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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이 Feb 11. 2024

수많은 선택 속에서 자신을 지킨다는 것

공동체 보다 개인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


미국에서의 적나라한 날 것 그 자체를 내가 경험한 것들과 연구한 것들을 토대로 이야기할 때 모든 이들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보다도 이런 일들도 있음을 알고자 하는 분들을 비롯해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며 냉정하게 봐야 할 것들을 소개하는 글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미국에 대한 이야기들 중 나는 일부분에 속하며, 다양한 글들 속 이런 글도 있고 저런 글도 있음에 느끼는 바가 서로 다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공감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또한 얼마나 오래 한 국가에서 살았는가 보다는 ‘무엇을 하며’ 지냈는 가가 더 냉정하게 볼 수 있는 렌즈가 생기기도 하다. 나의 경우는 여러 학회를 지역별로도 다니고 여러 미국 문화 및 인간 사회에 대해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으면서도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연구를 했으며 부분적으로 미국에 대해 현실 그 자체의 것을 반영하는 글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자유분방, 개방성, 열린 마인드, 누구든 괜찮을 수 있는 곳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지켜낸다는 것은 쉬운 일 같으면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주변에서 다들 노는 환경에서 홀로 공부한다는 것만으로도 꽤 버거운 일이다. 모두가 자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데 그 안에서 혼자 깨어서 일을 하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물론 이런 환경을 개의치 않는 경우도 있다.


사실 나는 MBTI에서도 T 가 거의 90프로 넘게 나오는 성향이고 매우 현실적인 것을 보며 생각을 하는 타입으로 유료 검사를 해도 이렇게 나와서 신뢰를 할만한 자료일까 싶지만 그럼에도 이런 성향이 있다 한다면 나름 T로 살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나 자신의 일상에서 지켜야 하는 것들을 유지한다는 것이 버거울 때가 많았다.



미국에서 방학 때도 난데없이 나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인턴 일들을 병행했고, 일요일 같은 주말에 교회를 가는 문화가 많이 있는 미국인지라 많이들 교회를 방문할 때도 나는 논문을 쓰고 있었고 주말에도 연구를 했고 카페 일도 했다. 이건 나의 일상이니까 그래도 할만했고 혼자 일한다는 기분이 가끔 들어도 이렇게 일을 해야 적어도 전기세랑 생활비를 내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기에 그저 나의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놀라웠던 것은


TA를 하는 도중에 학부생들에게 가르칠 PPT 자료화면을 켜고 있는 데 어떤 학생들은 수업 시간임에도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 내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들은 팁은 ‘학생들이 어떤 심리를 거슬리게 하더라도 너는 그저 너의 수업을 하도록 하고, 뭐라 조언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셨다. 지도교수님의 조언을 깊게 마음에 두며 수업 중에 랩탑으로 딴짓 정도 하는 수준이 아닌 담배를 피우거나 십자수를 한다던가 뜨개질하면서 수업에 대한 질문을 한다던가 틱톡 같은 영상을 찍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이런 환경에서 꿋꿋하게 ‘내 수업만 진행하라’라는 이 말을 믿고 끝까지 수업만 해내야 했던 학기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이런 수업이 끝나고 나서 지도교수님과 상의를 했는데 아무 지적 안 하고 수업만 잘했던 나에게 칭찬을 해주시고 놀라고 힘들었던 마음을 달래주시면서 많은 교수님들과 소통하게 해 주셨는데, 그 교수님들도 대부분이 그럴 땐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수업만 하고 토론에 잘 참여하는 학생들하고만 잘 집중해서 이어가면 된다는 조언이 가득했다. 또 다른 수업은 같이 참여해 주셨던 교수님도 어떤 학생이 무엇을 하든지 그저 내버려 두셨다. 무엇을 하던 그저 그렇게 수업하실 것만 하셨다.


이미 그 담배피거나 수업에 집중하기 힘든 방해를 하는 사람들은 추천서가 필요하거나 할 때 좋은 평이 가지 않을 것이니 지금 현재 너는 네가 진행하는 수업만 잘하고 잘 참여하는 학생들 눈여겨보며 잘 격려해 주면 된다는 말이 전부였다.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불이익을 당해서 외로워 보이길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고 싶어 그 사람에게 가보려 했는데 이런 나의 손을 잡아 이끌어 빈 공간에 나를 데려가 준 미국인 동료들이 다 같이 해준 조언은


‘가만히 있고 너는 너의 일만 하면 된다’는 말 뿐이었다. 그럼 그렇게 당하고 있는 사람을 모른 척해야 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네가 책임질 수 있어? 저 사람을 도와준다는 이유로 네가 모든 책임을 같이 져야 하는데 가능해? 저 사람을 도와준다고 해서 너한테 고마워할 평범한 사람일 거라 생각해? 저 사람이 생각보다 더 제멋대로인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냥 넘어가자”라는 답변이 많았다. 그저 위로만 해주는 것도 힘든 일인가?라는 질문에 ‘그 위로가 모든 것에 시작이 된다. 그 시작과 끝을 저 사람과 함께 책임지게 되는 순간이 생길 수 있는 데 감당 가능해? 네가 저 사람과 얼마나 알고 있어? 이 회사 너도 월급 받고 사니까 필요하고 잘 다녀야 하잖아. 무난하게 잘 다니고 지금껏 잘해왔고 서로 좋은 동료들도 만났고 좋은 사람들이 다치는 거 보고 싶지 않다. 


