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올여름 너무 더웠지? 그때만 해도 지긋지긋한 무더위가 도대체 언제 끝나냐며 푸념 섞인 한숨으로 지친 나날을 보냈던 거 기억나니? 이젠 가을바람과 가을비가 온누리에 묻어 있던 더위를 걷어가는 것 같구나. 자고로 하늘은 맑고 지식의 살을 찌우기 딱 좋은 계절이 찾아온 거지. 시험 끝나고 선생님이 말한 대로 요즘 책은 읽고 있니? 안 읽고 있구나...
올해 틈날 때마다 그럴싸한 경구로 포장한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 귀 아팠지? 아이유가 부르는 <잔소리>는 좋아하지만 실은 선생님이 잔소리가 그리 많은 스타일은 아니란다. 선생님이 해왔던 말들의 본질은 인격적인 감화였지 절대로 귀 따가운 잔소리가 아니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지금 당장 이해하진 못해도 언젠간 이해할 거야. 강제적, 억압적인 공포 분위기를 적당히 만들어서 너희를 지도하면 선생님 입장에서 학급 관리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야. 하지만 그러기는 싫었지. 왜냐하면 선생님 자신이 비강제적, 비억압적인 인간이고, 개인의 개별성과 자유를 존중하며, 무엇보다 독재와 독단을 염오 하거든. 민주주의 만세.
사실 너희라는 원석이 너무 찬란히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거칠고 투박한 망치질보단 미숙한 솜씨나마 부드럽고 세심하게 다듬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단다. 선생님도 너희만 했을 때는 그렇게 어른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는데, 결국 어른들의 잔소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안목이었고 깊은 지혜였음을, 선생님도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단다.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구나. 잘 새겨들었으면 한다. 예전에 선생님이 서른 후반쯤 되었을 때 곧 다가올 마흔이라는 나이가 너무 두렵게 느껴지는 거야. 마흔이 되는 게 너무 싫었던 거였지. 서른까지는 어떻게든 청춘의 범위 속에 욱여넣을 수는 있다 쳐도 마흔이란 숫자는 이제 진짜 나이가 들었다는 막연한 현실 감각이 찾아왔거든. 젊음을 상실해 가는 기분이랄까? 마침 마흔 중반쯤 되는 선생님과 사적으로 이야기할 자리가 있었어.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파생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화의 화제가 어느 순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으로 바뀌었어. 어느 날 신이 나타나 당신을 5년 전으로 돌려줄 테니 얼마의 금액을 지불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과연 얼마를 지불하고 5년 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냐는 거였지. 내가 이것저것 5년의 연봉과 기회비용을 계산하는데 정신이 팔릴 동안 그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어. 최소 10억이라고. 10억이라는 숫자가 내 예상보다 컸어서 조금 놀랐지. 5년 연봉은 10억에 한창 못 미치는데 왜 10억이냐고 조심히 여쭤봤단다. 그 선생님은 젊음이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10억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고 하셨어. 고작 5년을 되돌리는 건데 10억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건 그만큼 시간을 금이라고 여기신 거지. 그 선생님 입장에선 5년이란 시간은 현재의 삶을 혁신적으로 뒤바꿀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야.
칠판지우개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단다. 40살은 45살에 비하면 5년이나 젊은 시간인 걸 모르고 이미 흘러버린 30대를 붙잡으려고만 했던 선생님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었단다. 40살을 40대로 뭉뚱거리며 나이를 먹었다고 겁먹는 것은 어리석은 범주화 논리에 지나지 않았음을 그때 깨달은 거지. 함부로 흘려보낼 시간이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단다. 17살도, 45살도 독자적인 아름다움이 있단다. 물론 17살이 부럽기는 해. 젊잖아. 현실적인 요건에 구속받지 않고 뭐든 도전할 수 있는 나이잖아.
17살, 정말 아름다운 시절이야. 열일곱이란 나이는 언젠간 터뜨릴 꽃망울을 소중히 머금은 채 청초한 새벽이슬을 맞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겠지. 그 언젠가의 찬란한 개화를 위해서 말이야. 지금 너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곧 미래의 너희들을 만들어 가는 하나의 과정이란다. 어떻게 시간을 쓰냐에 따라서 미래의 모습은 시시각각으로 바뀔 수 있단다. 절대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되겠지? 세상 때가 덜 묻은 파릇파릇한 젊음, 그게 너희들만의 자산이고 고유한 가치이자 무궁한 잠재력이란다. 17살은 용기와 도전을 두려워해선 안돼. 뭐든 그려볼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나이야. 그게 너희들의 본질이란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자유론>>은 생각의 자유에 대해서 고찰하게 하는 책이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이상,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단다. 우리의 육체나 정신, 영혼의 건강을 보호하는 주체는 바로 각 개인 자신이란다. 우리는 자신이 뜻하는 방향으로 독자만의 방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어. 하지만 비록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단다. 부딪쳐 봐야 얻는 거야.
지금껏 너희들의 인생을 지배해 왔던 삶의 방향성은 너희들의 주체적인 선택이었니, 강압적인 순종이었니? 다른 사람들이 길을 안내해 줄 순 있어도 절대 너희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단다. 이 세상의 1인칭이자 주인공은 바로 너희들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너희가 살아가야 그리고 살아내야 하는 인생이고 너희가 그려야 할 세상이야. 아무도 너희들의 꿈을 대신 꾸어주진 않아.
너희에겐 모두 생각할 수 있는 자유와 행동할 수 있는 의지가 있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부정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이상 너희는 자유라는 붓을 쥐고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멋들어지게 인생 그림을 그려나가야만 하는 거야. 남의 손이 대신 그려주는 인생은 진정한 너희의 작품이 아니란다. 차근차근 너희만의 인생 밑그림을 그려나가렴. 그리고 조금씩 너희만의 색감을 더하렴. 그러면 '완성된 나'라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나올 거야. 대필 작가가 대신 그려주는 작품은 언젠간 들통나게 마련이지.
쓰다 보니 또 잔소리 같이 들렸을까 봐 걱정되는구나. 이제 이 글이 마지막 잔소리일 성싶어. 지식보다는 지혜를 심어주고 싶었던 선생님의 지극히 사소한 교육 목표가 이루어졌을지 모르겠구나. 부디 너희들의 영혼이 건강하길. 지혜를 사랑하길. 꿈과 대면하길.
너희가 나날이 성장하듯 선생님도 말만 앞선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나름 분투 중이란다. 실천적 꿈쟁이가 되어 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지. 우리 게으른 꿈만 꾸어대지 말고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진짜 꿈을 함께 깨우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