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만난 익어가는 열매들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아침과 저녁의 공기가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한여름에 입었던 옷들은 옷장에 넣고, 한동안 신었던 여름 샌들은 신발장에 넣었습니다. 소매가 살짝 길어진 옷과 앞뒤가 막혀있는 단화를 꺼냈습니다. 낮에는 햇빛이 여전히 따갑지만, 그 기세가 한풀 꺾이는 늦은 오후가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밤의 온도가 떨어지면 식물들이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는데요. 20년 동안 식물을 관찰하면서 그 섬세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식물들은 낮과 밤의 햇빛의 양과 온도에 따라 엽록소의 함량을 다르게 하는데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햇빛의 양과 온도가 줄어들고, 잎에서 엽록소를 서서히 거두기 시작합니다. 요즘 관찰해 보면 식물의 잎은 짙었던 초록이 서서히 옅어지고 희미한 초록색으로 변하면서 다가오는 가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열매도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산딸나무 열매는 벌써 붉게 익어 물까치들이 맛있게 먹는 먹이가 되었고, 여우팥의 열매도 깊이 익어 짙은 갈색의 꼬투리가 벌어지려고 합니다. 동백나무 열매도 탐스러운 붉은색으로 익었어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산수국, 쪽동백, 쥐똥나무, 산수유나무의 열매는 아직 익어가는 중입니다. 식물들은 자신이 지닌 마지막 에너지를 오롯이 열매에 쏟아부으며, 천천히 결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뜨거운 여름과 퍼붓는 비를 견딘 것이지요.
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삶의 지혜를 깨닫습니다. 때가 되면 싹이 나고,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때가 되면 열매가 무르익어요. 그 과정에는 서두름이 없습니다. 기다리면 적당한 때가 오고, 원했던 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 조급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기보다, 식물 삶의 리듬처럼 차분히 준비하고 기다리면 좋겠습니다. 식물이 열매를 맺듯, 우리도 언젠가는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숲에서 조사하면서, 숲길을 산책하면서 변하지 않는 이 진리를 늘 확인합니다.
머지않아 숲은 붉거나 노란빛으로 물들 것이고, 식물들은 본래 목적인 씨앗을 남길 것입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이지만, 그 속에서 만나는 식물들의 모습은 항상 같지 않습니다. 올해의 잎과 열매는 올해만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계절의 변화는 늘 새로운 기쁨이 됩니다. 이 계절에 우리도 익어가고 있습니다. 다음에 오는 계절을 준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