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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Apr 25. 2024

1년 전 나의 글

의사는 킬러.

23년에 글쓰기 공부를 시작해서 1년이 지났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지만, 잘되고 있는 건지, 표현하고 싶은 걸 잘 표현하고 있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기념으로 23년 4월 24일에 썼던 작문을 하나 가져와 봤습니다.



230424_작문_킬러

 삐빅 삐빅. 알람소리에 잠을 깬다. 12:00시 정각. 출근 1시간 전이다. 난 암막 커튼을 걷는다. 난 사람의 죽음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킬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 내가 죽음을 명하면 그 사람은 무조건 죽어있다. 죽음을 명하는 이 직업도 나름 고급인력이다. 예전에는 동료들이 많았지만 최근 수가 많이 줄어 2~3일마다 당직을 선다. 킬러도 피곤하다니까.


 늦지 않기 위해 어서 출근길에 나선다. 하품이 절로 나온다. 매일 사람을 죽음의 경계에서 다루는 일은 체력 소모가 심하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매일 벌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오늘 내 첫 죽음은 출근 전에 일어날 모양이다. 눈 앞에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 보인다. 나와 눈을 마주친 그는 죽음을 예감한 사람처럼 떨고 있다. 난 그에게 다가가 어찌 된 일이냐 물었다. 그는 길 가던 중 하늘이 번쩍 하더니 내가 눈 앞에 있었다 답한다. 내가 무슨 ‘도깨비’의 저승사잔가. 번쩍 하고 나타나게. 뭐, 저승사자 비슷하게 사람을 죽이긴하지. 내 직업 짬으로보니 그의 가슴에 박힌 유리조각은 폐를 찔러 피가 고이고 있다. 또 그의 사지 절반은 이미 요단강을 건넜다. 죽음을 선고해도 될 만한 상황이지만, 이 일도 절차가 있으니, 우선 직장에 전화를 건다. 이내 그의 죽음을 수거하기휘한 차가 도착하고, 난 그 차를 타고 출근한다.


 예상치 못한 죽음에 내 실적이 올랐지만, 기쁘지 않다. 아이러니하게 난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 직업 교육 땐 이렇지 않았는데, 사기다 사기. 당직선 킬러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일을 시작한다. 몇일 전부터 한 남자가 자꾸 나에게 죽여달라고 조른다.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높은 확률로 죽는데도 제발 해달라 애원이다. 오늘은 그 남자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날이다. 그를 내 작업실로 불렀다. 그는 정자세로 누어있다. 난 내 작업도구를 들어 그의 가슴을 Y자로 가른다. 이후 거의 갈비뼈를 장비를 사용해 절단한 뒤 드러낸다. 그의 폐가 내 심장처럼 벌렁거린다. 마음을 부여잡고 난 그의 폐에 칼을 가져가 조각을 낸다. 그 순간 그의 몸이 부르르 떨더니 이내 떨림을. 멈춘다. 죽었다. 결국 그를 내 칼로 죽였다. 난 그에게 죽음을 명했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하…


 뒤처리를 하고 작업실을 나오니 고인의 관계자가 나를 일제히 쳐다본다. 내 폐가 시선에 드러내진 것 같다. 난 그들에게 내 살인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내 설명을 듣고 난 이후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다. 아무말도 못하고 울거나, 나를 살인자로 규정하며 울분을 토하는 부류. 나도 죽이기 싫었는데, 저들은 항상 날 살인자, 킬러라 부른다. 저들에게 난 킬러다. 따지고 보면 나도 피해잔데. 나보고 살인자라하니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 최대한 당당한 표정을 하고 난 자리를 빠져나간다.

 그 길로 내 사무실로 돌아온다. 어느새 하루가 바뀌어 00:00시 알람이 울린다. 삐빅 삐빅. 아, 아까 그 환자도 저 소리를 냈었는데, 심장이 뛰었었는데. 이젠 아니다. 지금이 제일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환자의 죽음이 슬프지만 가족에게 티낼 수 없어 혼자 삭이는 것. 12시간 동안 2명을 죽였다. 심란하고 피곤하지만 계속해야지. 이 독이든 성배같은 사명감 넘치는 직업을, 죽음을 명하는 직업을. 난 의과 기피 대상 1순위 흉부외과 의사니까.



요즘 의료계가 시끌시끌한데 요즘 이 글을 쓴다면 나쁘지 않은 소재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는 '아, 나 진짜 이건 잘 썼다.'라고 생각했던 글이었습니다. 1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니 그때랑 느끼는 점도 다르고, 글 쓰는 방식도 조금은 바뀐 것 같습니다.

맞춤법부터 어휘선택까지 부족한 점들이 보이네요. 퇴고를 했음에도 저랬다는 건 처참한 실력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하하하하

제가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은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내가 아닌 가상의 인물을 만드는 건 제 작문 스타일이었습니다. 직업이 의사인 것을 '킬러'라는 이미지로 숨기고, 마지막에 드러내기 위해 반전을 설정한 채 개요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가상 인물의의 스토리를 1600자 정도에 담으려고 하다 보니 꽉꽉 눌러 담은 느낌입니다. 열심히 노력한 제 모습이 멋있기도 하고…? 그렇지만 자연스럽지 못하고 핀트가 툭툭 튀는 스토리 전개가 아쉽다고 느껴지네요. 결말에 반전을 주기 위해서 억지 설정을 중간중간 넣어 놓고도 모른 척한 제 자신이 보이네요.

구체적인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하며 장면을 연상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모습은 1년 전부터 제 나름의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상하는 만큼 글로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잔인하게, 잔혹한 킬러의 모습을 상상하며 글을 썼는데, 조금 아쉽네요.

글의 주제 선정 역시 조금 아쉽습니다. 흉부외과 의사의 힘듦인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는 의사의 고충인지 두 가지가 애매하게 혼합되어 있습니다. 후자를 더 살리고 싶었는데, 굳이 흉부외과를 껴 넣어 짜치는 느낌을 주게 했군요. 후자의 주제는 요즘 시대에 읽는다면 파업하는하는 의사분들을 역설적으로 비판하는 글이 될 수도 있을 같구요. 여러모로 제가 더 잘 다듬어서 소재를 살린다며 재밌는 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최근 브런치 북을 연재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정말 글이 쓰기 싫은 날이 있어요. 그래도 '11명의 구독자분 중 누군가는 내 글을 읽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라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감이 매일매일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아 오늘 하루 이걸로 때워야지' 하면서 의미가 크게 담기지 않은 휘발성이 짙은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작년의 글을 꺼내 보면서 제 실력과는 별개로 작년에 제 열정과 노력을 느꼈습니다. 작년에 저에게 자극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앞으론 더 열심히, 꾸준히 글을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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