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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서른아홉부터 Aug 08. 2024

도박 중독자의 가족

인생 뭐 있냐? 한방 판타지

예전에. 집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직장을 다니고 있을 걸로 알았던 동생이 보이스피싱 일당 관련해서 경찰서에 긴급체포가 되어있다고.


그 순간 숨이 막혔고 그날 밤 울고 불고 남자친구를 붙잡고 하소연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보이스피싱이라는 그 나쁜 범죄가 얼마나 타인의 영혼을 짓밟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내가 더 잘 알기에 그 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예전에 중고나라에서 40만 원을 사기를 당해 경찰서를 왔다 갔다, 피의자는 약 올리듯 돈 받고 싶어요? 이러면서 약을 올리고 경찰서에 신고했다. 피해자 모아서 엄벌탄원서 써낼 거다 그러면 오늘 몇 시까지 내일 몇 시까지 기다려 달라 그러다가 영영 잠수를 타 버렸고, 돈을 돌려받지도 못하고 그대로 날린 뒤 나는 한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내가 잘 알기에 그래서 더더욱이나 그런 동생을 용서하지도 못할 거 같았다.


상황은 알아봐야겠기에 동생이 있다는 경찰서를 찾아갔고 동생의 면회를 간단히 한 뒤에 나는 담당 형사님을 만났다. 담당 형사는 굉장히 고압적으로 날 대했고(죄는 내가 아니라 내 동생이 지은 것인데),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일당이 아니라 이미 도박중독이 된 상태로 불법토토총판을 하고 그 돈으로 사기를 친 혐의로 긴급체포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동생의 낌새가 영 수상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멀쩡히 일을 하고 있다는 놈이 평일 저녁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와서 술을 마시며 전화를 한다거나, 동생이 다닌다는 회사의 연봉에 비해 무리한 지출의 흔적들. 


수상한 낌새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너 보이스피싱이나 이상한 일 하는 거 아니지? 몇 번이고 물었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철썩 같이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이야기했었고.


결국 동생은 경찰서에서 구치소로 넘어갔다. 그리고 구치소에서 몇 개월간 짧은 죗값을 받고 풀려났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가족들에게 염치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인지.


동생의 일은 나에게 PTSD를 아주 심하게 남겨주었다. 평소에도 가볍게 있던 우울증의 증세가 더 심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이 컥 하며 막혔고 귀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이러다가 내 몸이 터져버리고 말겠구나 하며 밤에 자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내 몸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어서 그래서 밤을 꼬박 새운날도 있었다. 뒤늦게서야 알게 됐지만 이게 공황장애라고 했다.


그 느낌이 싫어서 나는 술에 의지했고 공황발작이 두세 달에 한번, 그러다 한 달에 한번, 한 달에 한 번에서 2~3주에 한 번으로 점점 간격이 좁혀져 오기 시작했고 회사에선 공황을 보여주기가 싫어 참고 참고 벼르다 정신과에 약처방을 받았던 적도 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접하게 되었다. 




'도박 중독자의 가족'이 책은 카카오에서 웹툰으로 한번 연재된 것을 바탕으로 엮인 책이다.


도박중독자의 가족 | 카카오웹툰 (kakao.com)


이 책에서 주인공은, 평범했던 사람이 도박중독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지 그 중독자의 가족이 된 입장에서 너무나도 자세히 그리고 내 상황과 너무나도 똑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작가의 남편은 삼 남매였다. 가난한 살림에 일찍 아버지를 여읜 삼 남매는 홀어머니 한 분을 모시고 다짐한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자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선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삼 남매는 우애 좋게 형의 학자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동생 둘이 막노동판에 가서 돈을 벌고 그렇게 무사히 학교를 마치면 큰 형이 둘째 형의 학자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막냇동생과 같이 또 열심히 일을 했다. 


