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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월 14일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매

by 푸른 잎사귀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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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982년 3월 14일 (일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동생

일어난 시각 : 오전 7시


오늘은 일요일이기 때문에 동생과 같이 교회에 갔다.

다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도 열심히 노래를 배웠다.


잠자는 시각 : 오후 9시 15분

오늘의 반성 : 없음

오늘의 할 일 : 없음



나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1학년때 옆집에 사는 정희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미신, 무당을 접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하셨고, 아버지는 감리교 신앙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성장하신 분이셨다.


아버지 어린 시절엔 칠 남매 모두 교회에 다니며  성가대도 하고 신앙생활을 하셨지만 장성한 후엔  세상풍파에 떠밀려 칠 남매 대부분 교회에 나가지 않으셨다.


어머니께서는 나와 동생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없었기에 우리 자매는 일요일에는 교회에 갔다 오곤 했다.


교회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고 쓴 것은 어린이 찬송가를 부른 것을 그렇게 쓴 거였을 것이다. 열 살, 여덟 살 자매가 손을 잡고 정희언니네 교회에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늦잠 자는 것도 포기하고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는 어린이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존재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 다니는 것을 반대하던 어머니는 지금 명예권사님이 되셨다.


어머니께서 신앙을 갖게 되신 건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의지의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동생이 다니던 교회에 자동으로 출석하게 되셨고, 교회집사님들과 목사님 사모님의 도움으로 그 힘든 시절을 지나올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어머니를 전도하려고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셨다. 어머니는 더운 여름 땀을 흘리며 오셨던 분들께 물 한잔 정도는 드렸지만 매몰차게 보내셨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냉정하게 말씀하시곤 했다.


어머니를 전도하기 위해 매주 찾아오셨던 분들이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셔서 아버지를 데려가셨다는 말을  하셨다. 사랑하는데 아픔과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면 믿고 싶지 않았을 텐데도 아이러니하게  자주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했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너무 힘든 시간을 지나왔고

가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셨을까 하는 원망 비슷한 서운함이 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긴 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단호하게 노~!!라고 대답할 것 같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이 불쑥 들이닥치는 경우가 있다.

을 믿는다고 하여도 사고는 피할 수 없다.


얼마 전, 무라세 다케시의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을 읽었는데  열차사고로 죽은 남편이 쓰던 흔들의자를 갖다 버리지 못하는 아내의 심정을 보며 나 또한 부엌문을 열고 아버지가 퇴근 후 들어오실 것만 같은 마음이 오래갔기에

옆에 있던 존재가 사라진 큰 슬픔 가슴에 묻는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를 알기에 가슴이 저려왔다.


언젠가 홀연히 다시 돌아와 여기 앉을 것만 같아서(301쪽)


살면 살수록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럴 때마다 그저 매 순간 겸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신기한 것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찬송가를 흥얼거리셨다.


어렸을 때 불렀을 찬송가를 가사 하나 잊지 않으시고 흥얼거리셨던 아버지. 아버지의 그 선하시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생각난다.

엄하고 무서웠던 아버지께서 그때는 딸들과 잘 놀아주시고 간식도 만들어 주시곤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사람은 자기가 죽는 것을

조금은 아는 걸까?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 영혼은 뭔가를 알고 움직이는 거 아닐까~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가버린 아버지.

그러나

본향에서 반갑게 인사할 것을 알기에

흐르는 눈물을 웃음으로 닦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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