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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by 성희

​나는 지금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문간방 옷방 한 구석에 살고 있다. 남편과 귀촌하여 시골생활을 즐기며 텃밭도 가꾸고 여행을 다니며 나는 시골집에서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보냈다.

뜻하지 않은 사정으로 우리는 다시 집으로 복귀했다. 공시준비생 아들이 공부하기도 부산집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집에 들어오면서 큰방을 차지하고 살던 딸의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아들이 쓰던 방은 다시 아들에게 내어 주었다. 나는 딸이 옷방으로 쓰고 있는 방에 침대 하나 들여 살고 있다. 아들의 시험이 끝나는 내년 쯤 다시 문경이나 괴산, 제천 등 중부 지방에서 2년정도 거주할 생각이기에 별 불만은 없다.


​어제, 딸은 내게 폭발했다. 그동안 쌓아왔던 **'편애'**에 대한 모든 불만을 쏟아냈다.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 되었다. 딸은 새벽에 일어나 배가 고프다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부엌으로 나와서 불을 환하게 켜어 놓고 그대로 자기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 고함 소리가 났다. 어제 몸이 안좋다고 일찍 잠이 들었던 아들의 소리였다. 부억과 가까운 방이라 불빛이 너무 환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얼굴이 부어있었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왜 말로하지 그렇게 문을 쾅 닫느냐하니. 불이 켜져서 잠을 못자서 짜증이 났다고 한다.

나는 성인이 딸에게 사과를 시켰다. 그 일이 후폭풍을 일으켰다.


​"엄마는 이게 언어 폭력이라했고 남동생에게 왜 아무런 영향력도 없냐고. 내가 원하는 대로 관리형 독서실이라도 보내야 합격에 도움이 될 것이 아니냐고."

​딸이 저렇게 격앙되는 마음, 나는 모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각에 딸에게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의 대학, 미국의 교환학생, 독일의 어학연수와 유럽 여행까지. 스스로 학비를 벌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딸이 무언가를 해낼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딸은 힘든 과정을 거쳐 글로벌재원이 되기를 기대했다. 영어와 독일어를 잘하니 어디에든 취직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회사생활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30이 넘어 집으로 내려와 3년간 시험공부를 하고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딸은 그 막대한 학비 지원과 우리의 희생을 인정하기는커녕, 이제 와서 "엄마가 남동생만 편애한다"고 한다. 자기가 합격한 방식대로 동생에게도 **'강요'**해야 하는데, 우리가 30세 남동생의 자율(하루 10시간 도서관 공부)을 존중해 주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낀다.

​어쩌면 딸은 지금 **'역차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과거의 열정을 왜 지금 불안한 동생에게는 보여주지 않느냐는 분노가 있다.

​사실, 나는 공부 잘하던 딸보다 오히려 공부 못하던 아들에게 더 신경이 쓰인다. 5년째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서른 살 남동생의 불안감, 시골에서 돌아온 후 더욱 예민해져 새벽 부엌 불빛에 고함을 지르는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짓누른다.


난생 처음 정신과병원에 갔다. 성인 자녀는 중재를 하면 안되고 둘이 해결하도록 두어야한다고 한다. 어설픈 중재가 도리어 화를 키웠나보다. 언니에게 전화를 하니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하듯이 했다며 놀린다.


화를 표출하는 것은 나쁘지는 않다. 처음에는 기분이 안좋지만 왜 그런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딸에게 해주었던 것만 생각했고 너는 지금 취직을 했으니 무조건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나보다.


서운한 마음도 있다.

그러나 사랑한다. 딸아,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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