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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 in the usa Feb 04. 2024

미국 사투리, 한국 사투리



   고아한 기와를 올린 시골 마을의 옛 서원 옆에는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오랜 집이 있다. 언제 지어진지도 모를 돌담을 마주 둔 조부모님의 댁은 지어진 지 100년쯤 다 되었는데 한켠에는 아궁이도 있고, 마당 뒤편에 대나무숲이 쏴아 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더운 여름날 바람 부는 그 소리를 들으면 선풍기 없이도 땀이 식곤 했다. 대문 건너엔 외양간이 있었고 두 분의 소담한 밭이 있었다. 거기서 무며 배추며 온갖 싱싱한 야채를 길러 내셨다.

“단디 해라.”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와 동생이 온통 푸릇푸릇한 것들로 덮인 밭이 신기해서 제멋대로 뛰어다녀도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만 말씀하셨다. 그 말엔 다양한 의미가 있겠으나, 아마 제일 하고 싶은 말씀은 조심하라는 것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경상도 어르신답게 말수가 적으셨다. 해야 할 말만 하시고 말씀을 아끼셨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익숙한 할아버지의 단단한 억양을 들으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졌다. 그건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표현되지 못하는 할아버지만의 언어였다.


 나를 비롯해 온 가족들은 모두 경상도 사람들이다. 표준말과는 어두(語頭)의 높낮이 처리부터 달라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었을 땐 더 무뚝뚝하거나 억세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서울말' 비슷하게 흉내는 낼 줄 안다고 믿었는데, ‘안녕하세요’의 ‘안’만 듣고도 내가 경상도에서 왔다는 걸 알아내는 친구도 있었으니 사투리는 나의, 우리 식구의 숙명이다.

온 식구들의 성격들도 꼭 경상도 사투리와 닮아 있다. 해야 되는 말만 간단하게 툭 던지는 말투만 들으면 세상만사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 것 같은데, 실은 누구보다 타인의 기색을 살핀다. 좀 더 말하자면 말을 툭 던진다기보다 가볍게 제안하듯 말한다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언가 제안을 하거나 물어볼 때 상대방이 너무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생각나서 한 번 물어봤는데 내키지 않으면 언제든 아니라고 해도 좋아,라는 뉘앙스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이 헷갈리지 않도록 내가 하고 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경상도 사투리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남편의 고향인 웨스트 버지니아는 느긋한 봄바람 같은 남부 사투리를 쓴다. 그들의 독특한 말투를 듣고 있자면 평화로운 어느 농장의 풍경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억양이라, 많은 이들이 한 번 들으면 단번에 알아차린다. 내가 느끼기엔 경상도 사투리만큼이나 유명세가 있는 사투리라고나 할까.

따라 하기도 힘든 특유의 리듬감을 자랑하는데, 단어의 어미가 -ing로 끝날 때, -in 까지만 발음하는 식이라 예를 들면, “It’s raining out there(밖에 비가 오고 있어).”를 ”It’s rainin' out there.”라고 끝을 흐리면서 말하기 때문이다.

처음 들었을 땐 알아듣기 힘들어 당황스럽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독특한 느긋함이 느껴진다. 구성지게 말을 이어지도록 재간을 많이 부리기도 해서 같은 남부 지방의 사투리여도 짧게 축약해서 할 말만 하는 한국의 경상도 사투리와는 전혀 다르고, 나에게는 전라도 사투리와 그 결이 비슷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실제로 미국인들이 들었을 때 가장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투리 중 하나라고 꼽히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나고 자란 남편은 정확한 북미 표준 발음을 구사한다. 우리가 영어 교과서를 배울 때 나오는 바로 그 말투이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걸 계속 듣고 있으면 꼭 학창 시절에 영어 듣기 평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나처럼 ’ 서울말‘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난 자연스러운 억양이 그렇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그 건 네이티브인 다른 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잘도 나누는 남편이 자신을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이라고 소개하면 그들 역시 놀라워하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나는 우리 부모님과 함께 살며 한동안 처가살이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부모님은 걱정과는 달리 남편이 마치 ‘영어 선생님’처럼 또박또박하게 발음한다는 것에 동의했고, 아빠는 번역기까지 동원하며 그와 대화 나누는 것을 즐겼다. 엄마도 그가 긴 문장이 아닌 짧은 단어로 이야기하면 잘 알아듣겠더라며 좋아했고, 동생은 손짓발짓으로 어떻게든 소통을 해냈다. 게다가 한국식으로 밥상을 차려도 군말 없이 밥 한 공기를 싹 비웠으니 그는 곧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시작했다.