와중에 막냇동생은 셋 중에 가장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기도 했고 열심히 했다. 경제를 알아야 부자가 된다며 따로 열심히 주식을 공부하기도 했다. 직장을 다니며 모은 돈으로 주식을 하고, 형제들이 주는 목돈을 굴려 주기도 했다. 정해진 날짜에 따박따박 돈이 들어오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고 뉴욕증시가 폭락을 맞아 그 여파가 우리나라에도 미친 그때. 불안한 예감에 사로 잡힌 작가와 남편은 동생에게 가서 투자내역을 달라고 했다. 동생은 형들이 빌려준 돈에 큰 손해를 끼쳤고 주식을 통해 본 손해를 복구하기 위해 선물옵션에 까지 손을 대 모조리 날린 지 아주 오래전이다.


그리고 작가는 알게 된다. 막냇동생이 겪고 있는 이 상황은 도박중독과 다름없는 주식중독이라고. 도박이나 주식을 하다고 모두가 중독이 되는 건 아니지만 BIG WIN - 주식이나 도박으로 큰돈을 따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이때의 쾌락은 세상 어떤 것보다 강력하여 뇌는 무의식적으로 쾌락을 좇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온갖 이유를 대며 중독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중독에 빠져 계속 거짓말은 거짓말을 부르고,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그 거짓말이 들통나는 순간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커져 있다. 중독자에게 병원 치료를 권하지만 정신병원은 완전히 미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며 온 가족이 나서 거부한다.


가족들은 사람 하나 살려 보자며 온 집안에 돈을 끌어 모아다 중독자에게 몰아주기도 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에게 연락해 자신의 불안을 그리고 슬픔을 이해시키고 공감시키려 한다. 공감하지 않으면 "네가 그래놓고 사람이냐? 들어주는 것도 못하냐?"며 역정을 낸다. 


중독자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인 것처럼 어떻게든 중독자를 배려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중독자의 기분 = 가족의 기분이 되어 있는 이 상황을 공동의존이라고 했다. 그리고 공동의존을 하고 있는 가족들 역시도 치료를 권하면 너는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이냐며 되려 펄펄 뛰고 솟고 난리를 친다.


나 역시도 공동의존을 겪었다. 꿈자리가 사나우면 당장 집에 전화해서 동생의 안부를 물었고 불안함과 초조함, 설마. 얘가 또? 하면서 부모님께도 걔한테 돈 주시지 말라고, 필요하면 물품을 사서 줘야지 돈을 주는 건 약쟁이에게 약 주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끊임없이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결국 동생에게 부모님은 돈을 해줬고,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화를 냈다.


나는 흡연자이다. 출근을 해서도 내가 정한 정확한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신 시간만큼을 쓰며 담배를 피우고, 그게 조금이라도 꼬이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시간별로 정해 그 시간을 벗어나거나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날에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미친 듯 불안하고 초조했다. 


논외지만, 이 공동의존을 하는 성별을 따져 보면 여성일 경우가 100%라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른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씩 갉아먹히며 일주일에 한 번씩 꼭 해야 하는 나의 생활루틴이 있었는데 그렇게 내 생활루틴이 망가져 가고 알코올의존에 몸무게가 100KG 이 되는 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뒤 나는 가족들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했다. 일단 나라도 살고 보자는 마음에서도 그렇고 이곳에 있다가는, 함께 하다가는 정말 역시도 끝이 안 보이는 늪지대로 끌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웅웅 거리는 느낌이 싫어 단약 했던 우울증과 공황장애 약을 퇴사 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문득 불안해지고 이상한 마음이 들 땐 눈을 꼭 감고 내 몸을 스스로 안은채 나의 신에게 평안을 주시라 기도한다.


정작 죄를 짓고 온 가족을 지옥으로 이끌고 가는 건 중독자인데 왜 엄한 나까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며 원망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일상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럼에도 문득 지뢰 터지듯 맘속에서 뭔가가 뻥 터져버리면 다시 또 원점으로. 원점으로.


이쯤 되면 할 만큼 했다 싶기도 하지만 너무 깊이 상처처럼 남아 있는 중독자 가족으로서의 삶. 조금 벗어나다가도 원점 복귀를 하지만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그리고 앞으로 겪어야 할 수 많은 시행착오가 이 자리에서 날 언젠가 벗어나게 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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