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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제임스 Jan 22. 2024

매일 달리기

내가 달리는 이유와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들 2

타의가 아닌 자의로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의 순간은 나의 머릿속에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군 복무를 했던 부대는 시내에 위치한 조그마한 부대였고, 부대 한 바퀴가 5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 부대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고작 세 바퀴만 뛰었을 뿐인데 숨이 너무 찼고, 목에서는 피 맛이 진하게 났다. 달리기 시작하기 전 세웠던 목표인 여섯 바퀴 달리기에 성공하기는커녕, 세 바퀴를 조금 넘은 시점에서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첫 달리기를 끝냈다. 첫 달리기를 마치고는 단기간에 목표를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매일 뛰면서 뛸 때마다 거리를 조금씩 늘려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나는 그날 이후로 매일 부대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오후 4시 30분, 퇴근을 하는 즉시 생활관으로 돌아가 운동복으로 환복을 한 후 훈련소에서 보급받은 검은 운동화를 신고 부대를 뛰어다녔다. 처음 뛸 때는 나에게 어떤 호흡이 맞는지 알지도 못하였고, 들이마셔지는 대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어지는 대로 숨을 내뱉었다. 체력단련 시간에는 텅 빈 부대 도로에 불안정한 거친 숨소리가 매일 울려 퍼졌다.


매일 달리기를 한 결과 처음 목표했던 쉬지 않고 부대 여섯 바퀴 달리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달성할 수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쉬지 않고 20분가량을 달릴 수 있게 되었고, 3km는 거뜬히 달리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내가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달리기를 그만두고 다시 독서실에서 은둔하는 생활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 하면서,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했다. 달리기를 시작하는 순간 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시공간속으로 들어가 얽혀있는 생각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군 생활 동안 반복되는 일상에 단순해져 있던 사고체계가, 달리기를 하는 동안에는 활성화되어 오랜 기간 동안 정리되지 않고 묵혀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하나둘씩 정리가 되는 경험을 했다. 이런 신비로운 경험을 한 후부터 나는 좀 더 오랫동안 많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하여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달리기를 계속 이어갔다.


어느덧 달리기 시작한 지 두 달가량이 지났고, 나는 마치 습관처럼 매일 5km 정도 되는 거리를 달렸다. 퇴근 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12월, 산이 근처에 있어 더욱 춥게만 느껴지던 겨울날에도 나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어떻게 그리고 왜 뛰냐고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나는 찬바람이 얼굴을 강타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차디찬 겨울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달릴 때는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 나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의 느낌도 좋았다. 뼈가 시릴 정도의 찬 공기가 나의 몸 안팎으로 맴돌 때면, 온몸의 신경이 하나하나 살아나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추운 겨울날, 영하 18도의 날씨에도, 폭설이 내릴 때도 나는 매일 달리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매일 달리기를 이어가던 중 종아리와 발목에 약간의 통증을 느꼈고, 나는 이 통증이 운동화로부터 발생한 문제라는 것을 파악했다. 훈련소에서 보급받은 운동화는 밑창이 딱딱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바닥을 내디딜 때의 충격을 운동화가 흡수하지 못하였고, 그 충격이 오롯이 나의 종아리와 발목으로 전달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음 휴가 때, 집에서 케케묵은 오래된 아디다스 러닝화를 꺼내보았다. 이 신발은 내가 싱가포르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퇴근하고 달리기를 하리라는 호기로운 다짐을 하고 구매했던 러닝화다. 하지만 많은 업무량으로 인한 피로로 열 번도 채 사용하지 않은 신발이었다. 군대에서 달리기를 시작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터라, 몇 년 만에 신발을 꺼내어 신어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렇게 나는 군대 운동화가 아닌, 사제 러닝화를 신고 달리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사제 러닝화를 신고 부대에서 첫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의 감촉은 너무나도 부드러웠고, 더 오래 잘 뛸 수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매일 달리기를 이어가던 중 2023년 1월에 갑작스럽게 몸이 안 좋아졌고, 독감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당시 독감 확진자는 1주일간 혼자 격리 조치하게 되어있어서 나는 부대 안 자그마한 방에 혼자 격리하게 되었다. 격리하면서 핸드폰과 함께 하루하루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중 3월에 열리는 동아 마라톤 광고를 우연히 보았다. 호기심에 어떤 대회인지 좀 더 찾아보았고, 10km 달리기 부문도 있기에 급작스럽게 호기심이 생겼다. 지금까지 매일 5km를 달렸는데 조금만 더 연습하면 10km쯤은 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머릿속을 스쳤고, 어느덧 나는 10km 참가 신청을 완료하고 결제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첫 마라톤대회 참가 신청이 이루어졌다.


독감 확진으로 인한 격리가 끝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 매일 달리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우리 부대 군의관의 취미가 달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동지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우리는 가끔 마주 앉아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며 2023년 10월에 같이 하프마라톤을 완주하자는 거창한 계획도 세웠다. 시간이 맞으면 체력단련 시간에 가끔 같이 뛰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발을 맞추어 같이 뛰니, 혼자 뛸 때보다 힘도 훨씬 적게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뿐더러 같은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같이 정진하는 느낌도 들어 좋았다.


추운 한겨울이 지나고 날이 조금 포근해진 2월 말부터, 나는 3월 19일에 있는 동아 마라톤 10km 달리기를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다. 3월 1일에는 부대 스무 바퀴를 돌며 부대에서 첫 10km 완주를 하였다. 처음 달리기를 할 때 부대 세 바퀴 달리기도 힘들어 헉헉대던 나 자신을 떠올리니, 그때와 비교하여 많이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감회가 새로웠다. 10km 완주를 한번 하고 나니, 마라톤 대회에서 한 시간 안에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왠지 달성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나는 첫 10km 달리기 한 시간 이내 완주하기라는 목표를 향하여 질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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