하지 않은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침이 고일 때쯤 밥을 뜸 들이기 전에 솥뚜껑을 열어 꺼내신다

약간 노르스름하게 미색이 나면서 부풀어 오른 밀가루는 더 이상 밀가루 덩어리가 아니었다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처음으로 빵을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그 맛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부드럽고 단맛도 미세하게 나고 그렇다고 떡 맛도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맛있는 이 녀석


아마도 가마솥 안에서 밥물과 향이 얹어지면서 더 맛있는 새로운 것이 창조되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엄마는 한번 해본 새로운 것은 두 번은 해 주시지 않았다

물론 바빠서 그런 거였겠지

한 번이라도 먹어볼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엄마의 실험정신 덕분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 아쉽고 먹고 싶다

잊고 있었던 가마솥빵은 겨울이 되면 유난히 더 생각난다

그날 가마솥 안에서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솔솔 풍기던 무엇인가가 익는 냄새


크기와 모양은 많이 다르지만 호빵을 커다랗게 부풀리면 이런 모양이지 않을까

앙금 없는 빅호빵이었나 보다

맛은 호빵과는 완전히 달랐다 겉모양만 비슷할 뿐


떡도 아니고 구운 빵과는 완전히 다른 그 어떤 중간의 맛


기억에서 느껴지는 그 맛을 이제는 다시 먹을 수 없으리라

가끔 미치도록 생각이 나는 건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일까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항상 열심히 살아서 딱히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지만 그래도 엄마와 있었던 그 시간으로 잠깐이라도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을 말하고 싶고 듣고 싶은 걸까 생각해 본다

딱히 답이 없는 부질없는 생각이다 삶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는 없으니 기억에 의존하여 그 시절을 박제한다


요즘은 어디를 가더라도 빵집이 넘쳐난다

조그만 시골동네에도 커다랗게 베이커리카페라고 간판이 걸린 곳이 많아서 놀랍다

그리고 차들이 주차장에 빽빽해서 더 놀라웠다 다들 어떻게 이렇게 알고 찾아올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대형빵집이 우후죽순 늘어나서 가는 곳마다 눈에 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나 빵을 좋아했던가

물론 빵만 파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든다


빵 냄새는 유혹적이다

기억 속의 밀가루빵만큼 유혹적인 냄새는 아직 못 맡아서 빵집을 지나쳐 간다



#밥위에쪄주던밀가루빵

#추억

#먹거리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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