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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Feb 13. 2024

민원대의 하루

  "등본 2통 여기 있습니다. 수수료는 800원입니다"


  나는 서류들과 받아놓은 신분증을 앞의 사람에게 건네며 말한다. 앞에 앉아있는 나이 지긋한 민원인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서 800원어치 동전을 꺼내서 올려놓는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동전들을 챙기고 내가 인사하자, 민원인은 신분증을 지갑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갈 길을 떠난다. 한숨을 돌리고, 앉아서 여유롭게 송부된 인감 대장을 수령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원실에는 벌써 여러 명의 사람이 들어와 앉아있다. 나는 다음 번호를 호출하는 벨을 누른다. 그리고 다음 민원인의 까다로운 서류 발급건에 대해 듣는다. '전제적등본'이라는 서류를 떼기 위해서는 민원인의 아버지 이름과 등록기준지까지 알아야 된다. 등록기준지를 물어보는데 모르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 민원인은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버지의 등록기준지를 물어본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메모지를 건네는 등 열심히 다음 과정을 준비한다. 70년대생 중년의 민원인분은 전화를 끊고 등록기준지를 적은 메모지를 나에게 보여준다. 넵, 알겠다는 짧은 대답과 함께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여서 서류를 떼기 위한 짧은 순서들을 진행시켜 나간다.


  민원대는 오늘도 여전히 바쁘다. 하루에도 수많은 민원서류들을 발급하고, 전입신고나 출생신고, 사망신고 같은 민원업무도 처리한다. 뿐만 아니라, 생활기록부나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같은 학교 관련 서류들도 간혹 발급한다. 요즘은 모두 인터넷이나 무인민원발급기로 발급 가능한 서류들이 대부분이어서, 행정복지센터의 민원대를 모든 주민들이 이용하지는 않지만, 이용하는 주민들은 그 편리함 때문에 자주 이용하시는 것 같다. 주로 중년이나 노인분들이 자주 오셔서, 아직도 민원대를 이용하는 인구는 많다. 많은 민원인들을 친절하게 응대하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봉사 정신이 거의 필수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분들을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하고, 하루에도 여러 명에게 설명하는 내용을 다시 전달해야 하며, 간혹 가다 글씨를 못쓰시는 분들을 위해서 신청서를 대신 작성해야 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만만치 않은 일임을 실감한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세계 각지의 외국인, 재외동포를 만나는 일도 있어서 능숙한 응대 기술이 요구된다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만만치 않은 민원대 업무를 맡는 공무원들은 대부분 신규자라는 것이다. 임용되고 첫 근무지로 발령이 되자마자 얼떨떨한 상태로 민원대에 앉아서 업무를 본다. 인수인계는 하루 이틀 정도로 진행이 될 때가 많고, 배우지 못한 나머지 업무는 눈치껏 하거나, 옆 자리 동료에게 물어봐가면서 봐야 한다.  역시 신규자로 발령받자마자 민원대에 배치되었는데, 첫 주차는 아는 내용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민원인 선생님들에게 이것도 모르냐고 꾸중을 듣느라 진땀을 뺐던 게 기억에 남는다. 매몰차게 한 소리 하시거나, 짜증을 내시는 분들, 아니면 자신의 가족과 대동해서 항의하러 오는 민원인 등 다양하다. 그런 전쟁터 같은 첫 주차가 끝나고 한 달 차가 되기까지는 업무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머릿속으로 쏙쏙 들어오는 내용이 많아, 힘들지만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서도 여전히 민원대의 업무는 어려웠다. 공단 주변의 주민센터라는 특성상 점심시간에 몰려드는 민원인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워낙에 민원대 업무가 방대하기 때문에 그렇다. 등초본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왜 법적 이해관계인이 엮이면 이렇게 생소한 건지, 전입신고는 많이 해봤는데도 세대주 관계나 위임 관련해서는 헷갈리는 것도 참 많았다. 뿐만 아니라, 사망신고나 출생신고는 아직 받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총괄 주사님이 가르쳐주지 않았다. 과연 이 업무에 언제쯤 완전히 숙달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피어나기까지 했다. 다른 동료들이 능숙하게 일 처리하는 것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도 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첫 월급이 들어오고, 보상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힘을 내서 참 열심히도 했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도 민원대 업무에 느낀 막막함과 어려움은 여전했다. 자기가 담당하는 고유 업무를 가지고 있는 사무실 안쪽 직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민원대에 앉은 우리들은 마치 총알받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앞쪽에서 민원인을 응대해야 하기 때문에, 민원대 직원들은 다른 담당 직원들에게 민원인을 연결해 주는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심지어 주민센터로 찾아온 사람들이 물어본 질문에 답하거나, 길 안내, 화장실 위치 안내, 팩스기기 안내 등도 한다. 그야말로 하루종일 사람들을 대하고 말을 해야 하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은 코로나 생활 지원금에 관하여 민원인들이 정말 많이 찾아왔다. 하루에 20명 가까이 찾아왔던 것 같고, 그때마다 담당자인 안쪽 직원에게 연결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 직원은 다른 담당 업무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 지원금이라는 다른 직원들도 대직이 가능한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자신에게만 몰아준다는 이유로 불만을 표시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러지 말라는 말은 안 했지만, 표정이나 제스처에서 크게 불만스럽다는 표현을 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 탓에 민원인과 직원 중간에 끼여있는 나는 매우 당혹스럽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대직자를 우선으로 연결하라는 업무 지시를 받고서야 그 사건이 해결되기는 했다.


  이제야 민원대에서 벗어나 그곳에서 근무했던 시절을 돌아보고 그때가 참 힘들었지만 배운 것은 많았던 시절임을 실감한다. 바쁘고 까다로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런 일들을 처리하며 융통성의 지경을 넓혀갔다. 내가 살면서 절대 할 수 없다고 했던 일들도 곧잘 해나가면서 내 한계를 극복했다. 민원대의 업무를 맡지 않았으면 지금쯤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신규자라서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발령받자마자 11개월 정도 민원대에 근무하게 되었던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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