나의 미국인 동료들은 나를 위해서 조언해 준 것인 것을 안다. 나와의 신뢰가 쌓여서 함께 일하고 속마음을 서로 솔직하게 말하는 관계가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이 동료들은 내가 선뜻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고 싶어 하는 모습이 보이면 끌어당겨주었고 안전할 수 있도록 지켜주었다.  이것은 ‘타인’에게 신뢰가 없는 존재라면 신뢰가 없는 상대에 대해서는 낯선 이로 여기고 무엇을 해도 내버려두지만


신뢰가 쌓인 사람과의 관계에선 솔직하게 조언을 해준다.


누군가 불법 마약을 하고 있는 정황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내 미국인 친구들은

[신고도 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 눈 마주치지 말고]라는 말로 나에게 모자를 씌워주기도 했다. 또 누군가 창백해서 아파 보였는데 이를 본 동료들은


[ 신고도 하지 말고 그저 지나가]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난 이 동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신고도 할 수 있었고 교수님의 조언 생각지 않고 수업 중에 적어도 담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비겁했다. 신고도 하지 못했고 나에게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지도교수님의 조언을 무시할 수 없었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미국인 친구들은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미국인 친구들도 나를 위하고 내가 다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좋은 의도이다. 소중한 사람이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을 환경을 아예 배제하려고 하는 거겠지..


이런 상황이 종종 있을 때마다 스스로 갈등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사실 책임감 있는 선의를 베푸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새 구두를 신고 뒤꿈치에 상처가 난 것을 본 정류장에서의 어떤 한 아주머님께서는 너무 아프겠다며 가방을 뒤적이시다 반창고 하나를 주셨고 감사하다는 나의 수줍은 인사에 함께 그저 웃으시며 버스를 기다리셨다.


나도 길 가다 가방이 열려있는 학생에게 알려주었고 그 학생도 고맙다며 가방을 잘 닫은 뒤 마저 갈 길을 갔다.


누군가 아파 보이면 119를 불러드릴까라는 말이라도 건넸고,


어떤 일에 직접 나서기 어려워 보이지만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경우 신고도 해드렸었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많은 경우들이 이렇게 서로 도와주셨다.


나는 미국에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진심을 전하는 게 어렵지 않은 상황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본 미국인들은 서로 어느 정도 신뢰와 증명이 된 사이가 아니면 선뜻 나서는 것에 걱정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나도 누군가 소외당하는 것을 보고 외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이를 지켜내기가 쉽지 않았고, 무뎌질 것만 같았다.


나는 책임질 각오와 능력이 부족했고, 용기가 나지 않았고,

가난한 유학생이고, 유틸비나 생활비 버는 것만으로도 할 게 많았고,

논문도 써야 했고, 내가 함께 신뢰를 나눈 미국인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기도 싫었고,

날 위해 조언해 준 내 주변의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고 이렇게 나 자신을 ‘그럴 수 있다’하면서 눈을 감아버렸다.


그렇게 나는 합리화를 했고, 누군가의 소외당하고 불의를 보면서도 비겁하게도


나 ‘개인’을 위한 선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이런 눈물조차 사치스럽고 변명이 될 것 같아 남들 앞에선 울지 않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만약 내가 저런 소외당하는 입장이었다면….?


내가 무슨 일이 있을 때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에 대한 신뢰가 없고 증명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 또한 외면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외면을 당하더라도 나 역시 결국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을 위한 비겁했던 결정들을 떠올린다면..

어쩔 수 없다고 보게 되었다.


개인을 위한 삶. 책임질 수 있는 가..

책임 지지 못할 일은 선의로도 하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으며, 그저 위로 한마디 조차 하는 것도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한다니..

유학생 입장에서 미 정부의 도움을 받기도 힘든 상황..


그렇게 눈을 감아버린 순간이 쌓여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누군가를 도울 때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탑이 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있는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노력들로 스스로도 지키고 타인에게도 걱정 없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더 책임감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 주변 소중한 사람들과 낯선 이에게도 소외 당하는 것이 보이면 나를 보호할 수 있으면서도 손을 내밀 수 있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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