사위가 마음에 들었던 엄마와 아빠는 처음엔 예의 차리느라 서울말 비슷한 억양을 흉내 내다가, 점점 익숙한 당신들의 사투리 말투로 돌아오기 시작하여 곧 온 가족의 사투리가 만만치 않아 졌다. 우리 넷이서는 즐겁게 이야기하는데 곁에 있던 남편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짓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잘 모르는데 너무 한국말로 떠들어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내 휴대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남편이 나에게 보낸 것이었다. 아니, 사람을 바로 옆에 두고 말로 하면 될 것이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메시지를 열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Please stop arguing with your parents. (부모님이랑 제발 그만 싸워.)”

아차, 우리 식구들은 모두 사투리가 심하잖아. 그 사건 이후로 우리 가족은 남편에게 사투리라는 개념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우린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하는 거야. 아빠는 억울해했다.


 남편만 사투리에 익숙해지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그와 똑같은 시련은 나에게도 찾아왔다. 미국으로 이사하고 시댁 식구들이 크리스마스파티에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

시댁 식구들은 남편과는 달리 걸쭉한 남부 사투리를 쓴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평생 사투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이다.

남편의 식구들은 대부분 웨스트 버지니아의 토박이들이었고 그들에게 나는 새로운 가족이기도 하지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외지 사람이기도 했다. 어른들은 파티 음식이 내 입에 맞는지 궁금해했고, 꼬마 아이들은 내 주위를 맴돌며 새로 선물 받은 장난감을 들고 와서 자랑하듯 식탁에 올려놓고 있다가 어른들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나에게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다른지, 한국 음식은 얼마나 매운지, 미국에서 운전하는 것은 어떤지 등등에 대해 묻기도 했다. 질문이 쏟아져서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나의 대답을 경청하면서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남편의 식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 자리가 그럭저럭 처음만큼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왜 사투리를 쓰지 않는지에 대한 사연도 알게 되었다.

시댁 식구들 중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바쁘시던 시어머니 대신 아주 어릴 적부터 남편을 어린이집에 등원시켜 많은 시간을 돌봐 주셨다고 했다. 남편은 그분과 함께 알파벳, 숫자 등을 다 익혔으니 선생님이자 제2의 엄마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분은 펜실베니아 출신으로 가족 중 유일하게 사투리를 쓰지 않으셨다. 남편은 자연스레 그분의 말투와 닮아갔고 결국 가족들 중 오직 두 사람만이 남부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억양은 말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엔 한 사람만의 인생이 담겨 있다.


  난 그들이 남부 사투리를 쓴다는 사실이 좋았다. 당신들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솔직한 말투인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어쩐지 정스럽게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 마음이 들었다.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비슷한 법이다. 유감없는 남부 사투리로 껄껄 거리며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들의 시간이 보인다. 장작을 넣어 불을 떼는 벽난로의 까만 그을음과 넓은 나이테가 층층이 쌓인 길고 오래된 원목 테이블, 똑딱거리며 바늘침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벽시계. 저 물건들은 얼마나 긴 세월, 먼지 하나 없이 저 자리들을 지켜 왔을지를 생각해 본다.

시댁 식구들의 남부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처럼, 남편도 여전히 우리 가족들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남편은 우리 식구들의 경상도 사투리를 닮은 마음, 가지고 있는 속내를 다 보여주는 가족들의 정 덕분에 아직도 처가살이 시절을 행복하게 기억한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한 타인이었던 세월을 인정하고, 함께 하는 세월 동안에는 수많은 배움을 헤쳐나갈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오늘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하루 있었던 일을 물어보면 내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그는 꼭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경상도 사투리로 맞장구친다.

"진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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