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출했다 돌아온 엄마가 담임 선생님께 사과하는 날이 있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사과하는 모습이 아니라 과하게 치장한 엄마 모습이. '검은색 롱부츠, 알록달록한 치마, 화장으로 하얘진 얼굴과 새빨간 입술, 파란색 안경.' 사과는 요란하지 않고 진솔하게 해야 하는데 엄마의 겉모습은 사과할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엄마가 화를 내며 말했다.
"집나 간 사실을 선생님한테 왜 말했어."
그 말이 '힘들어도 밝은 척했어야지'라는 핀잔처럼 들렸다. '엄마가 없는 동안 힘들었지?'라는 말을 기대했는데 되레 야단친 엄마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여러 명의 엄마와 마주한 기분이었다. 과하게 꾸민 엄마, 내 슬픔은 모르는 척하고 싶은 엄마, 부끄러움을 덮고 싶어 화를 내던 엄마.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듣고 싶었던 그날, 나는 엄마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복잡한 거짓이 늘 단순한 진실을 덮으려 한다는 걸.
그날, 내 눈에서 세상을 보는 차가운 시선이 태어났던 걸까. 모든 진실이 거짓에 둘러 쌓여 있는 곳, 눈에 잘 보이는 거짓은 밝고, 거짓에 덮인 진실은 어두운 곳, 그게 세상 같았다. 눈앞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을 보면 괜히 의심스러웠다. '저 웃음은 진짜일까? 마음도 웃고 있는 걸까?' 의구심을 품는 습관 때문에 가끔 '냉정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숨은 진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서늘한 시선이 유용할 때도 있었다.
"Y 대학까지 나와서 일을 그렇게 밖에 못하는지 참..."
직장 내 좋지 않은 평가를 듣는 A. 사실 A는 입사 당시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망주였다.
'최고의 인재가 들어왔다',
'집도 부자인 데다 부모님 직업도 좋다'
A를 둘러싼 평가에 여러 사람이 한 마디씩 보탰지만 나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A를 둘러싼 안 좋은 소문이 돌았다.
'일할 때 실수가 너무 많다.',
'공부만 해서 그런지 융통성이 없다.'
사람들은 A가 없는 곳에서 수군거렸지만 나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만 생각했다. 'A는 아직 신입사원이다'
예쁜 얼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 SNS로 봤던 B의 모습이다. 반면 직장 생활에서 B는 말 수도 적고, 잘 웃지도 않는다. 너무 상이한 모습에 사람들이 말했다.
'일이 얼마나 하기 싫으면 저렇게나 조용하게 있을까?'
'일도 좀 웃으면서 하면 좋을 텐데.'
사람들의 섣부른 추측과 달리 함께 일해 본 B는 그저 '일 할 때 진중한 사람'이었다.
내가 말이 없거나, 냉정한 모습을 보일 때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혹시 T(사고형 성격유형)에요?"
성격 유형이 자꾸 바뀌어서 '잘 모른다'라고 답한다. 정말 모르겠다. 단지 모두 A를 비난할 때 '아직은 신입 사원', B를 오해할 때 '진중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걸 보면 차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서늘하게 바라보지만 따뜻하고 싶은 사람'이랄까.
확언 아닌 소망처럼 보이는 내 성격은 엄마가 학교에 사과하러 온 날 만들어졌을지 모른다. 잊고 싶은 하루였지만 살면서 그날의 엄마 모습이 자주 떠 올랐다. '미움'이라는 단어와 함께. 그날 엄마가 왜 미웠던 걸까. 엄마가 잘못을 숨기려 해서 그런 걸까. 과하게 꾸민 엄마 모습 때문일까. 내게 '미안하다' 사과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이런저런 이유만 생각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미움도 결국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말이다. 사랑하니 그립고, 그리우니 미운 거였다.
'꾸미지 않아도 좋고, 방긋 웃으며 간식을 만들어 주던 엄마.'
미움의 깊숙한 곳엔 솔직하고 다정한, 내가 사랑했던 엄마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날, 나는 눈앞에 있는 엄마를 보면서도 엄마를 그리워했다. 화려하게 꾸민 엄마가 아니라 '그냥 우리 엄마'라서 좋은 그런 엄마를.
이젠 엄마가 서늘하게 미웠던 그날을 생각하면 '사랑'이란 단어도 함께 떠 오른다. 따뜻하고 싶은 내가 조금 더 따뜻함에 가까워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