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주인의 작고 소중한 비즈니스, 지하 셋방
옛날에 지어진 빌라들 중에는 지하. 반지하층이 많았다.
서울의 넘쳐나는 가구수를 수용하려면 높게도 지어야겠거니와 지하면적 또한 최대한 활용해야 했던것 같다.
장미 맨-숀도 각 세대별로 지하층에 얼마간의 면적을 소유하고 있었고, 대부분 그 면적을 구획하고 개조해서 세입자를 들여 놓았다.
지하로 6-7개단쯤 내려가면 지하세대 입구가 있었고, 각 세대별 방문을 열면 원룸형태로 부엌과 방이 갖춰져있었다. 나름 살만한 구조였고, 낮에는 작은 창으로 해도 제법 들어 와서 형광등을 켜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했다.
우리 집 지하방에 가장 오래 살았던 세입자는 홍진이네였다.
8살이던 내가 그 아이 정수리를 가끔 쓰다듬어 주었으니 2-3살 차이는 났던것 같다. 몇 년후에는 남동생도 태어 났는데, 그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부터 걷는것 까지 지켜본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주제에 모성애 비슷한 감정까지도 느껴보았다.
홍진이네와는 피는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이였다.
홍진이 동생이 태어났을때 우리 엄마는 그 지하방에 내려가 산후조리를 도왔고, 우리 엄마 아빠가 모임으로 저녁늦게 들어오시거나 여행을 가시면 홍진이네 엄마가 저녁거리를 스뎅그릇에 가득 담아서 올라오셨다.
홍진이네 음식은 뭐랄까.. 매우 감각적이었다. (모든 음식이 달았다 )
내가 느끼는 홍진이네는 우리집 보다 여유롭고 넉넉했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바라볼때 느끼는 감정이라기엔 어울리지 않지만, 하우스 푸어라고 하던가. 집가진 빈털털이 들이 워낙 많은 세상이니까.
어쨋든 이런 여유로움은, 경제적인 것을 떠나서 그 집안에 가면 느껴지는 온기에서 먼저 느껴졌다. 홍진네 방을 열면 항상 피죤 냄세가 났는데, 그 냄새가 온돌의 따뜻한 공기에 섞여서 온 집안을 메우고 있었다. 아기가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공기를 뚫고 들리는 아줌마의 소프라노 웃음소리는 행복한 가정의 완벽한 조합이었다.
아줌마는 산후조리가 끝나고 가끔 우리집에 올라오셔서 엄마와 다른 아주머니들과 함께 고스톱을 즐기셨다.
이때 아줌마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금도 안대를 하고 아줌마 웃음소리를 맞추라고 하면 맞출 수 있을것 같다. 고스톱으로 잔돈을 제법 많이 쓸어가셨던거 같다.
우리 집은 그렇게 수시로 무허가 하우스가 되었다.
소중했던 장미 맨숀 고스톱 멤바들, 그중에 홍진아줌마가 너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