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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단 Mar 22. 2024

이런 가정통신문은 처음봅니다

캐나다 학교의 놀라운 리딩가이드

5살인 아들은 캐나다에서 킨더가든(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아이가 처음 유치원에 들어갈 때 아무것도 글에 대해 가르친 것이 없었다.


한국 웹사이트에 들어갈 때 '아직 한글 못 뗀 5살 찾습니다.'라는 광고문구를 종종 본다. 한국에서는 5살이면 보통 한글을 다 읽나보다.


아이들이 글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시기는 다르다고 하는데, 나 역시 한국에 있었으면 주변의 시선에 아이를 벌써 한글을 마스터하도록 가르켰을 것 같다. 


하지만 또 내가 들었던 어떤 교육 방식은 아이에게 글을 일찍 가르키면 창의성을 기르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하여 나는 그 핑계로 한글을 아예 아이가 흥미를 보일 때 까지 그냥 두기로 하였다.


아이와 자주 어울리는 동갑내기 한국인 아이가 있는데 벌써 한글을 떼고, 책을 막힘없이 읽는다. 나 역시 시기를 놓치는가하여 친구가 사용했다는 한글 앱을 깔아줬는데 게임만 하려고 하고 재미가 없어한다.(그래서 앱은 곧 지워버렸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가 지난 것 같다. 아이가 글을 배우는데 급관심이 생겼다. 이전에도 체계적으로는 안가르쳤지만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계속 가지도록 격려했다. 냉장고에 한글 모양을 붙여둔다든지, 화이트보드를 가까이 두고 궁금해 하는 글자를 적어주도록 말이다.


몇 글자만 드문 드문 읽던 아이가 그림만 보던 책이 읽고싶어졌나보다. 그러더니 한글 공부를 시켜달라고 졸라댄다. 그러더니 다시 앱을 깔아주니 너무 열심히 한다. 문장도 제법 읽어나간다.


캐나다에서도 학구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비하면 없다고 봐야한다. 한국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너무 놀리기만하고 가르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한다.


아이가 이전에 다니던 데이케어에서도 유치원에서 거의 가르치는 것이 없다며 집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도 계열의 메니저였다. 인도 사람들의 학구열 역시 대단하다.) 그리고 어떤 부모들은 자녀에게 일찍 글을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데이케어에서 글을 가르치는 것을 법적으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정말 신기)


그래서 유치원을 다닐때까지는 정말 그냥 재미있게 놀기만 해도 만족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 학교에서는 알파벳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반학기가 넘어가자 몇가지 간단한 책들과 함께 가정통신문을 보내왔는데 남편과 나는 이 가이드라인을 보고 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내용을 공유해 보겠다.





처음 '목적'에서부터 아이들에게 단지 글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에 대한 사랑을 기르도록 서포티브하고 러빙한 환경을 조성해주도록 하도록 하라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다음 가이드라인을 보자. (이렇게 세세하게 알려준다고?)

아이가 읽을 때 옆에 앉아 있으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읽는 것에 대한 사랑을 길러주도록 재차 당부한다. 그리고 아이가 책임감을 가지고 학교에서 빌려온 책을 다시 가져다 주도록 권한다.


뒷면에는 더욱 상세한 가이드 라인이 있었다. 


아이들이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5초 정도 기다려주라는 것, 그리고 질문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돕는 것, 아이의 생각을 알아보는 질문을 하는 것, 그리고 아이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칭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있었다.


이렇게 캐나다에서 처음 받은 리딩 가이드라인은 좋은 의미로 좀 충격적이었다. 리딩 과제를 주면서 아이들에게 잘 읽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애정과 즐거움을 주는 방향성이 담겨있는 과제가 참으로 신선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나 역시 한국에 있었다면 아이를 벌써 한글과 영어를 가르쳤을 것 같다. 아이가 읽는 것에 대한 행복감과 애정을 길러나가는 것보다 읽는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을 것 같다.


나 역시 최근에 한국에서 아이를 길러보지 않아서 내가 자라던때와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매체를 통해 종종 접하는 내용들을 보면 아이들이 선행 학습은 기본이고, 선행 학습 시킬 마음이 없던 엄마들도 주변에서 아이들에게 시키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를 조바심에 어쩔 수 없이 시키게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와 같은 조바심을 낼 환경이 아닌 곳에 지낸다는 것(나도 한국에 있으면 아이에게 그렇게 시켰을 것 같다) 그리고 학교에서 받은 이 가정통신문으로 보게 되는 캐나다 교육의 방향성을 볼 때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된다. 


우리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이 곳에서 아이를 키우신 분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어떤 분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경쟁과 스트레스 없이 자유롭게 지내는 면에 대해 만족해 하시고 어떤 분들은 너무 공부를 안가르치는 것 같다고 걱정을 하신다.


아시아쪽과 인도쪽 혹은 아프리카 쪽의 많은 아이들은 대학이나 컬리지를 가는 편이다. 캐나다인들은 대학을 잘 가지 않으며, 일찍이 그냥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한다. 자신이 정말 원하고 배우는 바가 있다면 대학 교육을 받겠지만 흔치 않은 경우이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크게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서로 경쟁이 아니라 뭔가 배우는 즐거움을 강조할 수 있는 듯 하다. 

아이도 부모도 이와 같은 면에서 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내가 생각하는 아이를 키우기 좋은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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