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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겨울의 봄 12화

12. 소설의 전개

by 백수광부

“잠깐 여기로 와 볼래?”


주원의 말에 겨울과 가희가 가운데 테이블로 모였다.


“어때?”

“후우~ 뭔가 찌릿해.”


가희의 말에 겨울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우의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는 거야.”

“서준우? 혹시 서준우가 서주원 너야?”


“그런 거 아니야.”

“혹시 넌 결말을 생각해 두고 쓰는 거야?”


“글쎄. 두 작가님이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달려있겠죠?”

“서 작가님! 저희를 너희 과대평가하시는 거 아닌가요?”


“오늘 가게 영업 종료까지 다음 이야기 써서 내.”

“뭐? 그렇게 빨리?”


“그럼 난 이만.”


주원은 주방으로 사라졌고 겨울과 가희는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소미 2(written by 겨울)


소미 곁을 맴돌며 나의 존재를 알렸다. 동네 토박이로 자라 동네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청년이라고 말이다. 예쁜 꽃, 부드러운 돌멩이,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소미를 데려갔다. 순수한 소미는 경계 없이 나를 잘 따랐다. 다정하고 친절하게 날 대했다. 어느덧 무기력하던 나에게도 기쁨이란 게 생겨났다.


그녀가 길 한 모퉁이에 앉아 네 잎 클로버를 찾는 모습을 보며 결심했다.

이제는 고백해야겠다고.


"으흠."


헛기침을 내니 소미가 뒤돌아보았다.


“널 좋아해.”


소미는 그저 웃기만 했다. 대답을 듣지 않았지만 뛸 듯이 기뻤다. 우리 둘은 많은 얘기를 나눴고 시간을 함께 했다.


오늘은 소미와 기차 타고 여행하기로 했다.


“내장산 단풍이 그렇게 예쁘대.”


소미가 잔뜩 기대했다.


“소미 너처럼.


상앗빛 캐시미어 카디건을 입고 나타난 소미를 보니 마음의 소리를 숨길 수 없었다. 툭 튀어나와버렸다.


소미 손을 꼭 잡고 정읍행 기차에 올랐다.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눴다. 소미는 연신 웃었다.


어릴 적 소미 모습을 상상했다.


_흰색 머리띠를 한 소녀

_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동화책을 넘기는 고운 손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지금이 너무 행복했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옆 사람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에게만 몰입하게 되었다. 그녀만 보였다.

우리는 이어폰을 나눠 끼며 기차 밖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나에게 기대어 시와 소설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느덧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기차 안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바랐다.


정읍역에 내려 내장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피곤한 일정이었음에도 소미는 생기 있었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내장산은 이미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매표소 입구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을 붙잡았다.


“처녀, 총각 어여 들어와. 맛난 거 많어.”


쭈뼛거리는 우리를 향해 상인은 구수하게 한 마디를 더 건넸다.


“아가씨, 거시기 뭐 좋아해?”


소미는 전라도 사투리가 재미있는지 내 등 뒤에 숨어 연신 웃음을 참아댔다. 나 역시 그녀를 바라보며 함께 웃었다. 소미가 깔깔깔 웃으니 어깨가 으슥해졌다.


부끄럽게 노랗고, 알싸하게 붉은 단풍 아래에서 우리는 사진을 계속 찍었다. 순간을 한가득 저장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소미가 들었는지 나를 나무 아래 벤치로 끌고 갔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내가 아침에 준비한 건데 맛이 있을지 모르겠어.”

“정말?”


“짜잔.”


소미가 예쁜 민트색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그 알 수 없는 형체를 보고 소미는 울상이 되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엉망이 되어버렸네.”


케첩으로 하트를 그린 오므라이스였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흔들려 엉망이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맛만 좋으면 되지.”


보란 듯이 맛있게 오므라이스 한 숟가락을 먹어 보였다. 나의 웃는 모습에 소미가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안아주었다. 포근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예약하지 못했다. 입석이라도 타야 했다. 서서 가야 했지만, 우리 둘은 개의치 않았다. 피로가 조금씩 몰려들 때쯤, 기차는 천안역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마침 우리 옆자리 사람이 내렸다. 기차가 출발해도 아무도 타지 않길래 나는 소미를 거기에 앉혔다.


“누가 탈지도 모르잖아.”

“타면 비켜주면 되지. 지금 천안이니까 운 좋으면 서울까지 빈자리일 수도 있어.”


“그러면 좋겠다. 근데 너는 어쩌고?”

“나는 튼튼해서 괜찮아.”


다리가 조금씩 저려올 때쯤 소미가 앉은 통로 쪽 팔걸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갑자기 내 등에 뭔가 와닿는 느낌이 났다. 소미 가 내 등에 기댔다. 등으로 전해지는 온기에 모든 게 녹아내릴 듯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겨울은 너무나 쉽게 써진 글을 보며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평소 그려왔던 연애소설 이야기였다. 써 내려간 글을 살포시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았다. 눈을 감고 엎드렸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에 벚꽃 송이가 날리는 기분이었다.


준우를 그려보았다. 준우라면 소미를 한껏 사랑해 줄 것만 같았다. 소미는 그런 여자였다. 가볍게 사랑받는 여자였다. 가만히 있어도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가 소미라 생각했다.


겨울은 자꾸 소미가 되어갔다.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추석 연휴 동안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겨울의 봄'은 10월 7일(화) 추석 연휴로 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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