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20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환경, 자연, 식물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바닷가를 달렸다. 몸살이 나서 한참을 누워있다가 일어난 후였다. 오랜만에 미세 먼지 농도가 '좋음'이었고 온도도 적당해서, 점심 먹은 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얇은 바람막이 하나 입고 나왔는데, 달리기에 적당한 날씨였다. 매일 나와 달리던 길이었는데, 겨울에 세 달을 쉬었더니 다시 나오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 사이에 땅 위로는 새싹이 돋고, 어느새 큰개불알풀과 광대나물은 꽃을 피웠다.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났을 때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굴곡 있는 갯벌의 지형과 그 위에서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괭이갈매기와 청둥오리가 있는 풍경을 보면서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바람에 실려오는 갯벌의 내음을 맡으며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향기에 머리가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날은 안타깝게도 만조였다. 가득 차서 찰랑거리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겨우내 뭉치고 구부러졌던 몸을 구석구석 유연하게 만들었다.
나이키 러닝 앱에서 목표를 6킬로미터로 맞추고 살살 뛰기 시작했다. 사 차선 도로의 가운데에 일렬로 심어놓은 왕벚나무의 꽃눈이 통통해졌다. 당장 내일 터질 것 같지는 않지만, 얼마 남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바위 사이의 작은 틈에 쌓인 흙에서 싹을 틔운 큰금계국도 보였다. 잔디 사이에서 무리를 이뤄 하늘색으로 일렁이는 큰개불알풀꽃 무리를 지났다. 대왕참나무는 아직 꿈쩍도 하지 않는 게 보였다. 작은 풀들의 생활사가 끝날 때쯤에야 가지 끝에서 새싹을 내밀지 않을까.
'1킬로미터, 6분 50초입니다.' 이 정도면 선방했다. 겨울 동안 달리기를 쉬었지만 페이스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오른쪽을 보는 순간 기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벚나무의 모양새가 희한했다. 처음에는 누가 벚나무를 가지치기한 후 치우지 않은 줄 알았다. 다시 보니, 곧게 선 굵은 줄기 옆에서 여러 줄기의 가지가 퍼져나가 마치 덩굴처럼 바위를 덮고 있었다. 작년에 자주 봤던 벚나무인데, 이렇게 자라고 있는 모습은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십 년 전 식물 공부를 시작한 후, 산에서 자라는 산벚나무, 벚나무, 올벚나무, 잔털벚나무, 개벚나무 등과 가로수나 공원에 주로 식재하는 왕벚나무나 처진벚나무 등의 벚나무 종류를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이렇게 줄기가 땅을 기어가는 벚나무는 처음 봤다. 그다음으로 신기한 점은 바위 위에 붙어 있는 가지의 꽃들은 이미 피기 시작했고, 곧게 선 가지의 꽃들은 아직 피지 않았다는 것이다. 햇빛은 만물에 고르게 비치지만, 바위와 공기가 빛을 머금는 정도가 다름으로 인한 온도차로 꽃이 피는 속도가 달라졌다. 이렇게 생물과 비생물 환경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내가 알고 지내던 그 사람이 맞는지 놀랄 때가 있다. 하지만 계속 봐 오던 익숙한 모습도 그 사람이고, 새롭게 알게 된 모습도 그 사람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무도 그렇다. 큰 줄기 위의 수많은 가지의 끝에 핀 탐스러운 벚꽃을 주로 봤었다. 하지만 군산에는 바위 위를 덩굴처럼 뻗어나간 가지에서 벚꽃이 피는 벚나무가 있다. 그동안 무슨 벚나무지, 생각만 하고 굳이 정확한 이름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었는데, 돌아오는 주말에는 꽃을 자세히 관찰해서 이름을 찾아줘야겠다. (벚나무 종류는 정확한 이름을 알려면 꽃 모양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