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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단 Nov 10. 2024

캐나다에서 아이 키우기 힘든 이유

받지 못한 것을 주어야 할 때

지금까지 제가 보통 캐나다에서 아이 키우기 좋은 이유들을 글로 많이 남겼었는데요,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저희 아이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캐나다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다고 생각되는 점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을 대하는 문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이곳의 사람들이 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보면 제가 자랄 때와는 참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점은 꼭 캐나다에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오은영 박사님의 등장으로 많이 변한 부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우선 모든 상황에서 아이의 의견을 많이 물어봅니다. 부모님이(혹은 어른들이) 충분히 결정을 내릴 일 같은데 아이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모습을 보면 저로서는 '아차'하고 제 행동을 돌아볼 때가 많이 있어요.  


매사에 아이의 의견을 물어본다는 것이 말이 쉽지 이런 모습을 많이 보고 자라지 못한 저로서는 이렇게 습관처럼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몸에 배어있지 않아 그렇게 하려면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더라고요.


그럴 때 다른 엄마들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아이를 올바로 대하고 있는 것인지, 특히 다른 아이를 대할 때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에도 굉장히 차분한 톤으로 아이와 '대화'를 합니다. 잘못된 것 을 바로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들을 해서 스스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게 하기도 하고, 거기에 최고 난의도라고 생각되는 '유머'까지 곁들이는 그 어려운 것이 이곳에서는 흔한 풍경이었어요.

민망한 상황도 유머 있게 넘어가는 위트는 아이의 자존감을 다치지 않게 하는 듯합니다. 


위험한 행동을 하면 당연히 바로 제지를 하겠지만 아이들 간의 사소한 마찰이나 트러블이 있을 때 보통은 부모가 잘 개입을 하지 않고(위험하지 않은 한) 자신의 아이의 잘못된 행동이 있어도 나중에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마찰에 개입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인 것 같아요. 오히려 아이들을 믿어주고 기다려주면 잘 알아서 해결될 일이 부모님이 개입해서 사건이 커지는 그런 경우도 잘 없는 듯합니다.


이러한 어른들의 배려는 아이의 자존감과 긍정적인 자아상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같은데 저는 아직도 아이를 통제하지 않고 자율성을 주면서 아이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캐나다라서가 아니라 이건 저의 어려움이기도 한 듯합니다. 캐나다라는 나라에서 저의 부족함이 더 증폭되어 보이기 때문에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 대화, 화제 등의 접근법이 한국에서 자란 저로서는 정말 익혀지기가 쉽지 않다고 여겨지고, 이것은 저의 아이에게 국한된 것뿐 아니라 아이가 친구를 사귀면서 다른 아이에게까지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더라고요.


아이가 캐나다에서 자라면서 이렇게 캐네디언 문화 속에 익숙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제가 아이에게 하는 어떤 말이나 행동들이 불편할 수 있고, 그렇게 문화차이를 느끼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대를 받을 때도 아이들이 모임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이들 드링크, 아이들 스낵, 선물 등을 준비함으로 작은 배려이지만 아이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게 해 주더라고요. 말도 아이들에게 항상 먼저 걸어주고 환영해 주더라고요. 


반대로 다른 가정을 초대할 때도 이러한 점들을 특히 신경 써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생활 습관에 베인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할 때(의도하지 않게 어른들을 먼저 챙긴다거나 아이에게 질문하는 것을 깜빡하거나 하면) 불편감을 느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이가 커갈수록 커지는 영어의 어려움


품 안에 아기였을 때는 한국어만 사용했었는데 아이가 현지에서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 놀라운 속도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언어가 가지고 있는 문화들도 함께 배우게 되죠.


학교 공부부터, 교우관계에서 쓰는 영어, 선생님과 나누는 영어를 물어보기 시작하는데 이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부모는 아이들이 쓰는 영어와 슬랭은 더욱 모를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아이가 학교에서 배워 온 말이 좋은 말인지, 쓰면 안 좋은 말인지 그 뉘앙스를 알기도 어려워서 지도력을 행사하기도 쉽지가 않아요. 


아이가 학교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면 그 어려움은 과중이 된답니다. 아이랑은 한국어로라도 말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데 진짜 영어만 사용해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어른들과의 대화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아이들이 편안하게 놀 수 있으려면 적당한 통제와 지도력이 있어야 하는데 영어로 아이들에게 부드러운 지도력 플러스 유머까지 곁들이려고 하면 정말 쉽지 않은 듯합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소통도 매우 중요한데 역시 모든 것이 영어로 진행이 되니 쉽지 않아요. 물론 '의사 전달'은 명확하게 할 수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영어를 하면서 형성하는 편안한 분위기를 내기가 쉽지 않답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어려움으로 자리 잡는 듯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이러한 문화차이로 인한 정체성이나 여러 어려움들을 한 번은 겪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캐네디언 가정의 분위기와 한국 부모님의 가정의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거든요.


자신은 캐나다에서 태어나 캐네디언의 문화로 살아가는데 한국 부모님은 친구들의 가정과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그 차이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저희가 완전 캐네디언처럼 살 수도 없고, 한국 문화의 좋은 점들도 분명히 있으니 그런 것들은 끝까지 가르쳐 줄 생각입니다. 


조부모님의 부재


캐나다에는 학교가 왜 이렇게 쉬는 날이 많은 걸까요? 그리고 아이가 아프면 학교를 잘 보내지 않는 이곳 시스템에서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아이를 키워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저희 아이처럼 형제지간이 없고 외동이면서 사촌도 없는 아이는 더욱 그렇죠. 베이비 시터를 많이들 고용하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6살 아이를 충족하기에는 경제적 지출을 감당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어제도 아이 가을 방학이라 아침부터 행차한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하나씩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옵니다.


한 할머니는 피카추 안경을 쓰고 캐릭터 역할을 자처하시면서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주시는데, 정말 부럽더군요. 


물론 또 그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겠지만 아이에게는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돌봄을 곁에서 많이 느끼지 못하고 자라는 것이 참 안쓰러운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웠다면 또 그 나름의 고충을 겪었겠지요? 


어떻게 보면 힘든 점을 인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부면의 개선할 의지가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으니 이런 어려움들을 느끼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합니다. 


또 자녀를 잘 키우려는 과도한 생각이 이러한 어려움에 대한 무게를 과중시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또 부모라면 힘들더라도 또 당연히 짊어져야 할 고민들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정말 잠이 안 오는 생각들의 하소연이네요. 선배 부모님들의 고견이 있으시면 부탁드리며..


오늘도 좋은 하루,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캐나다에서 겪는 문화차이에 대해 더 궁금하시다면 영상으로 준비한 여기를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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