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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Nov 20. 2024

서늘한 미움 따뜻한 사랑

# 기억의 조각


"어머니, 애가 자주 울어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어린 시절, 가출했다 돌아온 엄마가 담임 선생님께 사과하는 날이 있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사과하는 모습이 아니라 과하게 치장한 엄마 모습이. '검은색 롱부츠, 알록달록한 치마, 화장으로 하얘진 얼굴과 새빨간 입술, 파란색 안경.' 사과는 요란하지 않고 진솔하게 해야 하는데 엄마의 겉모습은 사과할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엄마가 화를 내며 말했다.

 "집나 간 사실을 선생님한테 왜 말했어."

그 말이 '힘들어도 밝은 척했어야지'라는 핀잔처럼 들렸다. '엄마가 없는 동안 힘들었지?'라는 말을 기대했는데 되레 야단친 엄마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여러 명의 엄마와 마주한 기분이었다. 과하게 꾸민 엄마, 내 슬픔은 모르는 척하고 싶은 엄마, 부끄러움을 덮고 싶어 화를 내던 엄마.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듣고 싶었던 그날, 나는 엄마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복잡한 거짓이 늘 단순한 진실을 덮으려 한다는 걸.      


 그날, 내 눈에서 세상을 보는 차가운 시선이 태어났던 걸까. 모든 진실이 거짓에 둘러 쌓여 있는 곳, 눈에 잘 보이는 거짓은 밝고, 거짓에 덮인 진실은 어두운 곳, 그게 세상 같았다. 눈앞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을 보면 괜히 의심스러웠다. '저 웃음은 진짜일까? 마음도 웃고 있는 걸까?' 의구심을 품는 습관 때문에 가끔 '냉정하다'는 소리도 다. 하지만 숨은 진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서늘한 시선이 유용할 때도 있었다.


"Y 대학까지 나와서 일을 그렇게 밖에 못하는지 참..."

직장 내 좋지 않은 평가를 듣는 A. 사실 A는 입사 당시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망주였다.

'최고의 인재가 들어왔다',

'집도 부자인 데다 부모님 직업도 좋다'

A를 둘러싼 평가에 여러 사람이 한 마디씩 보탰지만 나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A를 둘러싼 안 좋은 소문이 돌았다.

'일할 때 실수가 너무 많다.',

'공부만 해서 그런지 융통성이 없다.'    

사람들은 A가 없는 곳에서 수군거렸지만 나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만 생각했다. 'A는 아직 신입사원이다'


 예쁜 얼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 SNS로 봤던 B의 모습이다. 반면 직장 생활에서 B는 말 수도 적고, 잘 웃지도 않는다. 너무 상이한 모습에 사람들이 말했다.

'일이 얼마나 하기 싫으면 저렇게나 조용하게 있을까?'  

'일도 좀 웃으면서 하면 좋을 텐데.'

사람들의 섣부른 추측과 달리 함께 일해 본 B는 그저 '일 할 때 진중한 사람'이었다.  


 내가 말이 없거나, 냉정한 모습을 보일 때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혹시 T(사고형 성격유형)에요?"

성격 유형이 자꾸 바뀌어서 '잘 모른다'라고 답한다. 정말 모르겠다. 단지 모두 A를 비난할 때 '아직은 신입 사원', B를 오해할 때 '진중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걸 보면 차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서늘하게 바라보지만 따뜻하고 싶은 사람'이랄까.


 확언 아닌 소망처럼 보이는 내 성격은 엄마가 학교에 사과하러 온 날 만들어졌을지 모른다. 잊고 싶은 하루였지만 살면서 그날의 엄마 모습이 자주 떠 올랐다. '미움'이라는 단어와 함께. 그날 엄마가 왜 미웠던 걸까. 엄마가 잘못을 숨기려 해서 그런 걸까. 과하게 꾸민 엄마 모습 때문일까. 내게 '미안하다' 사과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이런저런 이유만 생각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중요한 걸 놓치고 다. '미움도 결국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말이다. 사랑하니 그립고, 그리우니 미운 거였다.


'꾸미지 않아도 좋고, 방긋 웃으며 간식을 만들어 주던 엄마.'


미움 깊숙한 곳엔 솔직하고 다정한, 내가 사랑했던 엄마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날, 나는 눈앞에 있는 엄마를 보면서도 엄마를 그리워했다. 화려하게 꾸민 엄마가 아니라 '그냥 우리 엄마'라서 좋은 그런 엄마를.


 이젠 엄마가 서늘하게 미웠던 그날을 생각하면 '사랑'이란 단어도 함께 떠 오른다. 따뜻하고 싶은 내가 조금 더 따뜻함에 가까워진 걸까.





# 비 오는 날의 편지



엄마.

어릴 적에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자주 봤어.

밥로스라는 텁수룩한 수염 기른 화가 아저씨가

그림을 그리는 내용이었지.


스케치 없이 그려지는 수채화가

너무 신기하기도 했지만

따뜻한 말에 큰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


'어둠과 빛, 빛과 어둠,

그림에는 항상 이 둘이 있어야 한다.

빛에다 빛을 더하면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

어둠에 어둠을 더해도 아무것도 없다.


삶도 마찬가지라서

가끔씩 슬픔이 있어줘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나도 지금 행복한 시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멋진 말이지?

부인과 사별한 밥 아저씨가 해 준 이야기야.

엄마와 사별했던 내가 큰 위안을 받았던 말이기도 하고.   


엄마.

밥 아저씨 말처럼

어둠에 어둠을 더해도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데

난 어둠만 계속 더했던 것 같아.

미움에 미움만 더했거든.


집 나간 엄마가 밉고,

돌아와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던 엄마가 밉고,

하늘로 떠 나버린 엄마가 미웠어.


미움에 휩싸이니까

세상이 전부 거짓처럼 보였어.

보는 눈이 차가우니까

마음까지 차가워져서 사람을 잘 믿지 못지.

 

차가운 태도 때문에

가끔'냉정하다'는 평가를 받

좋은 점도 있어.

진실 아닌 거짓에 동조하는 걸

공감으로 착각하지 않을 수 있거든.


엄마.

미운 감정에 오래 머무르다 보니까

보이는 게 뭔 줄 알아? '사랑'이야.

엄마가 미운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유는 딱 하나, 사랑했으니까 미운 거였어.


참 신기해.

미움을 더하면 미움에 갇혀 버릴 줄 알았는데

결국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는 게.

빛이 밝다는 걸 알려면

어둠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것처럼

사랑을 알려면 미움에 오래 머물러야 하나 봐.  


엄마.

요즘 난 미움의 종착점에서

미움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고 있어.

그 출발점에 있는,

내가 사랑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거든.


엄마.

미움으로 지나 온 길은 좀 서늘했지만

사랑으로 돌아가는 길은 좀 따뜻하고 싶어.


돌아가는 길엔 미웠던 엄마 모습보다

솔직하고 다정했던 엄마 모습을

더 많이 생각나게 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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