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 Nov 27. 2023

어떤 날엔 꽃을 닮은 그리움이 피어나

어떤 날엔 꽃을 닮은 그리움이 피어난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유약하고 덧없이 꺼져버리는 추억. 그저 흘러보내게 되는 과거들. 그 모든 날의 나는 언제나 현재보단 어렸고 햇볕처럼 반짝이다가 가끔은 화석처럼 고요히 침전된 상태로 존재했다. 그 모든 삶에서 나는 의문은 생에 대한 고민이었다. 공황을 앓았기에 더더욱 죽음에 대한 공포감과 삶에 대한 그리 크지 않던 애착이 나를 힘겹게 만들던 때가 있었다. 여지껏 살아온 나날 중 가장 암흑기이던 몇 년의 기억.


몇 년간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한때는 몸에 타투를 새기고 싶었다. 너무 크지 않은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크기의 의미를 하나 새겨넣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탄생화와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엮은 이미지였으면 했다. 한 번 새기고 나면 지우기 쉽지 않고 주변의 보수적인 반대도 조금 있었다. 충동적으로 섣부르게 할 작업은 아닌 듯 하여 결국 하진 않았으나 한때는 몸에 뭘 그리도 새기고 싶었는지.


유행 아닌 유행처럼 주변 지인들이 하나 둘 몸에 타투를 새기고 나타났었다. 미니타투, 제법 도안이 큰 타투, 흉터 커버업을 위한 타투. 그때 한창 타투에 관심이 생겨 이것 저것 찾아보다가 알게된 것이 탄생화 타투였다. 도안의 종류는 다양했으나 꽃을 좋아하기도 했고 각자에게 고유하게 주어진 주민등록번호 그 앞머리에 나와있는 생년월일은 삼백육십오일가운데 가장 특별한 하루였기에 그 의미를 피부에 새길 수 있다는게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졌었다. 도안을 찾아보다 색연필그림처럼 작업하는 타투이스까지 정해서 언젠가 그분에게 타투를 받아야겠다,까지 정했었는데 몇 년 머뭇거리는 사이 해외진출을 하셔서 이젠 가망없는 꿈이 되었다.


꽃이 왜 좋으냐 묻는다면 화려한데 유약하고 아름다우나 금세 져버리는게,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다양히 존재하니 원할때는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어떤 계절에는 목련과 은방울꽃이, 또 어떤 계절에는 수국과 해바라기가, 그 다음 계절에는 코스모스와 능소화가 끝내는 동백꽃이 만발하는 계절로 변모했다.


연애할 때 부터 꽃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꽃은 비싸고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화분이 아닌이상 꽃줄기를 잘라 엮은 꽃다발의 화사함과 화려함은 오래 봐봤자 일이주였으니까. 그래서인지 남편에게 다른 선물은 받아봤어도 꽃다발은 연애때부터 결혼 한 이후 여태까지 손에 꼽힐 정도였다.


우리의 기념일에 한 번, 결혼준비를 하고 나선 프로포즈날 한 번, 그리고 아기를 낳고 고생했다며 또 한 번.


연애할 때 받았던 꽃다발은 낭만적이었고 프로포즈날 받았던 꽃다발은 감동적이었지만 결혼준비를 하면서 프로포즈에서 다른건 몰라도 꽃이 빠지면 가만있지 않겠다,으름장을 놓았던게 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몰론 감동해서 펑펑 울어버리긴 했지만. 그 마음을 가지고 여태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겠지.


의외였던건 출산 후 받은 꽃다발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꽃다발을 들고 온 것이다. 임신했을 때도 축하 꽃다발 한 번 안해주던 이가.


아기를 출산하고 산후조리에 집중하고 있던 시기라 화장기도 없고 몸의 붓기도 빠지지 않은데다 제왕수술의 통증도 만만치않아 심신이 지쳐있던 때였다.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제일 큰 육체적 고통으로 이보다 더 한 고통은 앞으로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생각조차 않던 때에 받은 꽃다발은 내게도 생기를 불어다주었다.


심지어 기특하게도 “영원한 사랑” 이란 꽃말로 골랐다고 했는데 가족 분만실 입성부터 제왕수술 회복일까지 입원실에서 열심히 간병해주며 볼 꼴 못볼 꼴 다 보여준 남편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에 행복했다.


다른것과 달리 꽃은 금방 시들어서 돈낭비라며 아깝다더니 출산의 고통을 겪은 아내를 위해 꽃 선물울 한 그도 그리고 결혼 후엔 더 이상 어리광처럼 꽃 사달라고 하지 않던 나도 우리는 가족이 되고 나서야 서로를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은 꽃 사랑은 그 꽃의 꿀이라던데 그래서인지 우리생에 꽃처럼 피어난 아기가 나의 사랑이자 나의 삶이 되었다. 꽃에 물을 올려주듯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예쁘게 자라도록 해야지. 나와 남편의 사랑스러운 구석만 닮아서 태어난 나의 아기. 너의 첫번째 생일엔 예쁜 탄생화를 선물해줄게. 그러니 너는 그저 자라나기만 하렴. 주는 사랑만 먹고도 배부르도록. 그리하여 언젠가 자라난 네가 돌아볼 그리움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꽃처럼 아름답게 남기를.





이전 02화 엄마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