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의 법을 얻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또 다른 존재가 생겨나는 것이 된다
수보리야, 설법이라는 것은 법을 가히 설한 것이 없음을 이름하여 설법이라 하느니라
여래의 설법으로 마음에 뭔가 얻은 바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곧 설법을 제대로 받아들인 것이 되지 못한다.
설법이 가히 법을 설할 것이 없는 것인데, 어찌 주고 얻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대 자신이 이렇다고 말을 해 주면 주는 것이 따로 있는가?
나 자신이 이렇다는 말을 들으면 얻는 것이 따로 있는가?
그냥 환희심이 내면 깊이에서 솟아 나올 뿐인데, 그러면 환희심을 얻은 것인가?
모두 본래 그대 내면에 구족하고 있는 것이 아니든가?
만일 여래의 법을 얻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대 자신과는 별개로 법을 얻는 그대 존재가 또 하나 생겨나는 것이 된다.
그러면 그대는 아메바처럼 자꾸 분열될 뿐이다. 법(法)에 대한 망상을 쫓아서 말이다.
그러면 어느 하세월에 그대의 무상(無相)을 나타낼 수 있는가?
그래서 여래는 법을 설한 것이 없는 것이 된다.
일체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스스로의 설법을 이와 같이 싹 거두어 흔적조차 없애버리시니 과연 여래(如來)가 아니면 그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으리오.
오직 여래의 대자비(大慈悲)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부디 법문을 듣는다고 착각하지 말지니...
부디 법문을 듣고 뭔가 얻는다고 착각하지 말지니...
부디 법문을 듣고 뭔가 얻으려고 눈에 불을 켜지 말지니...
부디 법문을 듣고 뭔가 얻으려고 착각하지 말지니...
부디 법문을 듣고 뭔가 얻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말지니...
그래야 진정 부처님의 자식이로다.
그냥 나 같은 사람하고 부담 없이 목탁 두드리면서 노래 부르고 먹으면서 재미있게 놀면 된다.
요즘 보면 자기 말을 들어야만 깨달을 수 있다는 엉터리 사이비들이 너무 많이 있다.
가르침의 내용은 별도로 하더라도 일단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래의 반대극에서 있는 왕마구니들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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