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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제임스 Jan 17. 2024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날

내가 달리는 이유와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들 1

2021년 11월 21일 일요일 아침, 비행기에서 내려 차가운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니 한국에 도착했다는 것이 실감 났다.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호주에서 생활을 정리하고, 2년 만에 한국 땅을 밟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처음 호주에 가던 날, 영주권을 받아 호주에 정착하여 살겠다는 나의 꿈은 2020년 코로나 발발로 인하여 산산조각 났다. 호주에서 영주권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이제 막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코로나19가 발발하였고, 호주 정부는 모든 행정을 코로나19 관련된 일에 집중하였다. 그렇기에 이민 관련된 행정은 중지될 수밖에 없었고, 나의 영주권도 그렇게 멀어져만 갔다. 호주는 거의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강력한 봉쇄정책을 펼쳤고, 나는 그 기간 가족,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채 정적만이 흐르는 집에서 홀로 고립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장기간 이어진 강력한 봉쇄정책에 신물이 났고, 군 복무 문제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긴 기간의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2년 만에 한국에 오니 낯선 것들 투성이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고, 처음에는 거의 모든 식당과 카페에 비치되어 있는 키오스크를 쓰는 것조차 익숙지 않았다. 머지않아 모든 것이 익숙해짐과 동시에, 나는 스물일곱 살이라는 많이 늦은 나이에 공군에 입대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한 달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공군 입대를 위한 자격증을 취득했고, 면접 등의 전형을 거쳐 2022년 2월에 공군에 입대하였다.


진주에 있는 훈련소에 입소하여 약 2달 정도 되는 기간에 훈련받고 자대에 배치받았다. 나는 서울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부대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의 처음 6 개월 동안의 시간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나의 업무는 병사들의 휴가 및 외출을 관리하고 부대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행사를 지원하는 업무였다. 원래 두 명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한 명의 공백이 생겨 처음 6개월 동안은 두 명에서 할 업무를 혼자서 맡아 하게 되었다. 기나긴 코로나가 잠잠해짐과 동시에 병사들의 휴가 및 외출 제한 해제 등으로 많은 행정 변화가 있던 시기라, 업무량도 평소보다 많았었다. 부대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내가 속해있던 부대는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하여 오후 4시 30분에 퇴근을 하고, 오후 4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체력단련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혼자 업무를 담당해야 했던 6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체력단련 시간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고, 퇴근하고 나면 지친 몸을 이끌고 생활관으로 가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시간이 흘러 9월에 새로운 행정병이 부대로 전입해 오게 되어 한 명의 공백이 메꿔지게 되었고, 업무도 많이 안정화된 상태여서 시간적 여유가 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나는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있었기에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하지는 않았고, 남는 시간을 오롯이 독서실에서 보내며 공부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중 부대에서 10월에 첫 ‘체력 검정’을 시행하였다. ‘체력 검정’이란 공군에서 장병들의 체력 상태를 평가하기 위한 제도로,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 펴기, 3km 달리기 세 종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력 검정’에서의 기준 미달의 성적을 낼 시, 간부의 경우 향후 진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병사의 경우 휴가가 1~2일 제한된다. 나는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 펴기는 최저기준에 맞추어 통과하였고, 3km 달리기도 당연히 통과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시 나의 몸 상태는 코로나 봉쇄 기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폭식과 운동 부족으로, 10kg 정도 체중이 증가한 상태였고, 운동 능력도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다. 어리석게도 이러한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 채 시작 소리와 함께 호기롭게 달리기 시작하였고, 결과는 처참했다. 3km를 시간 내에 완주하는 것은 고사하고 완주조차 하지 못했다. 2km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호흡하기 너무 힘들었고, 더 뛰면 죽을 거 같다는 생각에 트랙 밖으로 뛰쳐나와 주저앉았다. 그 당시 나는 쉽게 포기해 버린 내 모습에 너무 실망했다. “고작 3km도 완주를 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다니....“. 나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그래. 다음 체력 검정에서는 한번 1등으로 완주를 하자!“라고 다짐을 했다.


다짐을 한 다음 날 체력단련 시간,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던 시월의 어느 가을날에 나는 처음으로 타의가 아닌 자의로 달리기를 시작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나의 인생을 바꾸어 줄 힘찬 도약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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