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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겨울의 봄 13화

13. 소설의 위기

by 백수광부

“아, 어렵다. 그녀가 찾는 준우가 서준우가 아니면 누구라고 해야 하나? 헤어진 전 남자 친구인가?”


가희가 글을 쓰다 말고 머리를 쥐어뜯는 제스처를 취했다.


“주원, 여기 술도 팔아?”

“아니, 팔지는 않는데 펜션엔 있어.”


“펜션?”

“매점 뒤 펜션도 내가 관리해.”


“진짜? 그럼 이따 술파티하자. 목표가 있어야 잘 써질 것 같아.”


가희의 말에 주원과 겨울은 웃음으로 답했다.


“오! 좋아.”

“흥미진진한 글 부탁해!”


“나만 믿어!”


가희는 자신만만해했다.



# 해리 2(written by 가희)

“술 좀 그만 마시면 안 돼?”


내 말에 해리는 다시 스르르 누워버렸다.


“맨 정신으론 힘이 드네.”

“하아.”


깊은 한숨이 절로 났다.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준우야.”


그녀가 나의 허리를 붙잡았다. 가만히 있었다. 줄곧 그 자리에 있던 고목나무처럼 그냥 그렇게 있었다. 그녀의 슬픔이 온전히 떠날 때까지 그렇게 있어야 했다. 내 마음이 그렇게 시키니까 그래야 했다.


“너 오늘 무지 보고 싶다.”


해리는 또 그를 그리워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기에 껍데기만 맡긴 채 가만히 있었다.


“나 어떻게 살라고. 너 정말 밉다. 흑흑.


해리는 나에게 기댄 채 울기 시작했다. 바지가 젖어오니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이 나쁜 놈아. 흑흑.”


결국 나는 해리 옆에 누웠다. 그녀를 품에 꼬옥 안았다.


“많이 기다렸지. 늦어서 미안.”



*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던 4월의 캠퍼스.

나와 준우, 해리는 함께였다.

우리는 삼총사였다.


“준우야, 나무 좀 흔들어 봐.”


벚꽃 잎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에서 해리가 준우를 불렀다. 준우와 난 동시에 뒤돌아보았다.


“서준우.”


내가 나무를 흔들면 해리가 꽃비를 맞으며 뱅글뱅글 돌았다. 그 모습을 준우가 카메라에 담았다. 준우는 사진 찍기를 유독 좋아했다.


“둘이 거기 서 봐. 내가 찍어 줄게.”


준우가 우리 둘을 벚나무 아래에 세우니 해리가 준우를 잡아끌었다.


“강준우 빠지면 섭섭하지.”


우리 셋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셀카를 찍었다. 그날 사진은 눈부시게 환했다.

과 친구들은 우리를 '해리와 쭌'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늘 함께였다.

술자리에서 셋이 앉을 때면 해리는 꼭 내 옆에 앉았다. 준우와 마주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해리와 살갗이 스칠 때면 나는 신경 쓰였지만 해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해리는 오롯이 준우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준우 얘기를 듣고 있는 그 눈망울이 너무 초롱초롱 예뻐서 자꾸 해리의 옆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나도 사랑에 빠져버렸다.


‘안 되는데.’


삼총사가 깨지길 바라지 않았다. 나에게 준우는 둘도 없는 친구다. 차라리 해리가 준우에게 고백하고 준우도 해리랑 사귄다면 다행일 거라 생각했다. 해리를 향해 커져가는 내 마음은 어떻게든 누르면 눌러질 것이라 생각했다.

준우는 해리에게 이성적 감정은 없는 눈치였다. 그래서 해리를 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준우나 해리에게 내 속마음을 말할 순 없었다. 말하는 순간, 두 친구를 한꺼번에 잃을 것이 뻔했다.


셋이 하이킹을 가기 위해 사거리에서 만나기로 한 날.

준우는 우리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반대편 건널목에서 우리는 그가 건너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 그는 건너오지 못했다. 차에 치여 쓰러진 준우를 멀리서 바라보던 해리가 울부짖었다.


“안 돼! 안 된다고!”


준우는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멀리 가버렸다.


둘만 남은 '해리와 쭌'의 일상은 아프고 따끔거렸다. 심장이 바늘에 콕콕 찔리는 날이 잦았다.

그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해리가 원한다면, 그녀가 그를 잃은 아픔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서준우는 강준우 대신이어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그녀가 준우를 찾는다면 강준우 껍데기라도 괜찮았다.



가희가 펜을 내려놓았다.


“나 오늘만 해리로 살아볼래.”


그녀는 무언가 결심에 찬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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