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빠가 되고 만 6년이 채 되기 전 어느 겨울의 끝자락,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서둘러 마무리된 향년 76세의 일기. 90세까지 지병 없이 사랑하는 가족, 지인들과 술 한잔 기울이다가 즐겁게 웃으며 돌아가시는 것이 꿈이셨던 분이다. 아버지는 본인이 직접 지은 산장에서 친구분들과 약주를 하시다가 즐거운 기분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떠나시는 순간을 비록 가족들과 함께 하지도, 90세까지 사시 지도 못하셨지만 친구분들과 그렇게나 좋아하시던 술잔을 기울이다 웃으며 눈을 감으셨으니 반은 성공하신 듯하다.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셔서 항상 앞서 가셨다. 어린 시절 외식을 하러 갈 때에도 혼자 저어만치 앞서 걸어가고 계셨고,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항상 현관문을 열고 서서 “빨리 안 나오나?!”를 외치시던 분이다. 집안 단속하랴, 어린 자식들까지 챙겨야 하는 엄마는 화장도 여유 있게 하기 어려웠다. 아파트 1층에 살았던 우리 가족의 그런 모습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만 하는 모든 이웃들에게 그대로 노출이 될 수밖에 없었다. 원치 않는 가정사의 노출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창피했다. 우리 집 현관문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다른 이웃들이 키득키득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리 성질 급한 아버지에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고, 이제는 뭐가 그리 급하다고 죽음까지도 서둘렀냐고 하늘에 대고 핀잔을 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버지의 많은 부분들을 존경하고 존중했지만, 급한 성격만은 닮고 싶지 않았다. 그런 급한 성격만은 닮지 말자 다짐했던 나는 항상 느리게 행동했었다. 매사 여유로이 생각했었다. 조금 늦으면 어때?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지. 급하게 먹으면 체해. 하지만 그랬던 내가 나이가 들어 아빠 6년 차가 되어보니, 출근이 늦어서 빨리. 일이 많으니까 빨리. 퇴근이 늦을까 빨리. 육아에 지쳐서 빨리. 아내가 힘들까 빨리. 하나뿐인 아들 심심할까 빨리. 이런 서두르는 삶에 지쳐서 빨리. 그렇게 마음속으로 빨리를 외치고 있더라. 그렇게나 싫어하던 아버지의 행동을 내가 따라 하고 있더라.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아왔던 아버지의 모습에는 이면이 있었던 것이다. 어린 내가 감히 아버지를 1차원적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주말도 없이 일하던 그때 그 시절이, 그에 지쳐있던 삶이, 어린 나의 칭얼댐이, 사춘기 누나의 짜증이, 엄마의 잔소리가 아빠를 서두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 같다. 주 6일, 7일 주말도 없이 출근을 하던 시대였다. 그때 그 시절, 아버지에게 휴일 하루의 가치는 천금 같았을 것이다. 무얼 하든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교통도 불편했던 시대였다. 행여나 가족들 저녁 식사 못하고 기다릴까 퇴근 시간이 얼마나 초조했을까? 내비게이션 없는 여름휴가 길은 어땠을까? 아버지도처음 가보는 길인데 얼마나 남았냐고 투덜대고, 배고프다고 투덜댔었다. 요즘처럼 쉬 맛집을 검색할 수도 없던 그때 그 시절, 끼니때를 맞춰 음식점을 찾아 식사를 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했었을 것이다. 오롯이 아버지 당신을 위한 서두름은 없었다. 당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성급함은 없었다. 가족을 위한 사랑과 책임을 오해했던 것 같다. 힘드셨던 삶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역지사지 란, 참 어려운 일이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은 어느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네 아빠는 누구인가?”
“우리 아빠는 다들 피곤할 때 운전하는 사람이다.”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고생하신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못한 내가 한심했다. 이제와 후회가 되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후배였던 적도 있고, 내가 선배였던 적도 있다. 내가 동생이었던 적도, 내가 형이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아들이기도 하고, 아빠이기도 하다. 그 상반되는 입장의 모든 순간, 내 태도는 전부 달랐다. 내가 다중인격이어서 일까? 아니다. 단지 상황과 입장이 만들어 내는 나의 책임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그 책임에 대한 이유를 상대에게 성실히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오해의 꽃은 그럴 때에 피어난다.
특히나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였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이나 힘든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는 분이셨다. 그렇게 자신을 숨기셨었다. 아버지가 가진 책임을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의 시간을 조금만 가졌더라면 지금의 후회가 있었을까? 물론 없진 않을 것이다. 삶의 후회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빠의 삶을 살아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서로를 이해할 소소한 대화들의 필요성을. 하지만, 느리고 여유로운 삶의 방식을 가졌던 나는 역시나 이 마저도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조금만 서둘렀더라도, 아니면 아버지가죽음에 대해서 만이라도 조금 늑장을 부리셨더라면 전할 수 있었던 말. 늦었지만 이제 나마 전하려고 한다.
“이젠 알겠어요.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요.”
우리 모두는 이해를 필요로 하는 관계 속에 살고 있다. 서로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이해는 오해가 되기 십상이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소중한 인연들과 오해 관계가 아닌 이해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겠다. 더 늦기 전에. 그래, 때론 아버지의 서두름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 같다.
째깍째깍
아버지 시계 소리
눈을 떠야 보이던
당신이 이제는
눈을 감아야 보이네요.
다르지 않아요.
난 늘
당신을 봅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이제 나마 당신을 보며
전하려 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